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릴 스트립, 엠마 왓슨, 스칼렛 요한슨, 케이트 블란쳇, 제니퍼 로렌스, 조셉 고든 래빗, 베네딕트 컴버배치…. 내로라하는 할리우드 스타들에게서 발견되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페미니즘을 선언하고 지지한다는 것. ‘페미니스트 셀럽’들은 공식석상에서, 수상소감에서, 인터뷰에서 그리고 일상에서 페미니즘을 이야기한다. 때로 유명인의 한 마디는 세상을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남성중심의 한국사회를 뚫고 나와 젠더규범을 깨트리려는 한국의 페미니스트 셀럽은 과연 얼마나 될까? 그동안 페미니즘과 맞닿은 발언으로 대중을 열광케 한 ‘페미니스타’들을 모았다.

 

배우 김혜수 ⓒ뉴시스·여성신문
배우 김혜수 ⓒ뉴시스·여성신문

지혜롭고 당당한 여성, 김혜수

WE SHOULD ALL BE FEMINIST(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배우 김혜수가 지난 2월 공식석상에 입고 나타난 티셔츠 문구다. 페미니스트라면 색안경부터 끼고 보는 한국사회에서 당당히 페미니즘 문구가 쓰인 티셔츠를 입고 나온 그에게 찬사가 쏟아졌다. 지난해 영화 ‘굿바이 싱글’ 팬페스트 행사에 참석했을 땐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위한 평화의 소녀상 배지를 착용해 화제를 모았다.

최근 출연한 자동차 광고에선 주체적인 여성을 그려내 호평을 받았다. 그간 자동차 광고에서 여성은 보조적인 인물로 묘사되거나 성적인 이미지로 소비됐다. 일련의 흐름을 깨고 그는 당당하고 자유로운 여성을 표현했다. 지난 3월 열린 신차 공개 행사에서 그는 “광고 제안을 받았을 때 ‘내가 꿈꿔온 삶, 바로 지금’이라는 슬로건이 와 닿았다. 진짜 내 모습을 남길 수 있다는 점에 관심이 갔다”고 밝혔다.

‘남성중심’의 영화시장에 김혜수가 남긴 쓴 소리는 여전히 한국 영화계에 유효하다. 그는 2015년 3월 ‘차이나타운’ 제작보고회 때 이렇게 말했다. “요즘 한국영화 시장에 여성이 주체가 되는 한국영화를 찾아보기 힘들다. 비중이 있어도 남자 캐릭터를 보조해주는 기능적인 역할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배우 김서형. 영화 ‘악녀’ 중 한 장면. ⓒ영화배급사 NEW 제공
배우 김서형. 영화 ‘악녀’ 중 한 장면. ⓒ영화배급사 NEW 제공

 

배우 김옥빈. 영화 ‘악녀’ 중 한 장면. ⓒ영화배급사 NEW 제공
배우 김옥빈. 영화 ‘악녀’ 중 한 장면. ⓒ영화배급사 NEW 제공

여성배우들의 말하기, 김서형·김옥빈

수년간 한국 영화계는 남성들 판이었고, 여성영화 기근 현상은 계속됐다. 그 속에서 살아남은 여성 배우들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영화 ‘악녀’의 주인공 김서형·김옥빈은 인터뷰를 통해 여성 배우가 겪어야 하는 ‘녹록치 않음’을 이야기했다.

김서형 “‘여배우’라는 말을 쓰고 싶지 않다. 그럼 남배우라는 말도 써야지. (…) ‘악녀’도 그간 ‘여자’ 액션물이 워낙 없었기에 ‘여배우 액션’이라는 말로 홍보를 한 거지, 사실 배우라면 다 할 수 있는 걸 여자들이 한 것뿐이다. 이런 걸 보면 창작자들이 너무 한정적으로 일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씨네21 인터뷰 중)

김옥빈 “힘 없고 자신의 인생에 대해 나아갈 방향성을 못 찾는 캐릭터는 하기 싫다. 자기 생각을 또렷하게 얘기할 수 있는 캐릭터를 좋아한다. (한국영화에는 이런 여자 캐릭터가 정말 없다) 왜 그럴까 생각해봤는데, 모르겠다. 유교사상 때문인지 뭔지. 남자들은 자기주장이 강한 여자가 나오면 두려워하는 걸까? 어찌 됐건 자신의 지배하에 놓고 싶어 한다” “요즘은 젠더 영역이 무너지고 있지 않나. 가정이나 일터에서도 점차 고정된 성 역할이 없어져야 한다고 본다”(GQ 인터뷰 중)

 

배우 엄지원(왼쪽)·공효진 ⓒ뉴시스·여성신문
배우 엄지원(왼쪽)·공효진 ⓒ뉴시스·여성신문

영화 홍보꾼에서 페미니즘 전도사로, 공효진·엄지원

배우 공효진·엄지원은 지난해 12월 영화 ‘미씽’을 홍보하는 자리에서 페미니즘 발언을 해 큰 호응을 얻었다. 둘은 시사회장과 언론 인터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가릴 것 없이 곳곳에서 여성주의와 맞닿은 발언을 당당하게 쏟아냈다.

공효진 “영화촬영 현장은 투쟁의 현장이다. 그래서 페미니즘을 발동해 독립투사처럼 싸워야 했다” “여성 감독이 만든 여성 중심의 이야기도 분명 재미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엄지원 “브로맨스 너무 많이 봤다. 이젠 지겹지 않나? 여자들끼리도 케미가 있다” “남자들 피 흘리고 욕설 난무하는 영화 보느라 다들 얼마나 피곤했나. 이제 새로운 시대가 열렸고, 새로운 이야기를 할 때가 된 것 같다” “충무로에 좋은 남자배우는 많은데 좋은 여자배우는 없다고 한다. 여자배우가 없어서 없었을까, 아니면 쓰이지 않아서 없었을까. 한 번 질문해보고 싶다”

 

배우 김여진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배우 김여진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소셜테이너’ ‘개념 연예인’ 김여진

한국여성재단 홍보대사로도 활동 중인 그는 한국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한다. 김씨는 지난 4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지금 한국 영화계엔 여자 배우가 뭘 할 수 있는 틈이 없다”며 “전부 남자 차지다. 최근 몇 년간 더 심해졌다. ‘남성 카르텔’인가 싶을 정도로 몇몇 배우와 감독이 계속 한국영화를 독식하는 느낌”이라고 했다. “김혜수, 전지현이 ‘원탑’은커녕 여러 남자들 속 조연을 한다. 여성 캐릭터도 없고, 있어도 남성 영화에 양념처럼 들어갈 뿐이다. 탐나는 역할이 없다.” 김씨가 “주체적인 여성을 그린 영화, 여성 감독을 무조건 응원”하는 이유다. “일하는 여성 중 페미니스트가 아닌 사람이 있나요? 사소한 차별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내 안에 ‘리트머스지’가 있다는 거죠. 차별에 불편해하고, 화를 내고, 참기도 하는 모든 순간이 다 페미니즘이죠.”

 

개그우먼 김숙 ⓒ뉴시스·여성신문
개그우먼 김숙 ⓒ뉴시스·여성신문

개그우먼 김숙, 가부장제 미러링과 시원한 ‘걸크러시’

“남자가 조신하니 살림 좀 해야지” “어디 아침부터 남자가 인상을 써?” “에이~술은 남자가 따라야지” 가부장을 미러링한 가모장 캐릭터로 ‘걸크러시’의 아이콘이 된 개그우먼 김숙. 한국 여성들이 어릴 때부터 지겹도록 들어왔던 말을 거울에 반사하듯 남성에게 되갚아준 그의 화법은 통쾌함을 자아냈다. 이는 ‘가모장숙’ ‘숙크러쉬’ ‘갓숙’ 등 갖가지 별명이 쏟아지게 만들었다. 김숙은 미러링 화법에 대해 “왜 (여자가) 남자한테 당하고 살아야 되나. (가부장제를) 깨부수고 새로운 여성상을 제시하자는 의미”라고 밝힌 바 있다. 기존 성역할을 허물고 가부장제의 불합리를 드러내는 그의 개그에 여성들은 열광했다. “실력 있는 개그우먼들을 위한 여성 예능이 늘어나야 한다”(지난해 7월 MBC에브리원 예능프로그램 비디오스타 제작발표회 당시) “‘슬램덩크’는 유일무이한 여성 예능이기 때문에 지키고 싶다”(지난 5월 ‘언니들의 슬램덩크2’ 종영 당시)는 말에선 여성 연대를 꿈꾸는 김숙의 바람을 엿볼 수 있다.

 

배우 김꽃비 ⓒ이정실 사진기자
배우 김꽃비 ⓒ이정실 사진기자

김꽃비 “찍는 페미 활동 자체가 ‘페미니스트’ 선언”

“지금 한국사회의 영화·영상 콘텐츠계에는 페미니즘이 필요하다” 배우 김꽃비가 한 말이다. 그는 신희주 감독, 박효선 감독과 지난해 10월 페미니스트 영화·영상인 모임 ‘찍는 페미’를 개설했다. ‘#나는_페미니스트다’ 해시태그 선언에 동참하는 등 적극적인 페미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1월 21일엔 강남역 일대에서 진행된 ‘세계여성공동행진’에 참여해 “여성배우는 현장의 꽃이 아니다”라는 피켓을 들고 페미니즘 물결과 함께했다. “여성은 일터에서조차 ‘네가 무슨 여자냐 좀 꾸며라’라는 소리를 흔하게 듣습니다. 여자를 동료가 아니라 성애의 대상으로 여기기 때문이죠. 이게 우리사회에 페미니즘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배우 이주영 ⓒYNK엔터테인먼트
배우 이주영 ⓒYNK엔터테인먼트

배우 이주영 “‘여배우’는 여성혐오적 용어”

배우 이주영은 지난해 10월 자신의 SNS에 “‘여배우’는 여성혐오적 단어가 맞다. 이 간단한 문장이 이해되지 않으면 공부를 더 하라”는 쓴 소리를 남겼다. ‘여성인 배우를 여배우라고 부르는 것이 왜 여성혐오가 되냐’는 비난이 이어졌고, 그는 명쾌하게 반박했다. “우리는 평소에 남자배우는 ‘남배우’라고 부르지 않지만 여자배우는 ‘여배우’라고 부른다. 이는 인간의 디폴트가 남자라는 시선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 “여자와 남자가 평등한 존재라는 말이 이렇게 갑론을박할 일인가. 나는 앞으로도 당연한 것을 예쁘고 친절한 말로 주장할 생각이 없다.”

 

배우 권해효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배우 권해효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남자 페미니스트’ 권해효

배우 권해효는 15년 가까이 여성운동을 지지·지원해왔다. 2009년부터는 한국여성단체연합 홍보대사를 맡고 있다. 2003년 호주제 폐지에 대한 민법 개정안이 추진됐을 당시엔 국회 앞에서 1인시위를 하며 힘을 보탰다. 이밖에도 여성가족부 폐지 반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시위 활동에 참가해왔다. 그는 2014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호주제가 폐지되기 전인 2002년 둘째 딸아이의 출생신고를 하면서, 결혼을 하면 부인이 남편 호적에 입적되고 본적도 같아진다는 것을 알았다. 이때부터 우리사회의 ‘여성 인권’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페미니스트로서 영향력을 보여달라’는 한국여성민우회의 요청에 이렇게 답했다. “‘여자다운, 남자다운’보다 나다울 수 있는 세상을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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