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단톡방 스트레스 심한데

나올 수도 없어 울며 겨자먹기

74%는 퇴근 후 업무연락 받아

“왜 답장 늦냐” 빈축도

독일·프랑스선 이미 ‘불법’

국내서도 ‘카톡 금지법’ 발의

 

퇴근 후에도 이어지는 업무 관련 ‘카카오톡’에 고통을 호소하는 직장인들이 늘고 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직장인들이 평일 퇴근 뒤 하루 평균 1시간44분 더 일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신문
퇴근 후에도 이어지는 업무 관련 ‘카카오톡’에 고통을 호소하는 직장인들이 늘고 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직장인들이 평일 퇴근 뒤 하루 평균 1시간44분 더 일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신문

퇴근 후는 물론 주말까지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카카오톡’(카톡) 알람 소리에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직장인들이 늘고 있다. 근무 시간에는 업무 보고와 지시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회사 그룹채팅방(일명 단톡방)을 일일이 확인해야 하고, 퇴근 뒤까지 이어지는 카톡은 직장과 사생활의 경계선이 무너뜨리는 ‘족쇄’가 따로 없다.

모바일 메신저 카톡 사용자가 3500만명을 넘어서면서 그룹채팅방을 만들어 업무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회사도 많아졌다. 이 단톡방에서 모든 팀원이 회의실에 모이지 않아도 한 번에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시공간의 제약 없이 지시나 보고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우선 카톡이 업무의 영역으로 들어오며 업무와 비업무 간 경계가 사라진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박모(32)씨는 “퇴근하고 집에서 쉬고 있는데 팀장이 카톡으로 업무지시를 한 적이 수도 없이 많다”며 “메시지를 바로 확인하지 않으면 전화를 하기 때문에 집에서도 전화를 손에서 놓을 수 없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고용노동부와 여성가족부, 보건복지부 등 관계부처와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단체가 발표한 근로 관행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직장인 10명 중 7명이 퇴근 후 업무연락을 받아봤다고 답했다. 이 중 급한 업무처리로 인한 연락은 42.2%에 불과했으며 55.4%는 관행화된 장시간 근로에 기인한 업무연락인 것으로 조사됐다. 급하지 않은 일인데도 퇴근 후 업무 연락을 한 이유로는 △생각났을 때 지시해야 마음이 편해서 30.3% △퇴근시간 후 외부기관·상사 등의 무리한 자료 요청 때문에 17.9% △직원이 회사에 있을 것으로 생각해서 7.2% 등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이모(35)씨는 “퇴근 뒤에 오는 카톡 가운데 대부분은 다음날 출근해서 해도 되는 것들이라 더 화가 난다”며 “급한 일도 아닌데 자신이 까먹을까봐 다짜고짜 카톡을 하는 상사가 얄미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했다.

카톡을 대외용으로 사용해야 하는 상담직 노동자나 교사의 경우 카톡 스트레스는 더 하다. 김모(29)씨는 “직장 내부에선 단톡방, 외부에선 손님들이 카톡과 보이스톡(음성 통화)을 걸어 와 쉴 때도 쉬는 게 아니다”라며 “상담 업무를 맡고 있어 시도 때도 없이 카톡 메시지가 쏟아지는 통에 24시간 5분 대기조가 된 것 같다”고 했다.

초등학교 교사인 김모(35)씨는 “부모님들에게 상담이나 하실 말씀이 있으면 문자나 전화로 해달라고 말씀드리는데, 꼭 카톡을 보내는 부모님들이 있다”며 “수시로 날라오는 부모님들의 상담 메시지에 질린 동료 교사는 아예 개인용 휴대전화를 따로 만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업무 시간은 물론, 퇴근 후까지 이어지는 카톡 메시지에 직장인 대부분 불만을 느끼고 있지만, 메시지를 무시하거나 쉽게 이의를 제기하긴 어렵다. 직장인 박모(35)씨는 “단톡방은 대부분 상사의 업무지시와 충고로 가득 차 있는데, 거기서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퇴근 후엔 카톡하지 말라’고 할 수 있는 직장인이 누가 있겠느냐”며 “게다가 카톡은 글을 읽었는지 바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즉각 확인하고 형식적으로라도 ‘네’라고 대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주최한 ‘카카오톡이 무서운 노동자들’ 포럼에서 발표된 ‘스마트기기 업무 활용의 노동법적 문제’ 자료에 따르면 노동자들은 업무 시간 이후에 평균 하루 1.44시간(86.24분), 주당 11.3시간을 더 일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김기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전체 근로자의 86.1%는 퇴근 후에도 스마트폰 등으로 업무를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럽에서는 정부 차원으로 퇴근 뒤 업무 카톡을 못하도록 법제화가 시도되고 있다. 독일 노동부는 비상 상황을 제외한 퇴근 후 회사가 직원에게 전화나 메신저, 이메일로 업무 연락을 못하게 하는 지침을 마련했고, 프랑스도 올해 1월 1일부터 회사는 직원의 휴식시간 등을 보장하기 위한 목적으로 스마트기기 사용에 대해 매년 근로자들과 교섭해야 한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4월 LG유플러스가 상사가 오후 10시 이후 부하직원에게 카카오톡 등으로 업무 관련 메시지를 보내면 인사상 불이익을 받도록 했다. 하지만 현행 근로기준법에는 스마트기기를 활용한 업무 지시 관련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최근엔 이 같은 ‘카톡 감옥’에서 해방될 수 있는 법안이 발의됐다.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른바 ‘퇴근 후 업무 카톡 금지법’은 근로기준법 제6조 2항을 신설, ‘근로시간 외에 통신수단으로 업무에 관한 지시를 내려 근로자의 사생활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담았다. 노동자에게 퇴근 후 회사와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한국법제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퇴근 후 업무카톡(카카오톡) 금지법안의 주요 내용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정보통신기술 발달 이전에 구축된 법과 정책은 변화돼야 하며 노동자의 기본권 보호를 위한 입법자의 입법 의무가 반드시 이행돼야 한다”며 “근로시간과 업무의 범위를 구체화하는 법안과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한 산업재해보상 방안 등 스마트워크에 대한 업무 가이드라인이 하루빨리 설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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