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교엔 수평적인 창작 그림책

첫 그림책은 성역할 관점 살펴야

전집이나 추천 책보다

부모 스스로 책 찾아보길 

 

우리에게는 그저 많은 책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좋은 책이 많이 필요하다. 첫아기 책도 마찬가지다. ⓒPexel
우리에게는 그저 많은 책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좋은 책이 많이 필요하다. 첫아기 책도 마찬가지다. ⓒPexel

아기들이 처음 읽는 책은 대부분 부모가 처음 만나는 어린이 책이기도 하다. 예비 부모들은 배내옷과 기저귀, 우유병, 딸랑이, 오뚜기 같은 아기의 첫 물건을 마련하면서 설레는 마음으로 아기 그림책도 몇 권 구입한다. “우리 아기가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다”는 소망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우리는 대부분 책으로 더 넓은 세계를 익혔고 책에서 나를 이해하는 상상 친구들을 만나면서 자라났다. 물론 지금 태어나는 아기들은 ‘디지털 네이티브’라고 불릴 정도로 정보의 전달 방식 자체가 달라진 사회에서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수천 년 이어져 온 책에 대한 사랑은 쉽게 사라지지 않으며 그 가치가 선뜻 무시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기를 안고 책을 읽어주는 장면은 언제 상상해도 포근하고 아름답다. 

‘우리 아이 첫 책’을 찾는 초보 부모에게는 여러 가지 조언이 쏟아지게 되는데, 정작 전문적인 조언은 많지 않다. 이 무렵의 부모들은 아기와 산모의 건강을 비롯해 신경 써야 할 일이 너무 많고, 어떤 책이 좋은가는 둘째 치고 아기에게 책을 어떻게 읽어줘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별로 배운 바가 없다. 태교책은 가까운 이들에게 선물로 받는 경우가 많은데, 십 년이 넘도록 베스트셀러의 자리는 상업적 의도를 앞세워 기획된 책들이 차지하고 있다. 태교책은 처음 부모가 되는 어색한 시간을 잘 견뎌내고 장차 아기와 나누게 될 관계를 편안하게 받아들이도록 도와주는 내용이면 어떤 책이든 좋다. 그런데 잘 알려진 공주, 왕자 옛이야기를 편집해서 정형화된 캐릭터로 화려하게 포장한 책을 ‘태교 그림책’이라는 상품명으로 홍보하며 판매한다. 아기와 나누는 첫 대화라는 것을 생각하면 태교에는 이런 민담 계열보다는 잔잔하고 수평적인 창작 그림책들이 좋다. 펭귄처럼 부성애가 강한 동물이 육아 경험을 들려주는 이야기도 좋겠고 엄마 여우가 아기 여우에게 겨울맞이 털장갑을 사주는 이야기도 재미있겠다. 꼭 ‘태교’라는 상품명이 붙어있지 않아도 다양한 그림책을 읽으면서 부모의 마음에 대해서 돌아보는 것이면 충분하다. 걱정이 많은 예비 부모에게 우리도 잘 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이 태교 그림책의 가장 큰 역할이기 때문이다. 

첫 아기 그림책은 아기에게 생활 습관을 알려주고 부모에게 구체적으로 육아 방법을 알려주는 역할도 해야 하므로 성역할에 대한 관점도 중요하다. 그런데 과거의 그림책을 보면, 아기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는 주체도, 돌보는 주체도 대부분 엄마였다. 요즘은 아빠와 엄마가 동등하게 아이를 돌보는 책이 여러 권 나와 있다. 아기를 표현할 때도 예전처럼 남아와 여아를 대조적으로 내세우지 않고 여아와 여아 또는 남아와 남아를 나란히 등장시켜서 한쪽은 분홍색, 한쪽은 하늘색의 옷을 입히기도 한다. ‘씩씩한’이나 ‘귀여운’ 같은 표현을 특정한 성별에만 부여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인다. 남아가 인형을, 여아가 공룡이나 기차를 가지고 노는 장면을 배치해 성역할 고정관념을 허문다. 

장애와 피부색에 대한 차별을 갖지 않도록 편견 없이 그린 그림인지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다. 작품 속에 얼마나 다양한 인종이 등장하는지, 그들은 서로 화목한 이웃으로 그려지는지, 장애를 지닌 인물들이 환대받는 세계로 표현되어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어린이는 아직 바깥을 잘 모르며 그림책이 이상적인 세계의 기준을 마련해주기 때문이다. 아기와 양육자의 첫 만남은 가능하면 비폭력적이고 동등해야 한다. 그런데 아기의 지능을 높여준다는 명목으로 아직 읽지 않아도 되는 난폭하고 위계에 가득한 설화를 ‘명작’의 이름으로 재화해서 판매하거나 부모로 하여금 아이에게 온갖 지식을 전달하고 확인하는 감시자 역할을 하도록 유도하는 학습지향형 그림책 시리즈도 많다. 아기에게는 온 세계가 배움인데도 지능을 키워준다는 것을 앞세워 엄청난 물량의 전집 구매를 권하는 사람이, 첫 아기 부모들 주위를 맴돈다. 산후조리원과 육아카페는 그 전진기지가 된다.

다른 사람이 말하는 구매 목록에 흔들리지 말고 부모가 스스로 책을 찾아보았으면 좋겠다. 우리에게는 그저 많은 책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좋은 책이 많이 필요하다. 이것은 첫아기 책도 마찬가지다. 평생의 독서를 시작하는 아기들에게 처음 그림책만큼은 내 손으로 한 권씩 찾아주는 문화가 정착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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