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존재의 밑바닥을 두드리는 이, 그대 이름은 ‘새끼’

김혜련/ <학교종이 땡땡땡>의 저자

열네 살 아들과 함께 사는 일산 아줌마 pmhr@chollian.net

(한껏 침착하고 부드럽게)“너, 야한 여자들 사진 봤더라”

(정색을 하고 바라보며)“뭐라구? 내가 그런 걸 왜 봐? ”

(약간 당황하며) “엄마가 다 알고 하는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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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시 기분 나쁘고 어이없다는 얼굴로)“날 뭘로 보는 거야, 내가 왜 그런 걸 보냐구!”

(혈압이 오르고 맥박수가 증가하며, 있는 대로 고함이 터져 나온다)“ 야~! 뭐 이런 게 다 있어? 너 이리 와, 이거 니 눈에 보여, 안 보여!”(인터넷의 야한 사이트들의 이름과 들어간 시간, 날짜가 좌악 찍힌 종이를 펼쳐 눈앞에 들이댄다)

(갑자기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리며)“엄마, 잘못했습니다”.

(눈 앞에 있는 게 아들이 아니라 흉악범으로 보인다. 옆에 있는 화장품 병을 흉악범을 향해 냅다 던지며 부들부들 떤다)“너, 너, 이 새꺄! 저리 비켜. 꼴도 보기 싫으니 니 방으로 당장 들어가, 빨리!”

지난 달 통신비용이 지나치게 많이 나와 알아봤더니 팩스로 넣어준 통신 내역엔 ‘쇼킹 모델 라인’등으로 시작되는 소위 음란 사이트들이 좌악 떴다. 순간 심장이 멎는 듯하고 온 몸이 덜덜 떨렸다. “세상에, 기가 막혀…” 본 시간은 대부분 내가 늦게 들어간 때였지만 아침에도 심심찮게 봤다. 내가 먼저 출근하니까 학교 갈 때까지 봤다는 얘기다. 혼자 기 막혀 하다가 성교육 쪽에서 일하는 후배들에게 전화를 하고, 아들 기르는 동료들에게 미주알고주알 다 까발린다.

“글쎄, 어쩌면 좋아? 세상에 이런 일이…”

나의 흥분과 좌절에 비해 상대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그 나이에 그러는 거 당연한 거 아니야?” 한술 더 떠 나를 비웃는다. “남의 애들한테는 그렇게 관대하면서 제 자식한테는 왜 그리 쪼잔해?” (글쎄 말이다. 조카만 되도 우아하고 관대할 것 같은데…)

주위 사람들 반응이 시원찮자 교실에 들어가 애들한테 또 일러바친다.

“있잖아, 얘들아. 아들이 말이야...미주알고주알… 그런데 내가 더 화가 나는 건 그 녀석은 분명히 거짓말을 할 거라는 거야. 안 봤다고 있는 대로 오리발을 내밀 것 아니냐. 난 그게 더 참을 수 없어.”

아이들은 어이없다는 표정이다.

“당근 거짓말 하죠.”

“왜? 거짓말 안하고 인정하면 그럴 수도 있다고 받아들일텐데, 왜?”

“그걸 어떻게 말해요. 존심 상하게...절대 말 못해요!”

일주일 동안 여러 사람의 각종 조언을 밑천 삼아 마음을 정리한다. ‘그래, 객관적으로 보면 과정이야. 아니, 성에 관심이 생겼다는 건 성장했다는 증거지. 그러니 일단 축하해 주는 거야. 그런 다음 포르노에 나오는 성이 왜 나쁜 성인지, 좋은 성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 말해 주는 거야.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에 관련된 책을 선물하는 거야.’난 제법 기분이 좋아진다. 역시 난 멋진 엄마야. 자족감에 젖어 기회를 노린다. 학원 안 가고 기분 좋은 날이 언제인가 기다린다. 그렇게 한 열흘 쯤을 혼자 궁리하고 계획한 다음 작전 개시! “봤니, 안 봤니?”로 물어봤자 “안 봤다” 할테니 이미 알고 있는 걸로 이야기를 시작하자. 그러면 아이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되고 난 나대로 내가 할 말을 할 수 있을테니...작전 멋있고, 기회도 잘 잡았다. 그러나 실전은 멋진 엄마는커녕 고릴라처럼 펄펄 날뛰며 흉악범과 대치하는 상황으로 끝났다.

자식과 거리를 가지고 그가 내 소유물이 아니라 한 생명임을 인정하자. 그 생명은 자생력에 의해 잘 자라고 있고, 잘 자라려고 노력하고 있음을 믿자. 좋은 엄마란 사랑과 관심은 갖되 간섭하지 않으며 자식이 자신의 능력과 재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배경이 되어 주는 일이다.

말로야, 머리로야 왜 모르겠는가? 온갖 좋은 거 다 안다. 그러나 실제 상황에 부딪치면 머리는 어디로 가고 가장 유치하고 치졸한 수준의 감정적 반응을 하는 나를 본다.

자식과의 관계만큼 자신의 가장 밑바닥까지를 들여다 보게 하는 관계는 세상 천지 어디에도 없는 것 같다. 그 밑바닥이 얼마나 기막히게 유치찬란하고 수치스러운 수준인지, 그걸 건드리는 관계는 그게 누구든 절대 용서하지 않거나 관계를 끝장내고야 말 게다. 그러나 자식은 버릴 수도 없고 끝장 낼 수도 없다. 그러니 자식과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내 기막힌 밑바닥을 울며 겨자 먹기로 들여다보게 될 수밖에, 들여다보며 아프게 깨지고 또 깨질 수밖에… 그래서 자식을 기르다 보면 생의 쓴맛을 톡톡히 보며 성장할 수밖에 없나 보다. 그래서 자식을 여럿 기른 엄마가 거의 도사급에 달한 미소를 띠며 내게 “즐기세요!”라고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묘수를 던질 수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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