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쌉쌀한 엄마카드

이제 슬슬 어른 돼가는데

부모 도움 받으려니 죄책감

 

엄카 중독되면 어쩌지?

경제적 의존은 서로에게 ‘독’

“에센스 프라임 하나 주세요.”

“네. 4500원입니다.”

사소한 것으로 또 엄마랑 싸웠다. 한판 붙고 우리는 각자 갈길을 갔다.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담배를 꺼냈는데 팩에 하나도 없었다. 편의점에 들어가 지갑을 들여다보니, 나에게 주어진 두 가지의 옵션. ‘엄카’(엄마카드) 그리고 내가 과외로 벌어서 남은 현금 5000원. 엄마랑 싸운 후 엄카 긁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것 같아서 내 돈 5000원으로 담배를 사서 피웠다.

아주 오랜만에 한국에 와서 엄카의 달콤하면서도 쓴맛을 느끼고 있다. 미국 가서 쓸 돈을 모으느라 열심히 일해 번 돈을 쓰지 않고, 엄카를 팍팍 긁는다. 나에게 다시 돌아온 엄카. 아, 솔직히 조금 그리웠던 엄카. 너무나 좋으면서도 무섭다. 엄마 집에선 월세도 안 내고, 공짜로 먹으면서 말이다.

미국에 있는 친구들 중 졸업 후 다시 부모님 집으로 가서 살고 있는 친구들이 몇 명 있다. 그 친구들도 이런 편안함을 즐기고 있다.

“월세랑 음식 값이 해결되니까 정말 편안한 것 같아.”

“어, 맞아…. 하지만 너무 ‘과하게’ 편한 것(too comfortable) 같아.”

“그래…. 익숙해질까봐 두려워.”

친구들과 이런 대화를 많이 나눈다. 이제 슬슬 어른이 되어가야 하는데 부모님의 도움을 당연하게 계속 받는 것은 편안함이 있어도 그 뒤에 죄책감이 더 세게 느껴진다. 평생 엄카를 긁으면서 살 수 없는데 이러다 엄카 중독되면 어떡하지? 우리는 부모님에게 그런 부담을 주는 것을 미안해하는 마음이 있다.

또 우리 자신한테도 미안하다. 대학 때 나와 친구들은 부모님과 떨어져 기숙사 생활을 했다. 어느 정도의 자유를 느낀 후 부모님과 다시 사는 우리도 부모님만큼 불편하다. 엄마는 나를 혼내고 엄격하게 대하지 않지만, 항상 엄마 눈치를 본다. 담배 피우면 냄새 나겠지? 텔레비전 너무 많이 보면 비웃겠지? 술을 또 마시면 한마디 하겠지? 밖에 나가면 어디 가는지 꼭 묻겠지? 독립해서 살 땐 걱정 하나도 안했던 것이 엄마와 다시 잠깐 살면서 많이 느껴진다.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내가 알아서 돈벌이를 시작했다. 한국어로 쓰인 K-pop 관련 기사들을 영어로 번역해서 한 기사당 $2-4 정도 코딱지만한 돈을 벌면서 처음으로 내가 직접 버는 돈의 소중함과 뿌듯함을 느꼈다.

그 후로 레스토랑 알바, 아기돌보기, 대학에선 오피스 도움, 기숙사 매니저, 학생센터 리셉션, 파티 스태프, 과외 등을 하면서 꾸준히 돈을 벌었다. 대학시절 최고 많이 벌 때는 한 달에 140만원 정도까지 벌 때도 있었다. 이렇게 열심히 할 땐 내가 번 돈이기에 더 의미 있었고, 자유도 더 많았다.

막상 한국에 다시 와서 엄카가 생겼지만 썩 기분이 좋지 않다. 일을 열심히 안하면서도 엄카 때문에 살 수 있다는 것이 편하기보다 왠지 창피하고 어렵다. 엄마란 존재에 너무 의지하면 우리 서로에게 해로울 것 같다. 내 마음대로 살고 싶으면서 엄마에게 계속 도움을 받으면 우리 관계가 훨씬 더 힘들어질 것 같다. 모든 인간관계에서 서로에게 너무 과하게 의지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랑은 좋은 것이지만, 어느 사람에게 모든 면에서 의지를 하게 되면 자기의 아이덴티티가 약해진다. 그 사람이 없으면, 그 사람이 돈을 안 주면 자기가 누군지도 모르게 될 수 있다.

이제 뉴욕으로 돌아가는 나는 엄카와도 굿바이를 해야 한다. 물가가 센 뉴욕에서 어떻게 혼자 먹고 살지 고민 때문에 몸까지 아프다. 나의 흑기사, 엄카 없이 살아남기 도전은 무섭지만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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