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소수자다
우리는 모두 소수자다
  • 김경집 인문학자
  • 승인 2017.07.17 14:24
  • 수정 2017-07-17 14: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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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주한 미국대사관 건물에 퀴어문화축제에 지지를 보낸다는 의미로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이 걸려 있다. 주한 미국 대사관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올해 한국 퀴어문화축제도 지지하고 참여하길 기대한다며 무지개 깃발을 건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뉴시스·여성신문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주한 미국대사관 건물에 퀴어문화축제에 지지를 보낸다는 의미로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이 걸려 있다. 주한 미국 대사관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올해 한국 퀴어문화축제도 지지하고 참여하길 기대한다며 무지개 깃발을 건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뉴시스·여성신문

1. 미국대사관의 건물에 무지개 깃발이 걸렸다. 그리고 도심에서는 퀴어문화축제가 열렸다. 동성애에 대해 극도의 혐오를 가진 사람들, 특히 기독교인들이 그것을 훼방하기 위해 모였다. 그들은 어김없이 성조기를 흔들었다. 수구 집회에서 태극기와 함께 흔들던 그 성조기가 그들에게는 무슨 부적쯤 되는 모양이다. 그런데 그들이 그토록 신봉하는 미국의 대사관에는 보란 듯 무지개 깃발이 걸렸다. 이 모순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그것도 21세기에.

2. 말도 많던 최저시급이 결정되었다. 2017년 6470원이던 시급은 내년에는 7530원으로 인상된다. 16.4%의 인상률이다. 어떤 이는 그렇게 가파른 임금 인상으로는 도저히 견딜 수 없다고 저항하고 어떤 이는 적어도 1만 원은 되어야 한다고 비판한다. 서로의 처지에서 그렇게 불평과 비판은 가능하다. 그러나 임대료와 물가의 인상률과 비교해서 따지는 입체적 분석은 거의 없다. 불과 몇 년 사이 임대료가 두 배 이상 오른 곳이 허다하다. 벌어서 거기에 쏟아 붓는다. 아르바이트 시급 인상이 자영업자를 망치는 게 아니다. 차라리 그런 인상률들과 연동하는 것이 낫겠다 싶기도 하다. 현상만 볼 게 아니라 구조의 본질부터 살펴야 한다.

지금은 ‘흑인’이라는 말도 부정적 의미로 쓰이며 금지된다. ‘살색’이라는 말도 금지된다. 예전에 흑인이라는 이름에는 노예나 짐승처럼 인간이 아닌 거죽만 인간의 모습을 띈 존재로 여겨졌다. 그게 그리 오래 된 것은 아니다. 우리는 노예해방하면 반사적으로 링컨을 떠올리지만 그보다 먼저 노예 해방에 앞장 선 사람이 있었다. 바로 윌리엄 윌버포스다. 그는 엄청난 부잣집에서 태어났고 명문대학을 다녔으며 나중에 수상이 되는 피트와도 친구 사이였다. 일찍이 정치에 뛰어들어 약관의 나이에 하원의원이 되었다. 그는 전형적인 금수저였다. 그랬던 그가 ‘노예무역의 폐지와 노예해방’이라는 정치적 목표를 정하고 평생 그것을 관철하는 데에 헌신하고 투쟁했다.

18세기 영국에서 노예무역은 국가적 경제행위였다. 당시 국가 수입의 1/3이 노예무역에서 발생했을 정도였다. 그것을 폐지하라는 건 무모한 도전이었고 곧 영국 전체에 대한 외로운 싸움이었다. 암살 시도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굴복하지 않았고 그의 투쟁은 50여 년을 이어갔다. 마침내 영국의회는 모든 노예를 1년 안에 해방시키라는 법령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그 소식을 들으며 윌버포스는 눈을 감았다. 그는 엄청난 재산가였으나 말년에는 집 하나 없어 아들들의 집을 전전했다. 그가 방탕하게 탕진한 게 아니었다. 그는 영국을 개혁하고 가난한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 요즘 돈으로 1조원에 가까운 돈을 몽땅 퍼부었다.

독점적 소유와 지배의 세상이다. 약자에 대한 공감의 능력은 상실하고 힘센 자가 모두 장악하며 똑똑하고 잘난 자들은 그 주변에 모여 빌붙으며 떡고물을 탐한다. 숫자로는 그들이 소수지만 힘으로는 그들이 다수고 대부분의 시민들이 소수다. 우리는 모두 소수자다. 최저시급을 받는 수많은 사람들, 특히 청년들이 소수고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해 억압받는 이들이 소수다. 그런데 나는 거기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억압하고 배척하며 증오한다. 그게 신념이나 이념이라 착각한다. 우리가 지금 당연한 듯 누리는 권리도 앞선 세대의 피나는 투쟁의 결과물이다.

카렌 암스트롱은 『축의 시대』에서 공감이 인간의 지성과 영성의 토대며 사회를 건강하게 하는 밑돌임을 강조한다. 그러한 자각이 인류 문명을 발전시켰다. 중국의 군자 사상도 그런 면에서 이해해야 한다. 군자들의 사회는 사회 지배층이 도덕성을 회복하고 실천하는 사회다. 우리가 군자나 윌리엄 위버포스처럼 살 수는 없어도 적어도 그들의 가르침은 새기며 살아야 한다. 새로운 ‘축의 시대’는 ‘새로운 인간 내면이 발견과 성찰’에서 가능하다. 나와 다르다고 억압하고 나보다 못났다고 조롱하는 건 도리가 아니다. 먼저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배려와 공감의 능력을 회복해야 한다. 그게 없으면 제4차 산업혁명의 세상은 지옥이 된다. 남 일이 아니다.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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