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친족성폭력 피해 아동·청소년 10명 중 1명 ‘이주배경’
[친족성폭력 그 이후⑥] 보호시설 입소한 이주배경 아동 2019년 5.5% 이후 4년간 10% 넘어 체류자격 연장 등 법제도 개선 필요
최근 5년간 친족성폭력 피해지원 시설에 입소한 아동의 10명 중 1명은 이주배경 아동이었다.
여성신문이 전국에 4개 있는 친족성폭력 피해자 보호시설(이하 특수시설)과 여성가족부에 받아 취합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간 특수시설 입소 아동 중 이주배경 아동의 비율은 평균 12.5%였다.
2019년 이주배경 아동은 5.5%에 불과했지만, 2020년 11.3%로 훌쩍 뛰어 이후 계속 10%대를 기록했다. 이후 2021년은 13.7%, 2022년은 16.7%로 계속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다 작년에는 13%로 감소했다. 이주배경 아동은 다문화가족의 자녀 중도입국 청소년 등을 의미한다.
친족성폭력 피해자 중 이주배경 아동이 늘어난 원인으로 크게 3가지가 거론된다. 허오영숙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대표는 “수적으로 이주배경 청소년이 늘어나서 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주배경학생은 통계 집계가 시작된 2012년 이후 계속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는 18만 1천명으로, 2014년(6만8000명)보다 3배 늘었다.
다른 이유로는 약자를 향하는 성폭력의 특성이다. 허 대표는 “성폭력은 권력관계라는 맥락에서 발생한다. 더 약한 자를 노리는 성폭력의 특성 때문에 이주배경 아동이 늘어난 것일 수 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허 대표는 이주여성의 변화를 원인으로 꼽았다. “한국에 온 지 1년 차인 이주여성과 10년차인 이주여성들 사이에도 정보격차가 다르다”며 “이제 10년차가 넘은 이주여성들이 많다. 이 여성들이 미투 운동 등을 보며 인식의 틀이 바뀌고, 한국의 신고체계를 알아 적극적으로 신고한 결과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신고하지 않은 사례까지 포함하면 이주배경 아동을 대상으로 한 친족성폭력은 더 많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추측한다. 특히, 결혼이민자가 한국인과 재혼 후 본국에서 데려온 중도입국 아동의 경우, 성폭력이 발생해도 이를 신고하고 도움을 청하기 더욱 어려운 구조에 있다. 가해자인 의부에 체류자격이 달려있기 때문이다.
지은진 전국특별지원보호시설협의회 대표는 “베트남 출신 이주여성이 한국인 남성과 재혼을 하면서 아이와 함께 한국에 왔다. 그런데 의부가 지속적으로 아이를 성폭행했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는 끝까지 안 당했다고 증언했는데, 당시 아이는 한국 국적을 취득하지도, 영주 비자가 나온 상태도 아니었다. 신고 이후의 불이익이나 파양당하면 본국으로 돌아갈까 두려워 그런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주여성이 결혼 후 본국의 자녀를 데려온 경우, 배우자인 한국인 남성의 동의를 얻어 입양할 수 있다. 이때 중도입국 아동은 국민의 미성년 자녀로서 거주(F-2) 비자를 발급받아 대한민국에서 체류할 수 있다.
대한민국에 2년 이상 거주하면 영주(F-5) 비자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전에 파양을 당하면 미성년 자녀로서 거주(F-2) 비자가 사라지며, 이렇게 될 경우 한국에서 체류가 어려워진다.
허 대표는 “가해자들은 이주배경 아동이 갖고 있는 취약성을 굉장히 잘 악용한다”며 “피해자들은 입양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더욱 어렵다. 더욱 암수율이 높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경남의 한 다문화 가정에서 한국인 아버지가 네 살 친딸을 성폭행한 사건이 드러났다. 이 사건은 올 초 일어난 것으로 추정되지만, 피해 아동의 어머니가 이주여성 출신이라 한국의 신고체계를 잘 알지 못해 신고가 뒤늦게 이뤄졌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친족성폭력은 어머니가 취약하거나 부재한 경우 장기적으로 피해가 발생할 확률이 높다”며 “이주여성이 어머니일 때 한국의 신고체계 등 정보 접근성이 떨어져 발견이 늦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촘촘한 보호대책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허오영숙 대표는 “체류에 대한 걱정 없이 신고할 수 있도록 관련 법제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가정폭력·성폭력 피해자를 추방 우선 대상자에서 제외하는 연방법이 있고, 가정 내 주체류자의 신분에 관계없이 피해자가 신청할 수 있는 비자도 두고 있다.
한편, 특수시설이 중도입국 청소년 입소 결정을 하는 것도 쉽지 않다. 중도입국 청소년은 비수급자라 각종 복지제도의 지원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생계비, 교육비 등이 나오지 않는다.
지난 7월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이 발간한 ‘감춰진 피해자들: 미성년 친족 성폭력 피해자 특별지원 보호시설 지원업무 실태 및 개선과제’에 나온 사례에 따르면, 한 특수시설은 중도입국 아동이 들어오면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결국 입소시키지 못했다고 한다.
허 조사관은 “내국인 피해아동·청소년에 상응하는 지원을 중도입국 아동·청소년에게도 제공할 수 있도록 주무부처 및 관계 기관, 지자체 등이 협의·협력하고 필요한 경우 법령 등에 명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편, 여성가족부 등 공기관에서 친족성폭력 피해자 중 이주배경 피해자를 분류한 자료는 아직 발표된 바 없다.
[편집자주] 성폭력은 사건 자체로 끝나지 않는다. 성폭력 신고 이후의 지난한 과정은 성폭력의 다른 얼굴이다. 친족 성폭력의 경우 지지기반이어야 할 가정에서 가해가 발생하기에 피해자는 더 큰 고통과 배신감, 상실감을 느낀다. 가해자를 이해하고 싶고, 나만 참으면 괜찮을 것 같다는 마음이 올라온다. '집'을 잃는 일은 무섭기 때문이다. 게다가 친족 성폭력은 피해자가 어리고, 수년간 가해가 지속된다는 특징을 갖기에 더더욱 폭로가 어렵다.
하지만 주위의 도움으로 가정에서 벗어난 친족 성폭력 피해자들이 있다. 탈가정을 한 친족 성폭력 피해자들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여성신문은 친족 성폭력 사건 이후의 삶에 주목한다. 친족 성폭력 피해자들이 시설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시설을 퇴소 후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따라간다.
① 자립수당 못 받는 친족성폭력 피해자, ‘홀로서기’ 지원해야
③ ‘가족문제’ 되는 오빠 친족 성폭력… “별 일 아냐” 부모 말에 피멍드는 피해자
④ 친족성폭력 피해자도 자립지원금 받을 수 있게 된다… 정춘생, 법안 발의
⑥ 친족성폭력 피해자 10명 중 1명 ‘이주배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