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네티즌 비율 46%, 대형사이트마다 여성비율이 40%때에 육박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사이버 여성운동의 방향을 가늠해 보는 건 여성들의 개인적·집합적 정체성이 변화하는 흐름을 감지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게릴라·의제·딴지그룹 등 다양

국내에서 온라인을 근거로 활동하는 여성들이 세력화하는 흐름을 거칠게나마 정리하면 대략 몇가지 가닥을 잡을 수 있다. 계몽적이거나 구도자적인 ‘헌신’의 자세보다는 놀면서 즐겁게 ‘게릴라식’으로 운동하는 여성주의자들로서 여성에게 씌워진 문화적 금기를 깨뜨리고자 하는 영페미니스트 그룹(달나라 딸세포, 언니네 등), 호주제 폐지 등 현실사회에서 관철시켜야 할 ‘확실한’ 의제를 내세우면서 싸우는 그룹(호주제폐지를 위한 시민의 모임 등), 여성운동 대중화와 현실변화를 주요한 목표로 삼고 기존의 주류 남성문화에 맹렬하게 딴지를 거는 방법으로 사회문화적 ‘쾌락’의 지점을 찾는 그룹(살류쥬), 각 통신망 여성학동호회, 그리고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인터넷 상업 여성사이트에서 공동의 이해관계와 문제의식으로 활동하는 그룹 등으로 나뉜다. 이밖에 여성주의와 무관하지만 커뮤니티에서 시삽 등의 활동을 통해 발언권을 넓히고 자기주장을 ‘자연스럽게’ 전파하는 논객의 위치를 굳힘으로써 침투적인 효과를 거두는 사람의 숫자도 늘고 있다.

이들 중 자체공간을 독자적으로 운영하는 여성그룹은 대부분 담론을 구축하는 정치적 행위 뿐 아니라 프로그래밍과 디자인 등 기술작업 수행에 이르기까지 자기완결적인 구조를 갖는 공통점이 있다. 오프의 ‘운동’과 달리 취약한 테크놀로지기반의 공간은 해킹이나 테러 등 외부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공유하는 까닭에 테크놀로지를 ‘배워가며’ 싸우는 형국이다. 연령과 직업, 지역 등 구성원의 사회경제적 조건은 물론 상호작용하는 대상들에서도 차이가 있는 이들 여성그룹은 ‘사안에 따라’ 연대가 필요하다는 데는 모두 한뜻을 갖고 있다.

테크놀러지 배워가며 싸워

“특정한 사회 정치적 이슈가 생겼을 때 그것의 해결을 위한 연대의 계기가 생긴다면 스스럼없이 참여했으면....우선은 자기 위치에서 가장 고민이 되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을 풍부히...우리의 경험과 고민이 쌓이면서 느리지만 관심사를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달나라 딸세포)

“여성이 운영하는 홈페이지끼리 서로 링크하고 소개...협조를 위한 상호약속의 일반화 필요. 한 곳의 이슈파이팅 시 다른 곳에 알리고, 다른 곳은 이후에 알았더라도 긍정적으로 조언하고 깊이 협조하는 태도 필요. 여성사이트 연대규약 등 지금보다 훨씬 조직적인 여성연대가 필요하며 좀더 열린 의식과 신속성이 요구된다”(살류쥬).

그러나 실제로 여론형성과 서명 등 사안별 여성연대가 그리 가시적 효과를 가두는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인력과 역량문제가 크겠지만, 무관심하거나 심지어 적대적인 경우가 더러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로 지향성의 ‘차이’에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는 이런 어긋남은 “적어도 여성주의라는 대의에 찬성한다는 언명 정도라도 사이트마다 공유된다면 사라질 수도 있는 문제”라는 불만이다.

남성과 교류 가능한 문제도 다뤄야

그룹이나 단체간 연대도 중요하지만 여성 개인을 돕거나 개별 여성들을 연대에 참여시키는 방법도 이슈의 아이템에 따라 고민해볼 부분이다. 남성문인의 여성시인에 대한 성폭행문제 공론화, 딸에게 고발당한 김경위 복직을 위한 서명운동 등 피해여성에 대한 적극 연대를 밝히면서 오프와 온라인의 경계를 넘나드는 활동을 성공적으로 벌여온 살류쥬 장정임 대표는 “여성들간의 연대 뿐 아니라 남성과도 교류가 가능한 문제를 다루는 게 필요하다”고 말한다. 동호회의 시삽을 한 경험이 있는 여성은 “한 곳에 모아놓고 서명받는 방법도 있겠지만, 내 경우 여성이슈가 있을 때 관련 머리말을 정해서 무슨 글을 쓰든지 그 내용을 꼭 붙이도록 한다거나 메일을 쓸 때 말미에 서명을 대신하는 방법으로 연대를 표명한다”고 제안한다.

여성주의 공간이 아닌 곳에서의 연대는 훨씬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는 문제다. 모 여성동호회에서 호주제폐지를 거론하며 여성들의 연대를 말했다가 ‘왕따’당할 뻔한 경험을 털어놓은 한 여성은 “여성주의 의식이 별로 없는 곳에서, 더구나 구성원들과 정서적 유대도 거의 없는 상황에서 여성주의 아젠다를 전하려면 보다 치밀한 전략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얻었다. “여성들의 연대를 통해 일상생활의 질이 달라질 수 있다는 ‘쾌감’을 맛보게 하는 전략을 찾는 고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웹진 의 이숙경 편집장은 “무겁지 않으면서 즐겁고 성찰적인 글쓰기 개발, 다친 사람에게 약만 발라주는 게 아니라 힘을 주기 위한 재미있고 유익한 내용 등 여성주의 매체를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이같은 단계별 접근방법을 부단히 연구해야 한다”고 피력한다.

다원화된 여성운동 전략 필요

여성주의를 전면에 내세운 ‘공간 안’의 여성들끼리도 정서적 지지와 연대는 절실한 문제다. 여성학동호회 회원인 한 여성은 “개인적으로 고립되었던 여성들이 사이버세상으로 나왔을 때 신천지가 열리는 느낌과 함께 좌절이나 실망도 그만큼 크다”고 말한다. 자신의 생활에서 오는 원초적 분노의 에너지와 강렬한 정서상태에서 들어오는 경우가 많은 페미니즘 공간의 경우 “겉으로는 ‘강성’발언을 해도 내면의 상처로 약한 사람이 많고, 솔직한 파장을 소화하지 못하는 예”가 적지 않다. 이런 경우 여성들끼리 정치적 사안에선 연대가 잘되는 반면 정서적인 측면에서 오히려 자신과 다른 목소리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데올로기적 경도’에 빠지기도 쉽다. 때문에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으면 안된다’는 강박 속에서 남들과 다른 목소리를 내면 안된다는 자기검열을 내면화하게 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이 여성은 “회원들끼리 서로 격려하고 문화적 차이를 인정하는 태도, 어떻게 진정 자유로운 곳으로 기능할 것이냐를 생각해보자”고 당부한다.

복잡한 조건과 상황에 처한 정보혁명시대의 여성들에겐 새로운 존재론을 담을 수 있는 다원화된 여성운동 전략이 요구되고 있다.

이인화 뉴미디어부 부장 goodall@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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