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광(과학세대 대표, kwahak@byulnow.com)

며칠 전, 미국과 이탈리아의 불임연구팀이 2년 내에 인간복제를 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사람들은 별반 놀라지 않았다. 신문이나 방송도 지난 97년 영국에서 복제양 돌리가 처음 나타났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시들한 반응으로 일관했다.

인간복제, 불임치료제의 제도적 방법으로 제기

이미 사람들은 절반쯤은 인간 복제, 즉 체세포의 핵을 이용한 인간 개체 복제를 받아들이고 있는 셈이다.

이번 발표의 심각성은 지금까지 인간복제에 대한 주장이 UFO를 믿는 '라엘리언 무브먼트'나 그 소속 기업인 클로나이드사와 같은 단체에서 매우 특이한 사례로 나타났던 데 비해 공식적인 불임 심포지엄에서 의사와 과학자들의 불임치료의 제도적인 방법으로 제기되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번 사태를 보도한 기사들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존엄성, 생명윤리, 신의 영역을 넘보는…" 등의 천편일률적인 이야기를 늘어놓는데 그치고 있다.

인간복제는 여성의 소외를 부른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우리는 인간복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불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나쁠 것도 없지 않은가?

아마도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자리에서는 그동안 신물나게 들었을 인간의 존엄성 운운하는 이야기는 접어두고, 좀더 본격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특히 인간복제가 여성의 소외, 나아가 생명의 소외와 어떻게 이어지는지 우리 눈에 보이지 않게 숨겨진 교묘한 끈을 추적해보기로 하자.

DNA는 이제 사회권력이다

'유전자', 'DNA', '게놈'과 같은 단어들은 이미 우리 생활 속에 깊이 파고 들어있다. TV 광고에서, 잡지 표지에서, 화장품 선전문구에서 이런 단어들은 무수히 등장한다. DNA 이중나선은 실험실을 넘어 21세기의 상징물이자, 힘있는 문화적 아이콘(icon)으로 자리잡고 있다.

디지털의 뒤를 이어 DNA가 중요한 사회 권력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사람들은 인간의 DNA의 염기서열을 밝히는 게놈프로젝트가 완성되면 불치병도 고칠 수 있는 무병장수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유전자를 해석하면 생명의 모든 것을 알 수 있고, 유전자를 조작해서 생물과 생명까지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다는 생각을 받아들인다. 그 조작의 대상에 인간, 즉 인체가 편입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완벽한 유전자의 아기, 집으로 배달된다

얼마 전 국내에서 발간된 <맞춤인간이 오고 있다(궁리출판사)>라는 책은 그런 가능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미래에는 체세포 이식, 그러니까 가령 정자가 아닌 일반 세포의 핵을 난자에 이식하는 방법으로 인간복제를 하는 수준에서 부모가 원하는 완벽한 유전자를 가진 아기를 생산해서 집으로 배달하는 단계로까지 발전한다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현재 일본을 비롯한 일부 국가에서 추진중인 인공 자궁과 속성 발생과정에 대한 연구이다. 사람의 자궁을 모방한 인공 자궁을 만들어서 지금보다 훨씬 빠른 속성발생으로 아기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기를 원하는 사람은 자신의 세포 몇 개만 떨구고 집으로 돌아오면 한 두달 정도 지난 다음에 완벽한 아기를 택배로 배달받을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불임의 해결책에 그칠 수 있을까?

복제인간이 불임의 해결책으로 '제도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다면 과연 거기에서 그칠 수 있을까? 계속해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장담하기 힘들다. 현대의 기술중심 사회에서 신기술은 받아들여야 할 무엇이기 때문이다. 불임해결을 위한 복제인간 허용은 이른바 "미끄러운 경사길"에 한 발을 들여놓는 격이다.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걷잡을 수 없이 미끄러져 내리게 마련이다.

여성은 임신의 굴레에서 해방될 것인가

그렇다면 이 과정에서 여성은 힘겨운 임신의 굴레에서 해방되는 것인가, 아니면 여성이 가지고 있던 마지막 힘마저 빼앗기는 것인가? 이 문제는 이른바 생식기술(reproduction technology)의 발전을 둘러싸고 페미니즘 진영에서 숱한 논쟁이 벌어진 주제다.

하지만 지금까지 가사기술(家事技術), 또는 가전기술의 발전이 여성을 해방시키지 못했다는 숱한 실증적인 연구결과를 통해 알 수 있듯이, 현대의 기술이 결코 여성에게 호의적이지 않다는 점은 확실하다. 조금 어렵게 이야기하자면 현대 기술은 그 자체가 남성성(masculinity)의 현현(顯現)이라 할 수 있다.

근대사회의 소외구조, 기계적 효율성

복제인간의 발상은 우리에게 무척 익숙한 무엇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기계적 효율성의 추구이다. 체세포(體細胞) 복제기술은 유성생식(有性生殖)이라는 복잡한 생식과정을 배제하고 우량의 특성을 나타내는 개체의 유전자를 복사하듯 복제하는 기계적 효율성을 추구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근대 사회의 숱한 소외구조를 낳게 했던 근원이 바로 그것이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노동의 소외, 여성의 소외, 나아가 인간 소외는 모든 현상을 기계적 효율성이라는 유일한 요소로 환원시키려는 움직임의 부산물들이었다. 35억년에 걸친 생물의 역사에서 유성생식(有性生殖)이 언제 진화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많은 생물학자들은 유성생식이 생물의 다양성과 풍부함을 낳은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는데 동의한다.

짝짓기까지의 구애행위와 출산의 과정

사실 무성생식에 비하면 유성생식은 무척이나 번거롭고 복잡한 과정들을 수반한다. 가령 짝짓기에서 성공하기 위해 동물들이 벌이는 지난한 구애 행위나 한쌍의 남녀가 만나서 아기를 낳기까지 거치는 복잡다단한 과정과 그에 따른 숱한 물리적, 심리적 비용을 생각해 보면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비용은 그로 인해 획득되는 풍부함과 다양성에 의해 보상되고 남는다.

우량인간 품종의 대량생산 가능성

어쩌면 우리가 인간스러움(humanity)의 중요한 특성으로 꼽는 고도한 뇌 기능과 풍부한 감정,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문명도 거기에서 비롯되었을 수 있다. 그러나 복제는 생명에서 이런 모든 과정들을 제거한다. 이것은 생명이 오늘에 이를 수 있었던 과정과 그 배경들에서 생명을 소외시키고, DNA가 탄생할 수 있었던 풍부한 토대를 제거하는 것이다.

복제의 논리는 불확실하고 비효율적인 우회로들을 제거해서 효율적으로 '우량'의 품종(인간을 포함해서)을 대량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우량성(優良性)을 가능하게 했던 원천이 복잡하고 불확실한 과정이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탄생에서 분리된 섹스, 쾌락의 도구일 뿐

현대의 기술중심주의는 인간 조건의 근원에 해당하는 인간의 탄생성을 기계적 복제로 대체하려 하고 있다. 복제에 의해 성(性)은 그 의미를 이중으로 상실한다. 한편으로 탄생에서 분리된 섹스는 오직 쾌락의 도구로 전락한다. 남성과 여성도 탄생에서 그 역할을 상실하고, 세포핵 제공자와 대리모로 남을 뿐이다. 결국 복제는 생명의 소외인 것이다.

<자료제공 여자와 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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