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계에서도 평등을 향한 여성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지난 1일 가톨릭여성단체연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한국여자수도회장상연합 등이 ‘호주제 폐지를 위한 천주교 연대’를 발족한 데 이어 15일엔 한국여신학자협의회가 ‘기독여성 호주제 폐지운동 선포식’을 갖고 개신교에서는 처음으로 호주제 폐지운동을 펼치기로 했다. 신·구 교회여성들의 호주제 폐지운동 동참은 기독여성의 여성의식 성장을 반영하는 것으로 여성운동 차원에서도 고무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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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여성단체가 교회내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해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리는 등 교회 여성의 인권회복을 위한 활동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보수적인 한국종교의 현실에서 여성종교인들이 종교계 내부에서 점하고 있는 지위는 이들이 신도의 다수를 차지하는 것과 비교할 때 한참이나 낮은 수준이다. 또 여성신도들은 열성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대부분 봉사활동 차원에 머무르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종교계 내부에서 종교의 가부장성에 대항해 여성신도의 지위향상을 위한 제도적인 방편을 마련하고 여성신도들의 의식을 일깨워 사회참여를 유도하려는 여성종교인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올해 3월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산하에 처음으로 여성신도들의 기구가 생겨 여성에 대한 교회 전반의 의식변화를 꾀하고 있으며, 작년 말에는 조계종에서 불교여성개발원을 설립해 그간 다소 뒤떨어져 있던 불교여성학에 대한 연구를 수행할 기반을 마련했다. 또 4월 16일 한국여신학자협의회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한국교회여성연합회는 ‘교회내 성폭력 추방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발족, 교회의 위계를 이용한 성직자의 성폭력에 강력 대응하기로 하는 등 여성종교인들의 종교계 성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활동이 두드러지고 있다.

믿음앞에선 모두가 평등하다

“성서는 하나님의 자녀됨이 혈통으로나 육정에 있지 않다고 단언한다(요 1:13). 이 땅의 종교여성이 편협한 남성중심적 가족이기주의와 가부장제의 미몽에서 깨어나 호주제 폐지를 위해 연대하기를 호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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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여성들이 교회여성문화 개혁을 위해 지난 21일 “순종, 교회여성의 장식품인가?”를 주제로 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지난 15일 ‘평등한 가정, 차별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기독여성 호주제 폐지운동 선포식’에서 한국여신학자협의회는 성서에 바탕을 둔 신앙적인 논리로 호주제의 부당성을 설득했다. 법과 제도가 바뀐다 해도 치외법권을 행사하는 종교 앞에서는 무력하기 때문에 종교여성들의 의식에 다가서지 못하면 평등한 사회는 요원할 것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내 성폭력 추방운동 펼쳐

개신교=최근 개신교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것은 여성목사 안수문제다. 교회의 결의기구인 당회와 노회, 총회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목사와 장로에게만 주어지기 때문에 여성목사 안수는 여성이 교회운영의 발언권을 얻는다는 의미에서 교회여성의 지위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기독교장로교, 예수교장로교통합, 감리교 등 몇몇 교단에서 여성목사를 허용하고 있고 지난해 5월 여성 사제의 길을 열어놓은 대한성공회에서도 올해 최초의 여성 사제가 탄생했다.

그러나 교단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보수교단에서는 여전히 여성목사 안수를 인정하지 않고 있고 여성목사를 허용한 교단에서도 그 비율은 2%에 못 미친다. 설사 여성이 목사안수를 받는다 하더라도 남성중심적인 교회 분위기에 부딪쳐 담임목사를 맡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기독여성들이 1960년대에 이미 한국교회여성연합회를 설립해 독자적인 사회 활동과 인권운동을 활발히 펼쳐온 것에 비하면 교회의 성차별적 금기를 깨는 과정은 매우 더딘 셈이다.

지난 4월 한국여신학자협의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한국교회여성연합회가 발족한 ‘교회내 성폭력 추방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종교의 위계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목회자에 의한 성폭력에 강력 대응, 교회내 성폭력 금지를 위한 특별법 제정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는 또한 목회자의 권위를 신의 그것과 동일시해 신도들에게 무조건적인 복종을 강요하는 가부장적 교회문화에 대한 반격이기도 하다.

이와 더불어 최근 여성신학자들은 “주방봉사와 같은 성역할 고정관념적인 일에 여성교역자들의 노동력을 끊임없이 강요하는 교회문화가 과연 신에 대한 신앙심의 차원에서만 논의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불합리한 희생을 요구하는 것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여성사무위원 20~30% 할당요구

천주교=여성이 사제가 될 수 있는 길이 아예 막혀 있는 가톨릭의 경우 성차별적 문화는 개신교보다 한층 더 두텁다고 할 수 있다. 교단내 의사결정구조에 여성들이 참여하는 비율은 극히 미미하고 수녀의 역할은 남성들의 보조자에 불과한 실정이다. 또 여성들이 머리를 가리고 다니던 시대의 전통인 ‘미사보’가 21세기까지 사용된다는 것에 대해서도 최근까지 논란이 일고 있다.

작년 10월 가정폭력상담소, 가톨릭여성신학회, 가톨릭여성연구원 등 11개 천주교 여성단체들은 가톨릭여성단체연대(대표 윤순녀)를 결성해 천주교 여성들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아내는 작업을 시작했다. 여성연대는 여성 사목위원 20∼30% 할당을 요구하는 등 여성신도의 지위향상에 힘쓰는 한편 극히 보수적인 가톨릭 성윤리에 대해서도 “현실과 괴리된 성윤리를 강요하지 말 것”을 제안하고 있다.

지난 3월 주교회의 산하에 여성신도들의 단독기구가 최초로 꾸려진 것은 이같은 천주교 여성단체들의 노력의 성과라 할 수 있다. 여성소위원회는 “교회 전반의 여성에 대한 의식이 변화되어야 하며 여성신도의 지도력 향상에 힘쓰겠다”는 취지를 밝히고 여성인권운동과 사회적 이슈에 동참할 것을 분명히 했다.

6월 1일 가톨릭여성단체연대와 천주교사회운동네트워크,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여성분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한국여자수도회장상연합 등은 ‘호주제폐지를 위한 천주교 연대’를 발족하면서 “남녀차별이 없고 모두가 하나라는 성서의 가르침을 실천하면서 예언자적 소명을 실천하는 신앙인의 연대로서 활동하겠다”고 선언했다.

불교여성학 논의 활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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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창립한 불교여성개발원에 여성주의적 활동에 대한 요구가 높다. <사진·불교여성개발원>

불교=변화의 움직임은 불교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해부터 부쩍 불교여성학 논의가 활기를 띠기 시작했는가 하면, 지난해 11월 27일에는 여성불자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사회문제에 적극 동참하고자 하는 재가 여성불자들이 불교여성개발원(회장 이인자)을 설립했다.

그간 불교인권위원회, 경불련 여성위원회, 한국여성불교연합회 등의 단체가 있었지만 조직력과 대응력이 미약해 양로원, 교도소 방문 중심의 자원봉사 수준에 머무는 한계가 있었다. 그런 까닭에 진보성향의 젊은 불자와 비구니들이 불교여성개발원에 거는 기대는 더욱 컸다.

그러나 불교여성개발원의 첫 대외활동이었던 ‘나눔의집 혜진스님 사건’관련 성명서 발표와 관련해 불교여성개발원의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일부에서는 우려를 표한다. 한 비구니 스님은 이와 관련하여 “여성불자들이 스스로 수동성을 드러낸 사례”라며 “종교인에 대해 맹목적으로 추종할 게 아니라 잘못된 점은 바로잡아 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한 몇몇 비구니들은 불교여성개발원이 여성 인권을 위해 일하는 단체로 자리잡아갈 수 있도록 비구니 자문위원회 구성 등을 논의 중이다.

사회참여 확대·종교평화운동 주력

원불교=여성교역자에 대한 차별이 없고 교리 자체도 평등하다고 인정받고 있는 원불교의 경우, 1995년 창립한 원불교여성회(회장 한지성)를 중심으로 재가 여성교도들의 의식화교육을 통한 사회참여 확대와 환경운동 등에 주력하고 있다.

5주년을 맞은 작년부터 원불교여성회는 타 종교와의 대화를 통한 종교평화운동과 환경·통일 운동을 아우른 ‘한울안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원불교, 천주교, 불교, 바하이교, 유교 등 각 종교 여성들이 한데 모여 첫 사업으로 ‘북한 아기에게 분유 보내기’운동을 펼친 원불교여성회는 올해도 지난 23일 창경궁에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탈북여성, 나환자들, 외국인 여성노동자들과 함께 문화체험을 함께 했다.

한지성 회장은 “아직 종교간 대화의 성과는 미미한 수준”이라며 “각 종교가 교리와 종단의 이해관계를 뛰어넘어 전체 여성문제를 함께 풀어나갈 때 종교도 미래가 있다”고 덧붙였다.

최이 부자 기자 bjchoi@womennews.co.kr

조이 여울 기자 cognate@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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