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빈틈 파고드는 ‘딥페이크 성범죄’… “처벌공백 보완 필요”

딥페이크 ‘반포 목적’ 증명 안 되면 처벌 어려워 시청·소지도 처벌 기준 부재

2024-08-28     김세원 기자
불법합성물(딥페이크)가 발견된 학교가 붉은 화살표로 표시돼 있다. ⓒ‘딥페이크 지도(deepfakemap)’ 캡쳐

‘딥페이크(불법합성물)’ 기술을 악용한 성범죄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면서 국회를 향해 입법적 보완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8일 여성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온라인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온라인을 중심으로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범죄 피해자가 소속된 학교들의 명단이 실시간으로 공유되고 있다. 해당 명단에는 대학교는 물론 전국 각지에 있는 중·고등학교까지 포함됐다. 명단에 언급된 학교들만 수백곳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들은 ‘겹치는 지인’을 축약한 말인 ‘겹지인방’에 급우나 선생님 등의 지인의 신상을 공유하고, 불법합성물을 제작해 유포하는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텔레그램 채널 검색사이트 텔레메트리오(Telemetrio)에 ‘겹지인’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지역 이름이 포함된 30여개의 단체방이 검색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딥페이크 성범죄의 피해 사례가 끊이질 않으면서 국회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딥페이크 성범죄가 현행법의 허점과 솜방망이 처벌을 악용하고 있는 만큼 국회에서 서둘러 제도적 보완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4조의2에 따르면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편집, 합성, 가공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영리 목적으로 반포한 경우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 하지만 ‘반포 등을 할 목적’이라는 단서로 인해 가해자가 교묘하게 처벌을 피해 갈 수 있다는 점이 문제가 되고 있다. 

민고은 변호사(법률사무소 진서)는 “14조2에 ‘반포 등을 할 목적’이라고 명시돼 있다. (영상을) 제작을 했다고 처벌되는 것이 아니”라며 “반포할 목적이 있다는 부분이 증명이 안 되면 처벌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내려받거나 시청하는 행위 역시 처벌할 근거조항이 없는 상황이다. 가령 직접 촬영한 영상(불법촬영물)은 반포 등의 목적이 없어도 촬영 자체만으로 ‘촬영죄’가 성립한다. 불법촬영물을 소지하거나 시청하는 것 역시 현행법으로 처벌하고 있다.

반면 허위영상물은 이러한 처벌 규정이 부재하다. 강요죄나 협박죄 등으로 에둘러 처벌할 수는 있어도 처벌 수위는 낮다는 문제가 있다. 이 때문에 허위영상물의 처벌 공백지대를 메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 변호사는 “직접 촬영한 영상인지, 합성을 한 영상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와버렸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그 기술에 접근하는 것도 용이해져 전문가 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쉽게 합성을 할 수 있게 됐다. 허위영상물과 직접 촬영한 촬영물을 달리 평가해야 할 정당성이 있을까 싶다”며 “처벌공백이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인선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장이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불법합성물인 딥페이크 유포 범죄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딥페이크 성범죄 피해는 늘어나는데 정작 국회는 손 놓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지자 여야도 뒤늦게 법 제도 정비에 나서고 있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위원장 이인선)는 전날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딥페이크 기술의 악용을 방지하기 위해 법적 제도를 더욱 강화하고 여성과 미성년자 보호를 위한 법률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한규 민주당 의원은 딥페이크 성범죄물을 포함해 성착취 허위영상물을 소지·저장·시청한 사람 또한 징역 1년 이하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내용의 성폭력처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같은 당 김남희, 한정애, 황명선 의원도 딥페이크 성범죄물을 소지하고, 시청한 사람까지도 처벌하는 내용의 성폭력처벌법 개정안을 각각 발의한 상태다.  

한편 제도적 허점 외에도 디지털 성범죄의 온상지로 비팓받는 텔레그램이 서버를 해외에 둔 탓에 유포자 추적이 어렵다는 점이 딥페이크 성범죄 근절의 난점으로 거론돼 왔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브라질과 독일 등 텔레그램에 성공적으로 제재를 가한 해외 사례를 근거로 수사기관이 피의자 특정이 어렵다는 말만 반복하지 말고 디지털 성범죄 뿌리를 뽑기 위해 적극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N번방 사건을 세상에 알린 ‘추적단 불꽃’ 출신인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페이스북에 “텔레그램을 비롯한 빅테크 기업이 수사에 협조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는 검열이 아닌 국가가 마땅히 해야 할 최소한의 안전 조치”라며 “텔레그램이 수사에 협조하지 않는다면, 일시적으로라도 국내 텔레그램을 차단하는 조치까지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