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새로운 것을 얻은 건 없다. 다만 제자리 찾았을 따름”
“여성이 새로운 것을 얻은 건 없다. 다만 제자리 찾았을 따름”
  • 박길자 기자
  • 승인 2016.12.21 11:46
  • 수정 2017-07-09 22: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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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 여성 변호사 고 이태영 선생 혼 배인 곳

“​법 앞의 정의·​평등 실현은 여성문제 해결에서 시작”​

 

​가족법 개정운동 등 힘없는 여성 위한 ‘법의 서민화·생활화’ 힘써

 

한국가정법률상담소를 창립한 고 이태영 박사. ⓒ한국가정법률상담소
한국가정법률상담소를 창립한 고 이태영 박사.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내가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 있다면 한국 여성을 악법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는 것입니다. 앞장섰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먼저 나왔고, 가장 이 문제에 몸부림치고 있다는 뜻입니다. (중략) 30년 동안 나의 법의 역사와 함께 가족법 운동은 계속돼 왔습니다. 숙명적으로 내게 지워진 사명이지요.”(고 이태영 선생 인터뷰 중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변호사인 이태영 선생이 만든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올해로 창립 60돌을 맞았다. 1956년 8월 25일 여성법률상담소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상담소는 전쟁 후유증으로 신음하던 당시 여성들을 위한 ‘법의 서민화’ ‘법의 생활화’에 온힘을 쏟았다. 이때 태동한 법률구조사업이 여성이 안고 있는 3중의 짐(가난, 무지, 차별) 중에서 우선 법적 차별과 무지로부터 여성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후 60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여성인권, 가정문제에 특화된 전문 상담기관이자 법률구조기관으로 우리 사회에 법률복지라는 개념을 뿌리내리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해왔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는 양성평등 실현의 요람”(고 김대중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였다.

그 중심에 이태영 선생이 있었다. 상담소와 혼인했고 운명을 같이 해온 그는 생전에 “내가 상담소인지, 상담소가 나인지 모른다”며 “수십 년간 단 1000원도 받아간 적이 없다”고 했다. 법 앞의 정의와 평등의 실현은 바로 여성문제 해결에서부터 시작된다고도 했다. 이태영 선생은 가족법 개정에 대해선 “500년 묵은 인간차별의 벽이 무너졌다”며 “여성이 새로운 것을 얻은 것은 없다. 다만 제자리를 찾았을 따름”이라고 강조했다. “사람으로 태어났기에 사람 노릇 하게 됐을 뿐입니다. 더군다나 가족법이 여성법은 아니지 않습니까. 가족 모두의 법이잖습니까.”

1912년부터 1959년 신민법이 제정돼 시행되기 이전까지 사용된 구민법은 당시 일본 민법과 조선시대 이래의 관습법을 그대로 적용한 것으로 대개 우리 헌법의 정신과 모순됐다. 특히 친족편과 상속편 제정은 더욱 시급했다.

 

1956년 8월 여성문제연구원 부설 여성법률상담소 개소식 모습. ⓒ한국가정법률상담소
1956년 8월 여성문제연구원 부설 여성법률상담소 개소식 모습.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상담소는 창립 당시부터 양성평등과 부부평등에 입각한 민법 제정을 위해 노력했고 민법 제정 후 친족편과 상속편에 남아 있는 가족법 개정운동을 법률구조사업, 교육사업과 나란히 펼쳐나갔다. 1962년(1차), 1977년(2차), 1990년(3차) 등 지금까지 11차례에 걸쳐 가족법 개정 결실을 맺었다. 상담소 60년간의 주요 성과를 통해 여성운동 역사를 되짚어본다.

1. 가정법원 창설(1963)

창립 당시부터 가족법 개정운동을 주도해온 상담소는 1963년의 가사심판법 제정과 가정법원 창설을 주도해 가족구성원의 복리 향상과 법률복지를 위한 사회적 기반을 만들었다. 이태영 소장은 1962년 가족법 개정과 가정법원 설치를 요망하는 진정서를 여성단체연합회와 함께 국가재건최고회의에 냈다. 가족법 개정은 법조계 의견이 대부분 부정적이어서 추진을 미뤘고, 가정법원 설치는 진통 끝에 성사됐다. 가사심판법은 최고회의 의결을 거쳐 1963년 10월 1일부터 시행됐고 10일 가정법원이 문을 열었다. 가정의 민주화를 향한 또 하나의 초석이 마련된 것이다.

2. 호주제 폐지(2005)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호주제 폐지와 대안’을 주제로 마련한 심포지엄을 마친 여성들이 호주제 폐지를 촉구하는 거리 행진을 하고 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호주제 폐지와 대안’을 주제로 마련한 심포지엄을 마친 여성들이 호주제 폐지를 촉구하는 거리 행진을 하고 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1962년과 1977년, 1990년 세 차례 민법 개정으로 가족법상 양성평등‧부부평등을 이끌어내는 결실을 거뒀으나 가장 큰 장벽인 호주제 폐지가 과제로 남아 있었다. 1999년 호주제 폐지 운동본부를 발족했고, 이듬해 131개 시민‧사회단체가 참가한 호주제폐지를위한시민연대를 결성해 국회에 호주제 폐지 청원을 냈다. 곽배희 소장이 청원인 대표를 공동으로 맡았다. 2005년 1월 법무부는 신분등록제도개선위원회를 만들었고, 곽 소장이 위원으로 활동했다. 그해 호주제 헌법 불합치 결정이 내려졌고 3월 2일 국회에서 민법개정안이 통과돼 호주제 폐지라는 대역사를 썼다.

3. 동성동본 금혼 철폐(1997)

 

1991년 8월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동성동본 금혼’을 주제로 마련한 강연회와 피해자 사례 발표회에서 참석자들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1991년 8월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동성동본 금혼’을 주제로 마련한 강연회와 피해자 사례 발표회에서 참석자들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상담소는 가족법 개정운동의 연장선에서 꾸준하게 동성동본 금혼 폐지를 주장하고 신고센터를 열어 피해자들과 연대해왔다. 1995년 활동을 본격화하면서 피해 당사자들과 동성동본 금혼법 폐지를 위한 법정투쟁에 불을 붙였다. 피해자 모임의 부부 8쌍은 서울가정법원에 관악구청장을 상대로 동성동본혼인신고 불수리처분에 대한 불복신청도 했다. 그해 5월 가정법원은 동성동본 금혼 규정에 대해 위헌심판제청을 신청했고, 12월 국회의원 56명이 발의한 혼인특례법도 시행됐다. 1997년 7월 마침내 헌법재판소가 동성동본 금혼 규정 헌법불합치를 결정했다. 사실상의 위헌 결정이었다.

4. 양육비 이행확보 법제도 개선(2001)

2001년부터 양육비 이행 확보에 관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법제 개선을 위한 노력도 꾸준히 해왔다. 2001년 5월 ‘양육비 제대로 받고 있나’라는 주제로 연 심포지엄은 이혼가정 자녀의 양육비 확보 문제에 관한 본격적 논의의 시발점이 됐다. 그해에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회에 ‘이혼가정 자녀의 양육비 확보를 위한 정책 제안서’를 내 국가 차원의 법적‧정책적 지원도 요청했다. 2004년 상담소는 양육비 채권 지급의 이행 확보 법률안, 양육비 선급 법률안을 마련하고 입법을 촉구했고 10년 만에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다.

5. 이혼숙려제도 법제화(2007)

지식 없이 이혼한 후 후회하거나 법적 권리를 갖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현실에 주목해 2000년부터 이혼숙려기간 법제화를 주장했다. 2004년 서울가정법원은 가사소년제도개혁위원회를 출범시켜 1년간 협의이혼제도 개선과 상담에 관한 입법 논의를 했다. 상담소에서 논의돼온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이혼숙려기간, 상담제도 도입과 양육비 집행수단 방안 등을 의결했다. 국회에선 이혼 시 숙려기간을 도입하는 것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법안이 제출됐다. 2005년 열린우리당 이은영 의원이 ‘이혼절차에 관한 특례법 제정안’을, 한나라당 안홍준 의원이 ‘민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가족법 6차 개정으로 2007년 이혼 숙려기간이 도입됐다.

6. 이혼시 재산분할법제 개선(2016)

이혼 후 장래에 확정되는 퇴직금이 재산분할대상이 되지 않고 사립학교교직원연금,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등이 분할되지 않아 분할가능한 국민연금과의 불평등이 생긴다는데 문제를 제기하고 법 개정 운동에 나섰다. 이혼 후 장래에 확정되는 퇴직금이나 모든 연금을 재산분할 대상으로 인정해 혼인 중 공동으로 일군 재산을 정의롭게 분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후 대법원 판결에 따라 장래의 퇴직급여채권과 현재 수령 중인 퇴직연금에 관한 재산분할청구가 가능해졌다. 공무원연금법, 별정우체국법, 사립학교교직원연금법 개정으로 배우자의 연금분할수급권이 법으로 규정됐다.

7. 법률구조법 개정(1987)

가족법 개정과 법률구조 사업 확대를 통해 법률복지 향상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한 결과 1987년 법률구조법 제정이란 결실을 냈다. 당시 법률 구조를 목적으로 가장 많은 상담 건수를 기록한 곳이 한국가정법률상담소였다.

1986년 법률구조법이 국회에서 통과되고, 이듬해 7월 시행됐다. 법률구조법은 법률구조사업단체를 육성‧발전시키고 특수 법인인 대한법률구조공단을 설립해 법률구조사업을 활성화한다는 것을 제안 이유로 삼았다. 상담소는 법률구조법 제정을 이끌어내면서 1988년 7월 22일 법률구조법에 의거해 최초로 법률구조법인으로 등록했다.

8. 가정폭력특별법 제정(1997)

가정폭력특별법 제정 이전부터 가정폭력의 심각성에 주목해 주도적으로 사회적 의식의 개선과 관련 법 제정에 노력해 가정폭력특별법 제정을 이끌어냈다. 1998년 가정폭력특별법이 시행된 후 준비된 가정폭력 상담기관으로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그해 서울가정법원의 가정보호사건 행위자 상담수탁기관으로 지정된 것을 비롯해 서울서부지방검찰청 지정 가정폭력상담소,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의 가정보호사건 수탁상담소,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가정폭력상담소 등으로 지정돼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여성긴급전화 1366’(2006∼2008년)도 운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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