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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몸, 환경] 엄마라서 저절로 되는 것은 없다

2020. 11. 25 by 모아나 여성환경연대 활동가
사진=tvN ‘산후조리원’
사진=tvN ‘산후조리원’

 

친구들이 집에 놀러왔다. 바질을 키워 화분에 담아온 친구는 오자마자 우리집 다육이와 고무나무의 안부를 확인한다. 세 가족 합해 열 명이 먹을 식사를 무리 없이 차려내고, 밀린 수다를 떨면서도 올망졸망한 애기들 입에 밥이 제대로 들어가는지 확인하며 그 와중에 중간중간 사춘기 아이들 기분도 살핀다. 이제 이정도 멀티플레이가 가능한 사람들이 되었다. 말하자면 우리는 이제 돌봄이 몸에 배었다.

십여 년 전, 함께 살아봐서 아는데 당시 우리의 돌봄능력은 제로에 가까웠다. 아침을 먹는다면 토스트가게에 들르는 것 정도가 최선이었고 쌀 보관함에선 수시로 쌀벌레가 튀어나왔다. 먼지뭉치가 굴러다녀도, 벗어던진 옷이 무덤을 만들어도 뭐가 잘못인지 그때는 몰랐다. 그랬던 우리가 이제 사람도 기르고 식물도 돌보고 고양이도 모신다. 정말 다른 레벨의 사람으로 우리는 성장했다.

물론 이 변화는 저절로 생기지 않았다. 엄마가 됐다고 하루아침에 능력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저 나이를 먹는다고 능력이 만들어지지도 않았다. 울며불며 실패하고 배우고 연습하고 괴로워하고 잠을 못자고 고민한 끝에 손에 익게 된 능력이 바로 돌봄이다. 새싹이 날 때, 무럭무럭 자란 새끼를 볼 때처럼 돌봄이 물어다 준 기쁨의 순간도 많았지만 대체로 좌절과 고통과 수없이 많은 자책을 거쳐 여기까지 왔다. 어느 날은 더 많이 해줄 수 없어 부끄러웠고 어떤 날은 대신 아파줄 수 없어 발을 동동거렸고, 이렇게 할 걸, 혹은 하지 말 걸 하는 후회를 수백 번도 더 되풀이했다. 때때로 너무 힘든 순간이 찾아왔을 때,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작고 여린 생명에 대한 존중과 연대, 그리고 무엇보다 책임감과 의지였다. 이 과정은 엄마니까 당연한 것도, 엄마라서 쉬운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드라마 <산후조리원>이 반갑다. 엄마니까 모든 것을 희생해도 괜찮지 않냐고 당연하게 말하는 사회, 이제 막 애기를 낳은 사람에게 엄마인데 이런 것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냐고 핀잔주는 사회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그리고 당사자에게 이 상황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드라마는 실감나게 이야기를 펼쳐낸다. 드라마에 종종 나오는 ‘반인반모’는 정말 찰떡같은 표현이다. 엄마도 몸과 의지와 감정을 가진 사람인데 그 어떤 것도 존중받지 못한다. 일등 엄마라면 타인이 불쑥 가슴을 주물러대고, 잠을 깨우고, 똥을 들이밀어도 불쾌해하면 안되며 먹고 싶은 것 혹은 되고 싶은 것을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존재여야 한다. 엄마도 사람인데 사람처럼 살고 싶으면 안된다니 이런 폭력이 어디 있을까. 진짜 엄마열차의 머리칸에 타고 싶다면 엄마로서 임무에 충실함과 동시에 외모관리도 놓치면 안되고 이 와중에 충만한 행복감을 전시하는 SNS도 해야한다. 아무리 드라마의 설정이라지만 이만한 현실고증도 없다.

기본적으로 유머가 깔려있고 중간중간 CG까지 더해지니 웃음이 터지면서도 계속 마음 한켠이 아렸다. 막 엄마가 되었던 때의 내가 안쓰러워 마음이 아프고, 아직도 엄마가 무슨 마법사 타이틀쯤이라도 되는 줄 아는 사회의 무지함에 다시 상처를 입는다. 무엇보다 앞으로도 엄마됨을 선택하는 여성들이 같은 폭력을 겪게 될까봐 마음이 쓰인다. 그래서 드라마야 예능이야? 라고 물어오는 아이처럼 마냥 크게 웃지를 못한다.

여러 이유로 무자녀를 결심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누군가는 이들의 선택을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대한 전면적인 도전으로 받아들이며, 또는 인류의 종말을 앞당기는 실험으로 이해하고 심지어는 나라의 미래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매국노적 행위로 보기도 한다. 어쨌거나 이 선택에 대해 사람들은 너무 쉽게 ‘이기적인 요즘 여자들’이란 말로 분석을 마무리짓곤 한다. 과연 이 분석이 국가와 인류의 미래에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산후조리원>의 오현진(엄지원 분)은 이제 집에서 노는 엄마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이 드라마 이후, 사회는 무엇을 깨달을지 궁금하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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