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소프트웨어 개발자·작가 린다 리우카스(Linda Liukas)

디지털 시대, 코딩 능력은 선택 아닌 ‘필수’

여성도 IT에 대한 편견 버리면 무한한 가능성 열린다

 

핀란드 출신 개발자이자 작가인 린다 리우카스. ⓒ이정실 사진기자
핀란드 출신 개발자이자 작가인 린다 리우카스. ⓒ이정실 사진기자
 

“세 살배기 딸이 알렉사(아마존의 인공지능 음성인식 시스템)랑 대화하며 말을 배워요.” “내 딸은 시리(애플의 음성인식 시스템)를 친구로 생각하고, 가족들에게 할 말이 있으면 왓츠앱((WhatsApp·온라인 메신저) 음성 메시지를 날리죠.” Z세대(1995년 이후 태어난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의 삶은 ‘뼛속까지 디지털’이다. 한국만 봐도 아동·청소년의 89.8%가 개인 스마트폰을 지닌 시대다(정보통신정책연구원, 2014). 영국의 3~4세 아동은 매주 약 8시간18분을, 5~15세는 약 15시간을 온라인 공간에서 보낸다(OfCom, 2016). 

“지도보다 ‘구글 맵’이 더 익숙하고, 전 세계의 사람들과 SNS를 통해 일상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게 일상이 된 세대죠. 스마트폰, 내비게이션, 사물인터넷(IoT) 기기 등에 둘러싸여 성장하는 세대고요. 이들이 만들어갈 세상은 지금과 상당히 다를 겁니다. 디지털 세상의 구조를 이해하고 설계하는 능력, 이를 수정·보완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 없이는 미래를 헤쳐 나가기가 힘들 거예요.” 

핀란드 출신 개발자이자 작가인 린다 리우카스(Linda Liukas·30)는 “코딩은 21세기의 문해력(21st Century Literacy)”이라며 “새 시대의 주역이 될 아이들이 이 미래에 대비하도록 도와야 한다”고 했다. 미국 스탠포드대에서 제품공학을 전공한 이후 그는 전 세계를 돌며 IT교육 활동을 하고 있다. 2010년 ‘레일스 걸스(Rails Girls)’ 운동을 조직해 지금까지 160개 도시에서 여성 약 1만명에게 코딩을 가르쳤다. 아이들이 컴퓨터와 코딩 원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자 2014년 만든 동화책 『헬로 루비 : 코딩이랑 놀자!(Hello Ruby)』는 크라우드 펀딩으로 38만달러를 유치해 화제가 됐고, 한국 등 각국에 번역·출간됐다. 그는 최근 TED 강연 무대에 섰고, ‘유럽의 주목할 만한 기술분야 여성 리더 50인’(Inspiring Fifty), EU 선정 ‘핀란드의 디지털 챔피언’에도 올랐다.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여성 IT 리더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수전 보이치키 유튜브 CEO, 루스 포랫 구글 알파벳 CFO, 메건 스미스 백악관 첫 최고기술책임자(CTO),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CO), 머리사 메이어 야후 CEO.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여성 IT 리더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수전 보이치키 유튜브 CEO, 루스 포랫 구글 알파벳 CFO, 메건 스미스 백악관 첫 최고기술책임자(CTO),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CO), 머리사 메이어 야후 CEO.

최근 IT 업계에선 여성 리더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미국 ‘포춘’지의 ‘2015년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50인’에 든 수전 보이치키 유튜브 CEO, 루스 포랫 구글 알파벳 CFO를 비롯해 머리사 메이어 야후 CEO,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CO), 메건 스미스 백악관 첫 최고기술책임자(CTO) 등이 대표적이다. 한국에서도 한성숙 네이버 CEO, 카카오 임선영 부사장 등 대표 IT 기업과 스타트업 분야에서 여성들의 도약이 눈에 띈다.

하지만 ‘IT=여성의 무덤’ 공식은 깨지지 않은 듯하다. 이달 통계청 자료를 보면 지난해 소프트웨어(SW) 관련 전공 학위 취득자 중 여성은 18.84%뿐이다. 졸업 이후엔 12.5%로 줄었다. IT 강국 미국에서도 1980년대 들어 여성 대학 진학률이 약 60%까지 상승했지만, 컴퓨터공학 전공자 중 여성은 약 18%에 불과하다. 구글 SW개발자 중 여성은 20%뿐이다.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창업자 중 여성 비율은 29%, 한국의 경우 9%다. 

“여성들은 전 지구적 영향력을 지닐 수 있고, 높은 보수를 받으며, 탄력적이고 흥미진진한 경력을 쌓을 기회를 놓치고 있습니다. 업계는 이들의 재능을 놓치고 있죠. ‘그런 건 남자가 하는 일’이라는 편견 탓에 많은 여성들이 IT 커리어를 중도 포기하거나, 애초에 관심을 두질 않아요. 세계 최초의 프로그래머 에이다 러브레이스(Ada Lovelace)를 비롯해 이 분야의 발달을 이끈 여성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죠.”

‘성평등 선진국’ 핀란드의 상황도 크게 다르진 않다고 했다. 리우카스가 동화책 『헬로 루비』를 만든 배경이다. 상상력과 호기심이 많은 소녀 ‘루비’가 설표범, 여우, 로봇 등과 만나 벌이는 모험 이야기다. 컴퓨터를 활용해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루비를 따라 램(RAM), 롬(ROM), 운영체제(OS) 등 컴퓨터의 구성·작동 원리와 기초 알고리즘을 이해하고, 간단한 HTML 언어도 작성해보고, 나만의 키보드와 컴퓨터도 디자인해볼 수 있는 놀이책이다. 

 

 

리우카스가 직접 그리고 쓴 동화책 『헬로 루비 : 코딩이랑 놀자!(Hello Ruby)』 ⓒhelloruby.com
리우카스가 직접 그리고 쓴 동화책 『헬로 루비 : 코딩이랑 놀자!(Hello Ruby)』 ⓒhelloruby.com

“2009년 프로그래밍을 배우기 시작하며 우리에겐 이런 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 소녀들이 컴퓨터 이야기를 안 좋아한다고 단정하죠? 우리 삶과 직결된 문제인걸요. 지금 세상의 변화를 이끄는 건 기술 기업들이고, 다양한 젠더·인종·문화를 지닌 사람들이 그 중심에 있죠. 물론 모두가 코딩 전문가가 돼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에겐 ‘네가 살아갈 시대는 달라. 너는 앞으로 살면서 부딪히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기술을 디자인하고 다른 이들에게 설명하게 될 거야’라고 가르칠 때지요.”

그는 “코딩·프로그래밍은 길고 지루하고 사람들과 어울릴 일 없는 고독한 업무라는 편견, ‘여성은 IT분야에 안 맞다’라는 편견”을 깨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히려 여성이 일하기 좋은 분야죠. 다양한 이들과 함께 국제 무대에서 일할 수 있고, 업무 시간·장소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어 육아와 업무를 병행하기에 수월한 편이죠. 신생 분야라서 유리천장도 덜 단단해요. 그리고 세상은 변하고 있습니다. 『헬로 루비』를 읽은 소년들이 가장 좋아한 주인공은 여성인 ‘루비’였죠. 남성도 여성 롤모델을 인정하고 좋아하는 세상이 ‘성평등 세상’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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