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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전날 오후 큰집에 일하러 간다니까 막내가 “어머니가 아직도 일

하는 군번이세요?” 라며 안쓰러운 표정을 짓는다. 나는 ‘한 번 파출부는

영원한 파출부’라고 농담으로 받았지만 이내 “그럼 나보다 더 나이 드신

큰 엄마는 어떻게 하시냐”며 집을 나섰다.

그런데 별일도 있지, 두 조카며느리가 나를 맞으며 하는 인사말이 “어머,

숙모님이 웬일이세요?”라는 생뚱스런 소리였다. 내가 온 게 뜻밖이라는 반

응이었다. “아니, 30년 동안 근속한 사람이 어떻게 빠질 수 있겠어?” 반문

하면서도 순간 기분이 묘해졌다.

뭐랄까, 싫어 싫어 하면서도 정작 밀려나면 섭섭하다더니 내가 그 꼴이었

다. 결혼 이후 일년에 다섯 차례씩 명절이나 제사 때마다 꼬박꼬박 하루나

이틀 전에 차출 당했었다. 직장 다니던 신혼주부 때나 아이들이 어렸던 초

보주부 때도 면제가 없었다.

결혼 초만 해도 부엌시설은 열악하지 일솜씨는 없지 시어머니는 엄하지,

때마다 죽을 맛이었다. 친정은 제사도 안 지내고 찾아 올 친척도 없었기 때

문에 명절날은 식구끼리 그냥 먹고 즐기기만 하면 되었었다. 추석 송편 빚

는 일도 일종의 가족놀이였다. 하지만 결혼과 동시에 ‘즐거운’ 명절은 내

사전에서 사라져 버렸다. 시어머니 앞에서 나물 다듬기, 송편 빚기, 전 부치

기는 다리가 저리고 허리가 무거워지는 중노동이었다.

그러나 시어머니는 당신 젊었을 때 일독에 빠졌던 일을 회상하면서 지금

여자들의 일이 얼마나 가벼워졌는지 강조하고 또 강조하셨다. 나물이고 전

이고 모두 일주일을 먹고도 남을 만큼의 양을 마련하면서도 옛날과 비교하

면 요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셨다. 너무 많아요, 너무 힘들어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이런 재료를 구입하느라고 발품을 팔았을 다른

사람들의 노고가 떠올라 꾹꾹 눌렀다가 밤늦게 귀가한 남편에게 퍼붓곤 했

다. 왜 당신네는 그렇게 형식이 요란하냐, 왜 이씨네 집 제사를 박씨인 내가

가서 차려야 하느냐고. 하지만 묵묵히 그저 미안한 표정만 짓는 남편을 보

고 있자면 내가 너무 순악질여사가 아닌가 싶어 저절로 수그러들곤 했다.

(정말 못말리는 착한 여자 아냐?)

영 완고하게만 보였던 시어머니는 큰며느리에게 제사를 물려 주면서 일

대 용단을 내렸다. 제상에 음식을 차리지 말고 꽃만 올려 놓고 지내라고 했

다.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풍습도 변해야 한다는 말씀과 더불어. 큰며느리에

게는 자신의 고생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배려였다.

파격적으로 간소해진 듯이 보이던 꽃제사는 그러나 몇 해 지속되지 못했

다. 어차피 때마다 모여 드는 가족들이 먹을 음식을 마련해야 할뿐더러 후

손은 먹는데 조상님은 그냥 배고프게 놔둘 수 없다는 게 큰동서의 주장이었

다. 큰동서는 전통을 중히 여기는 집안에서 자랐을 뿐 아니라 보기 드물게

준비된 맏며느리였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전통적인 의례로 복귀하였다.

나이가 들면서 명절 증후군은 점점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물론 명절 때

여행 한 번 못가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부엌시설도 편리해졌

고 무엇보다 음식의 양이 대폭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찾아 오는 손님도 해

마다 줄어가고 이런저런 사정으로 명절에 외국에 나가는 가족의 숫자도 늘

어나는 데 따른 당연한 현상이었다.

무엇보다 세월과 더불어 동서들끼리의 심리적인 유대가 점점 강해졌기

때문에 굳이 명절을 지낸다는 쪽보다 오랜만에 만나서 수다를 떤다는 쪽으

로 의미가 변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식장만이 여전히 ‘며느리의 의무’로 못박혀 있다

는 사실은 늘 불만스러웠기 때문에 명절 전날은 마음이 불편했다. 한 10년

전부터는 큰조카들에게 ‘빨리 장가 가서 우리 좀 해방시켜주라,’고 재촉

을 해댔지만 마음 한 편으로는 어떻게 다음 세대에게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떠맡기겠느냐 싶었다.

놀랍게도 이제 30대의 두 조카며느리는 늘 밝은 얼굴로(혹시 겉으로만

그런가?) 아주 손빠르게 시어머니의 일을 돕고 있어 그 동안 점점 줄어들던

내 몫의 일도 거의 없어졌다. 그러나 미리미리 준비를 해 두어야 하는 큰동

서의 짐은 고스란히 남아 있다. 내가 정말 큰동서를 생각하면 제사를 좀 나

눠 지내야 하겠지만 젊었을 때는 어리다는 핑계로, 한창 때는 바쁘다는 핑

계로, 지금은 몸이 안좋다는 핑계로 나 몰라라 한다.

그렇다고 제사를 안 지내? 글쎄 몇 십년 후면 몰라도 당분간은 어려울 것

같다. 전통이나 가족에 대한 생각도 사람마다 다르니. 지금은 제사를 며느리

의 의무가 아니라 가족의 일로 보고 모든 가족구성원이 조금씩 나눠야 한다

는 분위기인 것만 해도 다행이다. 세상은 확 바꾸기에는 너무 복잡하잖아.

[환경단신]

새만금사업 중단촉구 농성 전개

새만금사업 즉각 중단을 위한 전북사람들(이하 전북사람들)이 8일 현재

새만금 민간조사단 조사결과를 조직적으로 은폐·조작한 이상은 단장 퇴진

과 총리실 규탄을 위해 4일째 농성을 벌이고 있다.

전북도청과 민주당사 앞에서 농성을 벌인 전북사람들은 농성 4일째인 오

전 전주시 완산구 구청직원들이 농성장인 객사에 몰려와 홍보물을 비롯한

플랭카드 등을 모두 강제 철거, 공무집행 방해로 검거하겠다는 협박까지 했

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북사람들은 오는 10월까지 농성을 계속해서 진행할

것으로 결의하고, 추석연휴에도 귀성객을 대상으로 피켓팅을 진행하는 등

새만금 찬반토론, 대규모 집회를 전개할 예정이다.

주한미군, 독극물 방류 조직적 은폐

녹색연합은 7일 오후 기독교연합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미군측이 한

강 독극물 방류를 조직적으로 방치·묵인해 왔음이 2차 조사결과 드러났

다”고 주장했다. 녹색연합은 “주한미군 내부에서 포름알데히드의 위해성

을 경고하는 내부문서가 독극물 방류사건 당일인 2월 9일 이전인 99년 11월

23일 상부에 보고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21세기 지속가능한 관광문화’토론회

지속가능개발네트워크한국본부(KSDN)가 7일 오후 2시 세종문화회관 4층

컨퍼런스홀에서 ‘지속가능한 관광의제21 만들기, 전략과제’를 중심으로

한 시민 대토론회를 열었다. 대토론회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관광문화, 환경

친화적이고 지속가능한 관광문화의 시민사회 확산을 위한 ‘관광의제21’만

들기를 제안하고, 그 방향과 과제를 논의한 자리로, 환경·생태·관광·문화

관련 각계 전문가 및 일반시민이 참여했다.

이날 발제는 경기대 한범수 교수의 ‘21세기 지속가능한 관광문화 확산

과 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한 관광의제21 만들기, 전략과제’와 서울시립대

이경재 교수의 ‘대안적인 녹색관광문화, 국내외 현황과 새로운 가능성, 그

리고 정부, 지방정부, 기업 및 시민단체의 역할’로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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