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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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역사에서 소외된 여성의 역사 다시찾아

일 총독부보고서 “800명의 기생은 독립투사”

호주제 폐지·성폭력등 쟁점 사건별로 담아

“평양의 2300명 우리 동무의 살이 깎이지 않기 위해 내 한 몸뚱이가 죽는 것은 아깝지 않습니다. 내가 배워서 아는 것중에 대중을 위하여 죽는 것이 명예스러운 일이라는 것이 가장 큰 지식입니다.… 끝까지 임금감하를 취소치 않으면 나는 노동대중을 대표하여 죽음을 명예로 알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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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을밀대 위에서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강주룡.

1931년 5월, 평양의 정자 을밀대 지붕 위에서 평원고무농장 여성노동자인 강주룡은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장시간 노동과 성희롱, 회사의 일방적인 임금인하 통고에 맞서 파업을 감행하다 일본 경찰에 의해 강제로 내몰린 그는 대성통곡하는 동무들의 용기를 북돋워주기 위해 을밀대의 지붕 위로 올라갔다.

‘근대여성교육의 시작에서 사이버 페미니즘까지’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20세기 여성사건사>(여성사 연구모임 길밖세상 지음, 여성신문사)에서는 이처럼 역사교과서에서 볼 수 없었던 이름을 만날 수 있다. 27개의 사건을 중심으로 우리 근대 여성의 삶을 여성주의적 관점으로 풀어낸 이 책은 여성이 배제된 채 다뤄졌던 근현대의 역사적 현장들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해준다.

여성사 연구모임 길밖세상은“20세기가 남성 중심적이었다는 말은 역설적으로 근대는 남성의 것이며 여성은 역사의 주체가 아니었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이것은 그동안 여성이 축적해온 경험을 역사화하려는 전망을 무력하게 한다”며 “사건을 통해 근대가 한국 여성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조명하고자 했다”고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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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최초로 단발한 여성 강향난.

1922년 머리를 깎고 남장을 하고는 남자들과 함께 공부를 하겠다고 나선 강향난. 기생이었던 그는 한국 최초로 단발을 한 용기있는 여성으로 이 사건을 계기로 여성 단발에 대한 사회적 여론이 들끓었다. 주로 단발하는 여자들이 숨기고 있는 내면의 허영심과 사치심이 얼마나 사악한 것인가에 대한 이러한 논의는 1920년대에서 30년대까지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이러한 사회적 비판에도 불구하고 신여성들은 자발적으로 단발을 하기 시작했다.

작가 ‘김유정이 사랑했던’이란 수식어가 붙어야 돌아보게 될 당대의 명창이자 후에 인간문화재가 된 박녹주를 포함한 일제시대 기생들의 이야기는 또다른 역사이다.

일제 일본 경찰들은 총독부에 “800명의 기생은 화류계 여자라기보다는 독립투사라는 것이 옳을 듯했다. 기생들의 빨간 입술에서는 불꽃이 튀기고 놀러오는 조선 청년들의 가슴 속에 독립사상을 불질러주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올리기도 했다.

또 서로 사랑하다 철도에서 동반자살한 홍옥임과 김용주. 근대 교육을 통해 싹트기 시작한 여성들끼리의 관계맺기는 색다른 경험으로 동성애를 적극적으로 추구했던 여성들의 모습에서 사회가 허락한 안전장치를 전복시키는 가능성들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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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여성>1925년 6월호. 신여성들에 대한 비아냥을 담은 잡지의 그림. 아래로는 “시골 여학생이 서울에 오면 공부보다 먼저 배우는 것이 치마 잘라입기, 앞머리 자르기, 굽높은 구두 신고 걷기, 편지쓰기”라는 글이 덧붙여져 있다.

이밖에 전쟁의 기록에서 소외되어온 여성의 삶에 대한 문제제기, 국가 시책에 여성이 동원되었던 대표적인 예인 새마을 운동과 부녀회 활동, 온 사회가 여성의 성적타락을 우려하면서 일탈된 여성에 대한 응징을 외치게 했던 자유부인 논쟁, ‘순결한 여성의 정조만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명언을 남긴 박인수 사건 등과 군 위안부 문제, 호주제 폐지운동, 가정내 성폭력 문제, 황혼이혼 등 한국사회의 수면위로 올라왔던 쟁점들이 담겨있다.

사건들이 병렬식으로 나열된 이 책은 서로 관련있는 주제를 골라 읽으면서 독자 스스로의 방식으로 여성의 역사로 엮어낼 수 있다. (02)318-6260

지은주 기자 ippen@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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