10차 헌법 개정은 실질적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여성시민들의 자기 통치성 확대의 장이다. 지속가능한 삶이라는 전망 속에서 ‘실질적 성평등 실현’이라는 국가의 방향성과 목표를 분명히 하고, 모든 영역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반영한 내용으로 개헌이 이뤄져야 헌법이 살아있는 규범력을 갖고 여성의 삶의 실질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이같은 여성주의 개헌 원칙에 입각한 헌법 개정 주요 과제에 대해 10회에 걸쳐 전문가들의 기고를 연재한다.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성평등 개헌]

형식적·제도적 진전 이뤘으나

성별임금격차·성적 착취 여전

여성들의 삶 실질적으로 바꾸는

‘실질적 성평등’ 개헌이어야

 

 

개헌으로 정치권 전체가 시험대에 올랐다. 이번 개헌 논의는 당초 정치권과 그 주변을 중심으로 주로 대통령의 권한분산과 권력구조 개편에 중점을 두다가 직접민주주의 확대를 통한 국민주권·자기통치성의 확대, 기본권 보장 확대와 사회적 개혁 의제로 확장됐다. 나아가 성장에 기반한 경제와 노동복지 패러다임의 극복, 지속가능한 생태와 삶을 위한 패러다임 전환 등으로까지 그 논의 지평이 넓혀졌다.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개헌 국민투표 실시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도는 70% 전후로 높은 편이다.

하지만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개헌특위) 활동은 시민사회의 풍부한 논의와 담론을 따라가지 못하고, 자문위원회 안조차도 받아들이지 못하였다. 지난해 말 가까스로 한 3당 합의에 따라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와 합친 특위 구성을 앞두고 개헌 시기와 대통령 개헌 발의를 둘러싼 정략적인 논쟁이 한창이다. 시민들의 개헌에 대한 지지와 그 요구의 깊이와 폭이 가히 변혁적임에도 정치권은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민의를 제대로 수렴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촛불시민들의 주체성과 자기통치성이 반영될 수 있는 과정과 내용의 개헌이 되지 않는다면 개헌 반대 세력은 앞으로 큰 정치적 시련에 직면할 우려가 크다.

헌법은 국가의 최고 규범으로 정치 규범이자 정부의 조직 규범이며, 시민들의 일상생활 규범이자 국가의 권력 규범(이며 동시에 권력을 제한하는 규범)이다. 헌법을 제·개정하고 지속적으로 살아있는 규범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헌법 실천적인 행동이 필요하다. 지난 겨울 촛불시민혁명과 시민들의 대대적인 ‘헌법 고쳐 쓰기’ 요구가 그러하다.

30년이 된 헌법은 헌법정신을 통한 해석과 하위 법률로 짜깁기해 쓰기에는 너무 낡은 것이다. 1987년의 현행 헌법은 5년 단임제 대통령 직선제를 골간으로 그 시대 수준에 맞는 기본권을 형식적인 평등론에 기초해 설계됐다. 산업자본주의 수준의 경제체제에서의 무한성장 패러다임에 입각한 사유재산제도의 확고한 보장, 시장경제원리에 입각한 경제성장 촉진, 성 역할 분업구조를 전제한 공사영역 구별과 이성애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와 가족을 전제하고 공적노동에서의 여성보호, 사회권의 프로그램적 성격, 몰생태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근본적인 변화는 제조·서비스 산업에서 과학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으로 정보혁명을 거쳐 특이점(singularity)이 거론되는 정보기술과 데이터 기반사회로의 이행이다. 현행 헌법이 시민들의 일상적 생활 규범으로서 부족한 이유다. 시민들이 실질적 삶의 변화를 체감할 수 있도록 헌법을 재구성·재구축하는 것이 이번 개헌의 핵심이다.

여성들의 삶의 지형도 많이 변화했다. 1987년은 성별 분업과 이성애에 기반한 가부장 사회가 공고하던 시절로, 여성들은 사적 영역에 머물러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여성들을 값싼 노동력으로 활용하게 했고, 여성들은 경제성장의 주역임이었음에도 당당한 노동자가 아닌 헌법에서 보호받아야 할 객체로 표현되고 있다. 30년이 지난 현재, 민주주의의 진전과 글로벌·국내 여성운동의 성과에 힘입어 교육에서의 양적 평등과 폭력 및 차별철폐를 위한 형식적·제도적 진전은 이뤘다. 하지만 노동과 경제적 영역에서의 심각한 불평등, 모든 영역에서의 대표성 부족은 여전히 심각하다. 여성들은 여전히 무급의 돌봄과 가사노동, 저임금, 비정규 노동에 내몰리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내 성별임금격차 1위의 심각한 임금차별을 받고 있다. 여성과 아동에 대한 성적 착취는 만연하고 여성혐오가 심각한 반동의 시기를 맞고 있다. 성과 재생산 건강 및 권리에 대한 보편적 접근은 미흡하고 낙태죄가 존치되고 있는 실정이며 과학기술, 특히 생명공학 기술 발전이 여성의 몸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고려도 미흡하다. 그렇기에 이번 10차 개헌에서는 여성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바꿀 수 있어야 하며 이상의 모든 의제들을 해결할 수 있도록 권리 목록화를 해야 할 것이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성평등 실현과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헌법개정 10대 과제’를 발표했다. ‘지속가능한 삶’이라는 큰 전망 속에서 ‘실질적 성평등 실현’이라는 국가의 방향성과 목표를 분명히 한 가운데 선출직과 공직 진출 및 모든 분야의 대표성 확대 보장, 고용, 노동, 임금, 혼인과 가족생활, 복지, 재정, 안보 및 평화통일 등 모든 영역에서의 적극적 조치를 포함한 국가의 실질적 성평등 실현과 보장 의무 명기, 가족 구성권 명시, 성적 주체로서 존엄의 원칙과 재생산권 신설, 노동에서의 성평등 및 일‧생활 균형 보장과 인간다운 삶을 위한 사회권 강화와 돌봄권 도입, 경제 개념의 확대,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화 및 성평등을 포함한 인권증진을 위한 국가 책임 명시 등을 제안했다. 이는 ‘젠더 정의’ 실현을 위해 꼭 필요한 ‘실질적 성평등’ 개헌 목록들이다. 스웨덴 정부처럼 명실상부한 ‘페미니스트 정부(A Feminist Governmen)’가 되기 위한 내용이다. 정치권이 개헌의 제 1원칙으로 이러한 변혁적인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시민들의 자기통치성 확대의 과정이 되도록 해 개헌의 시험대를 무사히 통과하기를 빈다.

 

성평등 실현과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헌법 개정 10대 과제

1. 헌법 원칙과 국가 방향으로서의 성평등 실현

2. 문화 다양성과 자율성 보장 및 헌법정신에 맞는 전통 문화 계승

3. 여성대표성 확대 및 이를 위한 정당의 의무

4. 평등권 조항의 차별사유 확대

5. 적극적 조치를 포함한 실질적 성평등 실현·보장 의무

6. 다양한 가족을 포괄하는 가족 구성권 명시 등

7. 성적 주체로서 존엄의 원칙과 재생산권 신설

8. 노동에서의 성평등 및 일-생활균형 보장

9. 인간다운 삶을 위한 사회권 강화와 돌봄권 도입

10. 경제 개념의 확대,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화 및 성평등을 포함한 인권증진을 위한 국가 책임 명시

자료: 한국여성단체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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