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 담보로 한 사학의 ‘이전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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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은 이야기 하나.

아파트 단지에서 여러 다른 엄마들과 아이를 기다리던 엄마 A씨. 유치원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것도 핸드폰으로. 셔틀버스가 몇 분 지연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다른 엄마들의 핸드폰은 영 울리질 않는다. 유치원생을 둔 또 다른 엄마 B씨에게 고백한다. “나, 사실 선물했어.” 유치원 종일반을 시작하면서 자꾸 말라 가는 선생님을 위해 작은 화장품이라도 사줄까 하는 생각을 접어야 하는 건 아닌지… 엄마 B씨는 망설이게 되었다.

본 이야기 하나.

으레 입시제도, 암기식·주입식 교육 등과 겹쳐지는 제도교육에 대한 신경질적인 반응은 아마도 교육이 찰흙놀이 같은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만지작거리다 보면 찰흙은 나무도 되고 야구공도 되지만, 햇빛을 쬐고 바람을 쐬다 보면 어느새 지나온 시간을 거스르지 못할 틀로 결정되어 버린다. 이른바 ‘상문고 사태’는 4월 국회 교육위원회의 안건이 되면서 올 봄 귀추가 주목되는 관심거리 이상이다.

1994년 처음 상문고 문제는 찬조금을 받아 성적을 상향조정해주는 사학재단이 현존한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불러일으켰고, 이어 국회 교육위원회가 비리재단의 복귀를 종용하는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절망감을 유포시켰다. 비리 사학재단이 다시 복귀하도록 하는 현 제도에 상문고 신입생들은 학교의 재배치를 요구하기에 이르고, 다루기 쉽지 않은 교수의 재임용을 거부한 또 다른 ‘상문대학’은 오늘도 농성 중이다.

사립학교법 재개정과 관련하여 사학재단은 관선인사의 파견에 강한 불만을 표시한다. 사재를 다 털어 애써 만들어 놨더니 국가에서 해먹으려 든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현재 중·고등학교의 40%, 대학교의 86%가 사립학교에 해당한다. 내 자신, 내 자식의 문제를 벗어난다 하더라도 이는 엄청난 비율이며 단지 사립재단의 사적재산권을 운운할 수만은 없는 문제이다.

게다가 재단부담액의 비율이 중고등학교의 경우 2%, 대학교의 경우 6%에 그친다고 볼 때 이러한 판단은 결코 그릇된다고 볼 수 없다. 문제가 발생해야지만 감사가 가능한 현실은, 이미 수많은 학생들의 젊은 날을 담보로 했을 뿐이다.

드는 생각 하나.

쌓여있는 자퇴서, 농성중인 학생과 교수들. 여하튼 자식들은 커간다. 하지만 10년 전보다 10센티미터는 족히 넘었을 평균 신장과는 달리, 아이들의 평균체력은 날로 저하될 뿐이라고 한다. 늘어가는 고졸자와 대졸자로 인해 문맹율을 물리치고 고등교육 수학자는 급상승하지만, 비리재단이 복귀하는 것을 바로 교실에서 보면서 아이들이 겪게 되는 그 절망감은 이제 면역을 이루어 아이들의 삶의 방식에 관해서 기대를 깎아 내릴 뿐이다.

어쩜 사회란 이토록 어처구니없는 것임을 산 체험을 통해 알게 하는데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수년의 세월을 학교라는 곳에서 지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이런 건 어떨까. 비리재단의 전횡 속에서 상처받았을 수많은 학생들과 교사, 교수들. 태업과 파업을 통해 문맹율을 10년 전, 20년 전 상태로 원상복귀시키는 것. 도발적인 상상일까?

김형신/ 21세기여성미디어네트워크 매체비평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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