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여성신문 신년기획] 눈치 주는 사회 ⑦ ‘비정상’ 취급받는 비혼

비혼 여성 증가는 “합리적 선택에 따른 결과”

여전히 비혼주의자엔 ‘결핍’ ‘한심’ 낙인

비혼·결혼·출산은 선택인 사회로 나아가야

 

비혼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지만, 정부가 최근 내놓은 혼인율 감소 대책에선 이에 대한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 ⓒpixabay
비혼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지만, 정부가 최근 내놓은 혼인율 감소 대책에선 이에 대한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 ⓒpixabay

“정부야 아무리 나대봐라, 내가 결혼하나 고양이랑 살지!” 지난 27일, 페미니즘 단체 ‘불꽃페미액션’이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외쳤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출산 제고대책으로 고학력 여성들의 ‘하향 결혼’ 선택 유도 방안을 내놓자, 이를 규탄하는 여성들이 연 기자회견이었다. 

여성들이 외쳤듯 “결혼과 출산은 개인의 선택”이다. 비혼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1995년 1인 가구는 전체의 12.7%에 불과했지만, 20년 만에 27.2%로 늘면서 가장 보편적인 가구 형태가 됐다. 1인 가구는 2030년 724만 가구(33%), 2050년 763만 가구(35%)까지 늘어날 전망이다(한국국토정보공사, ‘대한민국 2050 미래 항해’ 보고서). 

 

 

사람들은 왜 비혼을 택할까. 결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경제적 어려움 탓이 크다. 리서치 전문기업 마크로밀엠브레인이 지난해 만 19~59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최근 설문 조사한 결과, 71.2%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미혼남녀의 증가”를 비혼 증가 원인으로 꼽았다. “자녀 양육비 부담”(63.1%), “높은 주거비용 부담”(60.8%), “결혼비용 부담”(59.6%), “미혼남녀의 취업난”(54.7%)을 드는 이들도 많았다. 

자발적인 비혼도 늘었다. 설문조사 결과 사람들의 자기애 증가(36.3%), 여권 신장(36.2%)도 비혼 증가의 주 원인으로 뽑혔다. 결혼하면 “자유로운 생활이 없어질 것 같아 두렵다”는 미혼 응답자가 50.4%(중복응답)에 달했다. 남성(40.1%)보다 여성(59.5%)의 두려움이 더 컸다. 미혼 여성의 77.5%는 “안정적인 직장과 능력만 있다면, 굳이 결혼할 필요 없이 연애를 즐기면서 살아도 좋다”고 답했다. 

그러나 고학력 여성이 결혼 시장에서 눈을 낮추도록 유도하는 문화 캠페인부터 국가 주도의 ‘미혼남녀 맞선’ 프로그램까지, 정부가 최근 내놓은 혼인율 감소 대책에선 이러한 현실에 대한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비혼주의자들을 “주류 사회의 규범과 문화로 어떻게든 다시 편입시키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지난 24일 보건사회연구원의 원종욱 인구영향평가센터장은 ‘고소득·고학력 여성의 하향결혼 유도’ ‘채용 과정에서 불필요한 스펙엔 불이익 부여’ 등을 출산율 제고 대책으로 제안해 사회적인 파문을 일으켰다. ⓒSBS뉴스 영상 캡처
지난 24일 보건사회연구원의 원종욱 인구영향평가센터장은 ‘고소득·고학력 여성의 하향결혼 유도’ ‘채용 과정에서 불필요한 스펙엔 불이익 부여’ 등을 출산율 제고 대책으로 제안해 사회적인 파문을 일으켰다. ⓒSBS뉴스 영상 캡처

이는 비혼주의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으로 돌아온다. “결혼을 안 한다는 이유로 ‘언제 철이 들까’, ‘어서 결혼해 손주를 낳아서 부모님이 마음 놓으실 수 있게 해야지’ ‘혹시 숨겨둔 애가 있다거나, 유전병이 있느냐’ 같은 말을 들은 적 있어요. 결혼을 해도, 안 해도 잘 살 수 있는 나라가 진짜 선진국인데, 한국 정부는 ‘나라의 앞날을 위해 어서 결혼해’라고 시민들을 압박하기만 해요.” 비혼 선언 4년차인 김미라(32) 씨가 말했다.

“‘남성 가장-여성 전업주부’라는 낡은 가정 모델부터 버려야 한다”고 비혼주의자인 프리랜서 디자이너 김형미(35) 씨는 말했다. “요즘 여자들은 ‘결혼 판타지’에 혹할 생각이 없어요. 성차별적 문화와 여성에 대한 배려 없는 근로·복지 제도 하에선, 여성이라는 이유로 결혼과 동시에 맞벌이 전선에도 나서야 하고, 가사노동·돌봄노동까지 떠안게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죠. 주변만 둘러봐도 선례가 많잖아요. 여성의 비혼은 더없이 합리적인 선택이죠. 정부는 애꿎은 여성들을 압박하기 전에 번지수부터 다시 짚어야 해요. 국가를 위해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사람은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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