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자 잘 돌보는 사회여야

여러 층위의 돌봄 퍼즐 풀려

 

쉬운 대안인 저임 돌봄노동자화

좋은 돌봄은 돌봄자에 대한

좋은 돌봄 이뤄져야만 보장

 

요양병원에서 의료진이 노인들을 돌봐주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요양병원에서 의료진이 노인들을 돌봐주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현대의 많은 복지국가들은 저출산·고령화 사회,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증가, 가족형태 다양화 등으로 인한 돌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사회도 2000년대 이후 보육서비스 확충, 육아휴직제도 확대, 장기요양보험제도 확대, 가족돌봄휴직제도 도입 등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왜 한국사회는 돌봄의 사회화 정책이 전개되고 있는데도 여전히 충분히 좋은 돌봄이 이뤄지지 않는 것일까?

여성주의 돌봄연구자들은 복지국가의 정책 설계에 있어 돌봄이 가진 보편성, 포괄성, 통합성을 고려해야 좋은 돌봄이 보장된다고 강조한다. 돌봄은 모든 인간의 기본적 삶의 조건이고, 인간의 의존성은 삶의 보편적 원리라는 점을 받아들여야 비로소 좋은 돌봄정책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한 개인이 태어나자마자 독립적으로 생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의 독립성은 짧게는 3년, 길게는 20년 가까운 의존과 돌봄의 산물이다. 따라서 돌봄정책은 돌봄과 돌봄자의 경험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하지 않는다면 온전한 정책을 수립할 수 없다.

우선 돌봄은 단지 아동이나 아픈 노인을 직접 먹이고, 씻기고, 밤새워 지켜봐주는 직접적 수발 행위를 넘어선다. 돌봄은 아동이나 노인을 위해 집을 깨끗이 청소하고, 빨래하고, 장을 봐서 음식을 만들고, 쉴 수 있도록 정돈하는 등의 일상생활 지원, 도우미를 고용하거나 공공·민간기관이나 병원에 연락해 각종 서비스를 연결하고 병원이나 직접 모시고 가는 관리나 매니지먼트 활동은 물론 정신적으로 푸념이나 하소연, 불평을 들어주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정신적 케어와 감정노동을 수반한 관계 행위, 생활비나 병원비 등에 대한 경제적 지원 등 다양한 차원에서 일어난다.

돌봄은 단지 신체적 수발로 한정된 노동이 아니라 생활·정서·관계 전반에 연결돼 있는 통합적 행위로 이해해야 한다. 또 돌봄은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다차원적, 중층적 속성을 갖는다. 피셔와 트론트는 돌봄을 관계적 속성, 도덕적 가치, 정의의 속성과 결합해 정의한 바 있다(1990). 돌봄은 단계별로 접근되는데 우선 돌봄의 욕구와 필요성을 인지하고 이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두 번째는 돌봄자가 책임을 지고 돌봄을 제공하겠다고 마음을 먹는 것이며, 세 번째는 대상자와의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 돌봄을 제대로 수행하는 것이다. 마지막에는 돌봄 수혜자가 어떻게 느끼는지 살펴보고 대상자의 욕구에 충분히 반응해주는 것이다.

종합해보면 돌봄정책은 대상자보다 돌봄자가 거쳐나가는 단계별 행위와 도덕적 속성을 제대로 고려해야 좋은 돌봄이 이뤄질 수 있다. 돌봄자를 충분히 고려해 돌볼 때 피돌봄자가 가장 좋은 돌봄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된다.

키테이는 그리스 시대에 산모를 돌봐주던 듈리아를 예로 들면서, 산모를 잘 돌봐줘야 산모가 아이를 최상으로 돌볼 수 있듯 복지국가 돌봄정책의 기본방향으로 돌봄자 중심의 돌봄정책을 옹호한다(1999). 돌봄자를 잘 돌보는 사회 속에서만 복지국가의 난제가 된 저출산, 고령화,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남성의 가족활동 참여, 아동과 노인을 위한 충분한 돌봄 보장 등 여러 층위의 돌봄 퍼즐이 풀린다는 것이다.

돌봄자를 잘 돌본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가족 내 돌봄을 수행하는 사람들이 성별로, 계층별로 게토화되지 않게 해주는 정책을 만들고 노동시장 내 돌봄부문 근로자들의 노동조건을 좋게 해줘 기계적 행위가 아닌 진정한 돌봄이 일어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을 말한다.

최근 돌봄 위기가 늘자 남녀 간, 사회-가족간 ‘함께 돌봄’정책보다는, 저소득 고령여성이나 제3세계 여성을 통한 저임 돌봄노동자화 정책이 손쉬운 대안으로 활용되고 있다. 좋은 돌봄은 돌봄자에 대한 좋은 돌봄을 통해서만 보장된다는 아주 단순하지만, 변하지 않는 진실을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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