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주체가 되는 경험, 공동체 힘 발휘

‘이화야, 줄 꼬러 가자!’

5월 이화여대에 들어서면 정문에서 미대쪽으로 난 숲길에서 줄을 꼬기 위해 모인 학생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대동제 20여일 전부터 영산줄다리기를 도와줄 ‘꼬우미’를 모집하고 단대별로 누가 많이 꼬았나 경쟁도 치열하다. 대동제의 백미로 꼽히는 영산줄다리기는 올해로 이화에서 19번째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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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명이 한 조가 돼 가닥줄을 꼬고 있는 이화여대 학생들(좌)과 꼬우미들이 젖줄을 몸줄에 드리우고 있는 모습(우)

“어느 지역이나 어느 대학의 줄보다 이화여대의 줄이 가장 굵고 그 참여는 대단한 규모입니다. 영산 사람들이 구경을 갈 정도죠. 이화인들 사이에선 ‘여성이기에 할 수 있다’는 자부심도 강합니다.”

영산줄다리기 기능보유자 김종곤씨는 이화대동제가 열릴 때마다 ‘우리 고유의 공동체문화의 표상인 영산줄을 대학의 줄로 재창조해 온 이화인’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1996년에는 이화여대 제29대 총학생회가 11번 이화줄다리기의 지도를 맡았던 고 조성국 선생의 공을 인정해 그의 제자인 김씨에게 감사패를 드리기도 했다.

이제 대학에서 우리의 것, 공동체 문화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 되었다. 그럼에도 서울 한복판에 자리잡은 여대에서 매해 수천 명의 학생들이 모여 줄을 꼬고 나르고 당기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이화의 줄다리기는 여성이 주체가 되는 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천 명이 함께 줄을 어깨에 매는 공동체의식이 여성들의 공간에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기회는 흔치 않지요.”(과학교육과 95학번 오세희씨)

꼬우미들에 따르면 줄꾼과 줄공동체에는 ‘애살(열성)’ ‘신명’ 그리고 ‘몰음(협동)’이 필요하다고 한다. 각 대학에서 점점 줄을 만드는 사람들이 없어져 결국 ‘꼬마야 꼬마야’를 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전해오는 가운데 이화인들은 줄을 꼬고 매고 당기는 ‘줄공동체 의식’을 살려내 왔다는 자부심이 강하다.

이화대동제의 줄다리기는 역사가 깊은 만큼 수난도 많이 겪었다. 수년 전까지 서울 모대학 학생들은 집단적으로 줄다리기를 하는 학생들의 대열을 치고 들어가 큰 부상을 입히기도 했고 꼬우미들이 ‘목숨처럼 아끼는’ 줄에 불을 붙이기도 했다.

장난으로 치부되어왔던 남학생들의 소위 ‘깽판’ 문화는 96년 이화여대에서 ‘여성공간에 대한 성폭력’이라고 공식적으로 문제 제기하면서 비로소 수그러들었다.

대동제 마지막날 오후 세시쯤 되면 운동장엔 수천 명의 학생들이 모여든다. 이화의 줄다리기를 구경하러 온 학생들까지 합하면 4∼5천명에 이르러 그 열기가 더욱 뜨겁다. 줄다리기를 시작하기 전 학생들은 ‘율동이’를 앞세워 2시간 동안 앞놀이를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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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학생회장을 줄 위에 태우고 수백명의 학생들이 양쪽에서 어깨로 몸줄을 메고 깃발을 휘날리며 구호를 외치면서 나가고 있다. <사진제공·영산줄다리기보존회>

이화의 줄다리기에선 사이사이 4∼5시간 계속되는 ‘춤’도 빼놓을 수 없는 풍경이다. 일단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학생들의 열기는 지칠 줄을 모른다.

오후 5시경 학생들은 ‘해방’팀과 ‘이화’팀으로 나뉘어 굴다리를 넘어 광장에 놓인 줄을 가지러 간다. 풍물을 앞세우고 각 팀의 지휘자(총학생회장과 부총학생회장)를 줄 위에 태우고 수백 명의 학생들이 어깨로 몸줄을 메고 줄을 어루면서 노래와 구호를 외치며 나가는 모습은 장관이다.

학생들이 그 굵고 무거운 줄을 어깨에 들고 줄을 밀고 나간다는 건 쉽지 않은 일로 영산줄다리기의 고장인 경남 창녕군에서도 보기 어려운 모습이다.

줄을 가져왔다고 곧바로 당기는 것도 아니다. 젓줄을 걸고 꼬리줄을 만드는 1시간여 동안 양편에서 학생들은 깃발싸움을 하며 또 한바탕 걸판지게 논다.

학생들이 다시 양편으로 나뉘어 줄을 어깨에 매고 수줄머리에 암줄을 내리 씌워 비녀목을 꽂으면 운동장의 열기는 더욱 뜨거워진다. 양쪽으로 드리워진 각각의 젖줄에 15명 정도씩 달라붙어 수백명이 호흡을 맞춰 줄을 당기는 광경은 줄을 당기는 사람이나 구경하는 사람 모두에게 가슴 벅찬 감동을 준다.

줄을 당기고자 하는 학생들의 수가 너무 많아 세 번 줄이 당겨지는 동안 보통은 한번씩 자리를 양보한다. 줄을 한 번 당기고 나면 승부에 관계없이 다시 학생들은 한데 어울려 한바탕 춤을 추고 소리를 지르며 환호한다. 마지막 줄을 당길 때에는 타학교 학생들에게도 함께 할 기회를 주는데 줄다리기가 끝나고 뒤풀이로 이어질 무렵이면 어느덧 자정 가까운 시간이 된다.

“참으로 엄청난 힘이다!” 97년 처음으로 이화인들이 줄다리기하는 광경을 지켜본 조순경(이화여대 여성학) 교수는 “여성들은 늘 개별적으로 존재해 왔지만 언젠가 저 공동체의 힘이 사회로 파급될 것”이라는 기대를 내비쳤다.

30일 대동제 마지막날에 있을 영산줄다리기를 앞두고 지금 이화여대생들은 줄을 만드느라 분주하다. 총학생회는 115주년 대동제의 영산줄다리기를 통해 ‘구조조정과 비정규직 철폐’‘여성노동권 확보와 민중연대 강화’‘지역과 이화의 경계 허물기’등의 메시지를 수천 이화인의 목소리로 담아낼 예정이다.

대학문화가 극도의 개인주의와 상업주의로 물들고 있다는 비판도 이제 어색하게 된 21세기에도 이화인들은 5월이면 수천 명이 함께 줄을 어깨에 매고 우리 고유의 전통예술과 화합의 정신, 그리고 여성공동체 문화를 살려나가고 있다.

조이 여울 기자 cognate@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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