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형석/ 여성문화웹진<언니네>에서 '살균에서 표백까지'를 모토로 세탁소를 운영중인 언니네 편집위원

내가 항상 생각하기로 남자들의 지겹고도 뻔한 변명이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난 아니야!”란 변명이다. 성희롱이건, 남녀차별이건, 폭력남편이건 간에 남녀에 관한 어떤 말에 대해서도 그들은 “난 아니야!”란 단 한마디로 상대방을 바보로 만든다. 아니다. 바보로 만들었다고 ‘착각’한다. 바보가 되는 건 자기 자신인 줄도 모르고, 그 한마디의 치사한 변명 뒤에 숨어서 그들은 “배째라!”태도로 일관하는 것이다. 온갖 가지 잡학상식에 해박한 척 나서기 좋아하고,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를 불문한 모든 영역에 정통함을 자처하며, 인권이라면 입에 거품 물고 떠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그들이 어찌 이리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을 수 있는지 나는 알다가도 모르겠다. “난 아니야!” 그래, 참 세상 살기 편하겠다. 그런 생각이 절로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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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조금은 억울할지도 모르겠다. 분명히 자기 생각에 자신은 성폭력을 한 적도 없고 남녀차별 같은 걸 한 적도 없다고 생각한다면 말이다. 나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여자들은 남자들이 잘못했다고 하며 나까지 싸잡아 비난을 하니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단 말이냐, 난 아니야, 그렇게 주장하고 싶을 것이다. 그렇게 말해서 스스로의 도덕적 권위를 세워보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남성인 그는 난 아니야 라고 말할 자격이 없다. 나는 그렇게 단언한다. 모든 죄를 짊어지라는 것이 아니다. 아무 잘못도 짓지 않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가 무인도에서 혼자 살다가 우연치 않게 지금 방금 한국으로 날아온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는 남자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나기 위해서, 많은 수의 여성들은 태아의 단계에서 ‘제거’되었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남자’로 길러졌다. 그가 ‘남자’로 길러지기 위해서, 빨래와 음식과 설거지와 청소는 ‘여자’로 길러지는 이들의 몫이 되거나 여자(어머니)의 몫이 된다. 남자가 부엌에 드나들면 고추가 떨어지므로. 그러다 여자를 만난다. 여자는 예쁘고 날씬한 게 최고다. 예쁘고 날씬하기 위해 여자들은 온갖 화장품에 피부를 해치고, 온갖 다이어트 상품에 장기관을 해치고, 얼굴을 도려내고, 안구에 치명적인 콘택트 렌즈를 끼고 다니면서도, 못생기고 뚱뚱하다는 피해의식을 버리지 못한다. 이도저도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남자들은 매춘여성을 찾는다. 그녀들의 경제를 위해, 그녀들의 몸을 주물럭거리고 강탈한다. 취직은 아무나 하는가. 그가 직장을 다니기 위해서 여자들은 아예 취직을 못하기도 하며, 인력 감축시에는 그를 대신해서 잘리기도 한다. 결정적으로, 그가 여자를 원할 때, 그 여자가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려야 할 때, 남자들은 여자들의 모든 것을 빼앗고 집안에서만 그녀를 보기를 원한다. 그가 도대체 “난 아니야!”라고 주장할 근거는, 이 질긴 한국 남녀사 시나리오의 어느 구석에도 없다. 그가 남자인 이상, 그는 의지와 상관없이 불평등관계의 수혜자다.

그는 물론 강간도 성폭력도 성추행이나 성희롱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성폭력과 성희롱은 남성 스스로가 아니라고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므로, 남성 스스로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어떤 것이 여성에게는 엄청난 폭력과 모욕일 수 있으므로, 그의 말은 확인 불가능이다. 여자의 아니오는 동의의 표시라 믿으며 강간하는 나라에서, “난 아니야!”라고 주장하는 남자들의 말이 무슨 설득력이 있겠는가. 그는 여전히, 어느 순간에서는, 여성들에게 공포의 대상일 수 있는데도 말이다.

그래. 백만번 천만번 양보해서, 혹자에게는 정말 아무런 잘못도 없다고 치자. 도덕적으로 완벽한 성인군자라고 치자. 그래서 극구 “난 아니야!”라고 죽어라 외칠 자격이 있다고 치자. 그 완벽한 남성에게 물어보고 싶다.

사회적 인간으로서의 당신이 할 수 있는 말이 “난 아니야!”란 말뿐인가? 정녕 당신이 아니라면, 여성들에게 억울함을 호소하기 이전에, 왜 당신에게도 그와 같은 질문이 던져지는지, 왜 당신조차도 여성들이 이해하지 못하는지 진지하게 성찰해볼 의지는 없는가? 언제까지 그렇게 변명과 회피에만 급급해서 도망가기만 바쁘단 말인가? 그래도 당신은 “난 아니야!”라는 무책임한 말로 모든 것을 대신할 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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