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스토리 최우미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여성위원장

노조 창립 57년만에 여성위원회

여성할당, 일·가정 양립에 주력

‘창구텔러’로 일하는 저임금직군

99% 여성…사실상 ‘현대판 여행원’

6월 처우 개선 위한 분과 출범

 

칼바람 부는 취업 현장에선 ‘은행’은 최고의 직장으로 꼽힌다. 평균 연봉이 8000만원을 넘어서고 고용이 안정적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워낙 취업 경쟁이 치열해 은행 취업은 ‘바늘구멍’으로도 불린다. 복지가 잘 돼 있고 여성 직원 비율이 높아 은행은 여성친화적인 직장으로도 꼽힌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사정이 복잡하다.

“창구 텔러로 불리는 ‘저임금직군’은 대졸 공채 신입사원과 다른 경로를 통해 채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직군도 다르고, 업무 범위와 승진에 제약도 있고요. 임금도 일반직의 50~60% 수준입니다. 특히 이 저임금직군 노동자 99%가 여성이에요.”

최우미(45)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이하 금융노조) 여성위원장은 은행권 저임금직군을 가리켜 “사실상 현대판 여행원”이라고 비판했다. 1993년 공식적으로는 ‘여행원’ 제도가 사라졌지만 현장에선 저임금직군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있다는 얘기다. 최 여성위원장은 사실상 여성 노동자가 임금과 승진에서 제약을 받는 저임금직군 문제를 여성위원회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다루겠다고 밝혔다. 저임금직군처우개선분과위원회를 조직해 실태파악을 시작으로 처우 개선 방안을 모색하겠다는 계획이다.

금융노조 산하 여성위원회는 지난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 창립됐다. 금융노조 설립 57년만이다. 금융권 여성 비율은 절반이 넘는다. 여성 노조원도 전체의 55%에 달할 정도다. 그동안 여행원 제도 폐지, 육아휴직 등 모성보호 단체협약, 일본군위안부 기억의 터 등 여성의 권익 향상을 위한 노동운동에 앞장서왔다. 하지만 여성위원회 설립은 좀 늦은 감이 있다.

“금융노조는 여성노동자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앞장서왔지만 여성위원회 설립은 많이 늦은 편이에요. 새 집행부의 공약이었지만 33개 지부 대표자회의에서 만장일치로 통과할 정도로 여성위원회 설치에 대한 노조 내에 공감대가 컸죠.”

여성위원회는 금융노조 여성 상임간부로 구성된다. 여성 상임간부가 없는 지부는 여성 담당 간부나 비상임 여성 간부 1인을 지부 위원장이 추천해 총 57명으로 구성됐다. 여성 상임간부가 없는 지부에서 추가적으로 여성 담당 간부나 비상임 여성 간부를 추천하면 규모는 더 확대될 전망이다.

초대 여성위원장을 맡은 최 여성위원장은 25년 전 신행은행에 입행할 때만 해도 평범한 은행원이었다. 하지만 그는 1992년 당시 ‘여행원’으로 불렸다. 같은 해 입사한 남자 동기와 다른 처우를 받으며 임금마저 차별이 있었지만 이 사실을 잘 알지 못했다. 이듬해에 “선배들의 노력으로” 여행원 제도가 사라지면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두 아이를 키우며 워킹맘 행원으로 살던 그의 인생행로가 바뀐 것은 2013년이다. 신한은행 노조위원장 선거를 준비하던 유주선 위원장의 권유로 여성본부장으로 본격적으로 노조 활동에 나섰다. 금융권의 단기 실적 지상주의와 은행 간 과도한 경쟁이 강화되면서 “이대로는 안된다”는 생각에서 였다. 금융노조 여성본부장을 거친 그는 올해 금융노조 새 집행부가 들어서면서 여성위원장에 임명됐다.

 

여성위원회가 출범하자 마자 한국감정원장의 성희롱 발언이 수면 위로 떠올라 바로 이슈 대응에 나서기도 했다. 최 위원장은 “성폭력 문제는 강력 대응해야 2차 피해를 막을 수 있기 때문에 ‘해임’을 강력 요구했고, 결국 임기를 하루 남겨두고 해임을 이끌어냈다”고 설명했다.

여성위원회는 저임금직군 처우 개선을 비롯해 직장 내 성희롱, 관리자 여성할당제, 일·가정 양립 실현, 감정노동자 보호 등 추진해야 할 과제가 산적하다. 노조 내 낮은 여성 대표성도 개선해야 할 숙제다. 최 여성위원장은 무엇보다 “금융노동자에게도 점심이 있는 삶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은행은 복지제도가 잘 갖춰져 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노동강도가 세고 장시간 노동에 시달려요. 오전 8시 전에 출근해 야근도 밥먹듯 하죠. 출퇴근 시간 뿐만 아니라 업무시간에도 대고객업무를 하다보니 점심을 제대로 먹을 시간이 부족해요. 지점 마다 인력이 적기 때문에 한 명이 점심을 먹기 위해 창구에서 빠지면 바로 대기고객이 많아지거든요. 근로기준법에 8시간 일하면 1시간 이상의 휴게시간, 즉 점심시간이 보장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지만 지키기 어려운 거죠. 금융노동자는 ‘저녁이 있는 삶’은 고사하고 ‘점심이 있는 삶’부터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에요.”

그는 오후 3시까지 영업을 하는 일본이나 점심시간에 문을 닫는 해외 은행 사례를 들며 “일반 직장의 점심시간인 12~1시를 피해 1~2시를 점심시간으로 정해 은행문을 닫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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