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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는 덕담으로 시작된다. “복많이 받으십시요”라든가 “건강하

십시요”등이 흔히 쓰인다. 그런데 올해는 조금 다르다. “자리 잘

지키시기 바랍니다” “정리해고 당하시지 말기를”등의 농담성 인

사가 새롭다.

새해 들어 정치권의 분위기를 보면 실감이 난다. 지난해 대선이후

외채위기로 김대중 당선자가 밤잠을 설치더니 부랴부랴 ‘비상대책

위원회’(비대위)를 만들었다. 노동권에서 파업때 평소의 집행부를

대신한 ‘비대위’는 있었지만 정치권에서 비대위를 만들었다하니

급하긴 급한가보다. 곧이어 ‘정권인수위’가 떴다. 이것은 이미 87

년 92년에 들어본 것이어서 생소하지는 않다. 더욱 그 인물들은 낯

설지 않다. 50년만의 정권교체라더니 그 인물이 그 인물들이다. 이종

찬 인수위원장부터 면면들이 5공인지 6공인지 구별이 안된다. 게다

가 비대위의 김용환 의원까지 올라가면 3공인지 유신시대인지도 헷

갈린다. 하기야 김의원이 재무부장관시절에 비서관으로 일하던 임창

렬 재정경제원장관이 옛상관에게 보고하는 모습이니까. 국가위기를

맞아 널리 인재를 구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시대를 초월해서 구시대

의 사람들이 나타나니까 정권교체 실감이 안난다. 가만히 생각해 보

면 당연하다. 70년대부터 각광을 받던 3김중 26년만에 김대중당선자

로 2김시대가 됐고 그것은 김종필 자민련명예총재의 도움으로 가능

했으니까 아직 논리적으로는 우리 정치가 70년대의 연장으로 볼수도

있을 것이다. 80년대의 악몽을 훌쩍 뛰어 넘어서.

인물은 그렇다고 치고 만들어지는 위원회가 너무 복잡하다. 비대위,

인수위에이어 행정개혁위원회, 노사정협의회, 인사위원회 등이 있다.

행개위는 현정부의 행정쇄신위원회의 업무를 인수받고, ‘제로 베이

스부터’ 현재 행정구조를 새로 짜겠다는 것이다. 위원장에는 언론

게의 원로인 박권상 씨가 맡았고 이문영 고려대명예교수, 김광웅 서

울대교수등 행정학자들이 들어있다. 따라서 이런 3각구조에서 비대

위 인수위 행개위간의 활동영역이 확실히 구분이 안되어 있는 것 같

다. 비대위와 인수위간의 잡음도 조금 들린다.

일을 잘하려다 일어나는 잡음이라면 좋지만 ‘끝발’싸움이나 영역

확보차원이라면 우려된다. 비대위는 경제위기 해소를 위한 정말

‘비상대책기구’다. 반면 인수위는 현정권이 행한 전반적인 정책경

과를 보고받고 남은 자산을 인수하는 기구다. 잘한일 잘못한일 모두

를 인수받는다. 이 과정에서 넘기는 쪽에서는 책임을 회피하기위해

구린 것은 덮으려 할 것이다. 이미 인수위에서 안기부나 청와대, 재

경원 등이 기안문서 정책입안서등을 파기하지 말라고 주문한 것은

이같은 맥락이다.

이에 대해 현정권의 대응이 흥미롭다. 평소 ‘소신있는 발언’으로

유명한 홍사덕 정무장관이 인수위와 비대위에 발을 걸었다. 현 정권

의 반격인 셈이다. 구체적인 요구사항은 인수위가 원활한 인수인계

만 신경쓸 것, 비대위도 협의기구의 성격을 유지할 것, 중하위직 인

사는 현정부가 해달라는 것등이었다. 홍장관은 인수위와 비대위의

성격을 80년대 초반 신군부와 ‘국가보위입법회의’에 비유했다. 다

분히 신군부의 실세였던 이종찬위원장을 빗댄 것으로 보인다. 인수

위가 청와대의 삼성 자동차업 허가, 지역민방허가를 둘러싼 김현철

씨의 개입설, 개인휴대통신 사업자 선정과정의 의혹 등을 규명하자

는데 발끈한 것이다. 이는 고도의 정치적인 판단이 요구되는 사안인

만큼 단순히 인수팀이 거론할 사항이 아니라는 항변이다.

이종찬위원장은 “경제위기에 책임을 질 사람들이 전혀 반성의 자

세가 아니다”라고 질타했다. 현정권은 김대중당선자가 이미 “보복

정치는 하지 않겠다”고 말한바 있는데 인수위에서 비리와 실정부분

에 간간히 “책임을 묻겠다”는 통고 발언을 흘리는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현실적인 역학관계에서 완전히 밀리고 있는 현

정권은 인수위측이 ‘실정캐기’를 하면서 앞으로 공청회를 하지 않

을 수 없게끔 여론을 몰고가는게 아니냐는 의혹을 품고 있다. 마지

막으로 노사정협의회는 외채위기를 계기로 정리해고를 도입하는데

촛점을 두고있다. 노동권은 “정작 경제위기의 주범인 재벌은 놓아

두고 노동자에게만 고통전담을 요구해선 안된다”며 목소리를 높이

고 있다.

중요한 것은 차기대통령이 이젠 ‘평상심’을 되찾아 전체를 조망

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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