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중심 온라인 커뮤니티에

왁싱숍 여성혐오 살인사건

고인 모욕·품평하는 글 쏟아져

살해 원인 희생자에게 묻기도

 

지난해 5월 17일 ‘강남역 여성살해사건’이 발생한 후 강남역 10번 출구 벽에 붙은 추모 포스트잇. ⓒ이세아 기자
지난해 5월 17일 ‘강남역 여성살해사건’이 발생한 후 강남역 10번 출구 벽에 붙은 추모 포스트잇. ⓒ이세아 기자

이른바 ‘왁싱숍 여성혐오 살인사건’이 공론화되는 가운데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건 관련 기사나 남성 중심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피해자를 모욕·품평하는 댓글과 게시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사건 내용과 관계없는 말들로 희생자에게 또 다시 피해를 입힌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글들은 대개 피해자 외모를 품평하거나 직업을 희롱하는 식이다. 피해자의 죽음을 가볍게 여기고 비웃는 이도 있다. “여자 혼자 왁싱 하는 곳 강남에 또 있냐”며 여성 1인 영업장을 가르쳐달라는 글도 발견됐다. 사건의 심각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단순 가십거리로 소비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은 기사에 달린 댓글과 온라인 커뮤니티 반응들이다.

 

남성 중심의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왁싱숍 여성혐오 살인사건’ 관련 반응.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남성 중심의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왁싱숍 여성혐오 살인사건’ 관련 반응.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왁싱하던 여자 못생겼냐? 예쁘면 혼자서 남정네들 XX 만지기 꺼려할 텐데. 무슨 짓 할지 누가 알아”

“국내에서 뚱뚱한 여자가 여혐살인 당했다는 기사 못 봤는데 보신 분 있음?”

“인터넷방송 왁싱샵? 여주인이 남자손님을 왁싱? 어느 부위를 왁싱한 거지?”

“살해당한 ** 왁싱녀 유튜브 이거임?”

“왁싱하던 여자 예뻤냐ㅋㅋ”

“왁싱녀가 채영이보다 이뻤다고??”

“일베에 올라온 비제이 영상 속 그 여자분 맞냐? XX 이쁘시던데”

“대한민국 왁싱 스킬 쓰리톱이라는데 안타깝노”

“저 사망한 여자 유튜브로 봤었는데ㅋㅋㅋ 살인당했구나 ㅋ”

“피해자 XX 이쁘던데. 사진 어디서 볼 수 있냐? 연예인 누구 닮음?”

“구글에 아직도 (사진) 있음. 그냥 일반인 중에 ㅅㅌㅊ임. 보면 이쁘다 소리 나올 정도”

살해 원인과 책임을 피해자에게 돌리는 글도 발견된다. 지난 1일 한 누리꾼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솔직히 그 왁싱샵 1인 운영이라면서. 다 그런 생각하지 않냐? 여자가 혼자 겁도 없이 오피스텔에서 남성 위주 왁싱샵을 운영하면 무슨 일 생길지 모르는데 겁 너무 없긴 했다”는 글을 올렸다. 이에 “이제 여자 혼자 일하는 것도 잘못이냐”는 반응이 쏟아졌다.

이번 일을 ‘여성혐오 살인사건’으로 여기지 않는 반응도 여전하다. 지난해 강남역 여성살해사건이 발생한 이후 한국사회 내 여성혐오를 지적하는 담론이 형성됐지만, 일부 남성들이 여성혐오 문화를 바라보는 시각에는 변화가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그냥 범죄지 무슨 여성혐오에, 남자 싸잡아 비꼬냐” “여자만 죽으면 여혐인가. 어처구니 없네” “이게 여혐살인하고 뭔 상관이냐 대체. 돈 훔치려고 사람 죽인 걸 여혐으로 조장하다니 진짜 답이 없네” 등의 반응은 꾸준하다. 특히 고인에 대한 남성들의 희롱·모욕 등 여성혐오 발언은 심각한 수준이다.

 

‘왁싱숍 여성혐오 살인사건’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들. ⓒ네이버 기사 댓글 캡처
‘왁싱숍 여성혐오 살인사건’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들. ⓒ네이버 기사 댓글 캡처

그러나 이번 사건은 가해자가 신상이 유포된 여성을 미리 범행 대상으로 삼고 사전에 계획을 세워 살해를 저질렀다는 점에서 명백한 여성혐오 살인으로 보인다. “만약 왁싱숍 사장이 건장한 남자였어도 범인이 과연 살해하러 갔을까?”라는 의문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유다. 경찰조사 결과 가해 남성 배모(31)씨는 지난 5월 한 인터넷 방송을 통해 여성 홀로 주택가에서 왁싱숍을 운영한다는 사실을 알고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고 밝혔다. 그는 손님으로 위장해 가게를 방문한 뒤 왁싱 시술을 받다 여성의 목을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한국여성의전화(이하 여전)가 경찰청 범죄통계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 5년(2011~2015년)간 살해당한 여성은 1002명에 달했다. 살인미수 피해를 입은 여성도 1037명으로 나타났다. 여전이 지난해 언론에 보도된 살인사건을 분석한 결과 남성에게 살해된 여성은 103명이었다.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페미사이드(femicide·여성살해)에 여성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다. 트위터에 생성된 ‘#그렇다고 여자를 죽이면 안 됩니다’라는 해시태그에는 여성들의 피맺힌 절규가 들어있다. “여성혐오는 이미 여성의 생존을 위협하는 단계에 도달했습니다. ‘여성 살해를 멈추라’는 이 당연한 말을 여성들이 언제까지 외쳐야 합니까?”

한편 6일 정오부터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에선 이번 사건을 계기로 여성 살해를 사회문제로 공론화할 것을 촉구하는 ‘여성혐오 살인’ 공론화 시위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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