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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광복절, 여성 독립운동가들] 독립운동가 송계월 폐결핵 걸려 서울 떠나자 “처녀가 임신” 루머가 이준석 독립기념관장 ”임시의정원 첫 여성 의원 김마리아, 건국훈장 대통령장 남자현 교과서에 언급 없어“ 이지원 교수 “식민지 시기 여성들의 다양한 정체성 복원돼야” …해녀의 생존권 투쟁 중요”
당시 지식인들마저 여성 독립운동가 모욕했다
2019. 08. 16 by 진주원 기자
독립운동가이자 기자, 소설가, 여성주의 운동가였던 송계월.
독립운동가이자 기자, 소설가, 여성주의 운동가였던 송계월.

“송계월은 1930년 경성여자상업학교 재학 중 서울의 여학생 만세시위를 주도한 투사였다.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형을 받았다. 출옥 후 ‘개벽’의 여기자로 활동하다가 폐결핵에 걸려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런 송계월을 남성 지식인들은 성희롱의 대상으로 삼았다. 송계월의 죽음을 보도한 한 잡지 기사에는 “아기를 배가지고 시골로 갔다는 얼토당토 아닌 소문이 따라서 돌아다니게 됐다”고 보도됐다. 그 소문의 출처는 “가장 탐탁한 일 동무로 믿고 지내던 문단의 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불치의 병에 걸린 스물두살의 미혼 여성인 투사에게 ‘처녀가 임신을 했다’는 소문을 만들어내고 퍼뜨리는 것이 당시 지식인 사회의 풍토였다. 그런 풍토가 아직도 걷히지 않아서일까? 송계월은 현재 미서훈 상태이다.”

이준식 독립기념관 관장은 (사)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가 12일 서울 정동 세실극장에서 주최한 ‘항일 여성 독립운동에 대한 회고와 전망’ 국제 심포지엄에서 “우리는 여성 독립운동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 더 정확하게는 무지에 가까운 것이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이준식 독립기념관 관장 / 진주원 기자
이준식 독립기념관 관장 / 진주원 기자

독립유공자 지청천 장군의 외손자이자 지복영 지사의 아들인 이 관장은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여성 독립운동가는 무수히 많다”고 했다. “여성은 남성 못지않게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직접 독립운동의 일선에서 활동하면서 이름을 남긴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다면 여성이라는 이유 때문에 이름도 남기지 못한 채 독립운동에 기여한 경우도 있다”면서 “숫자로 따지면 후자가 훨씬 더 많았을 것”이라는 것이다.이 관장은 여성 독립운동을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최근 들어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초·중·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는 등장하는 수많은 독립운동가 가운데 여성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여성 독립운동가라고는 기껏해야 유관순의 이름만 유난히 강조된다”고 지적했다.

또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와 관련해 이 관장은 “8종의 교과서에서 유관순 이외의 여성 독립운동가 이름은 눈을 씻고 찾아도 찾기 힘들 정도였다”라면서 “3‧1운동 과정에서 유관순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했고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의 첫 여성 의원이 된 김마리아의 이름도 여성 독립운동가로서는 최고 등급인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받은 남자현의 이름도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특히 “‘근우회 등의 여성운동 단체가 꾸려져 여성의 지위 향상과 여성해방을 위한 활동을 전개했다’는 식의 천편일률적 서술에 그치고 있다”고 했다. 이같은 서술에 대해 “일제강점기 여성들은 독립운동가라는 호칭을 얻은 일부를 제외하면 민족해방을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남녀평등을 위해 단체를 만들고 이러저러한 활동을 벌인 것으로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면서 “근우회와 같은 시기에 똑같이 민족협동전선의 일환으로 출범한 신간회에 대해 독립운동으로 규정하고 더 자세히 서술하고 있는 것과 명백히 대비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여성 독립운동을 제대로 인식하기 위한 전제는 남성 중심으로 독립운동의 역사를 보는 것을 깨는 것”이라면서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나라를 잃은 슬픔에 비분강개했고 그러한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려는 굳은 의지를 갖고 있었다”고 이 관장은 강조했다.

이지원 대림대학교 교수 / 진주원 기자
이지원 대림대학교 교수 / 진주원 기자

3·1운동 및 임정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위원인 이지원 대림대학교 교수는 식민지 시기 자기 주체적인 삶의 선택과 행로 속에서 항일의 길을 가는 여성들이 갖는 다양한 정체성을 읽어내는 항일여성운동의 역사가 복원돼야 한다고 제시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그동안 역사 연구에서 여성을 주체로 인식하는 관점과 연구는 미진했다. 특히 식민지 시기 항일독립운동 연구에서 남성 중심의 관점과 연구로 인해 식민지 근대를 살아간 여성들의 삶과 항일운동은 보편사로서 연구되지 않았다”면서 “‘애국심’과 ‘민족의식’은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식민지시기 여성들이 선택한 주체적인 삶과 다양한 역동성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특히 연구가 되지 않고 있는 분야로 여성 민중운동을 꼽았다. “일제 강점 이후 항일 여성운동에서 노동자, 농민으로 삶의 현장에서 항일의식과 항일운동을 전개한다는 것은 중요한 부분이다”라면서 특히 해녀의 생존권 투쟁을 여성사와 항일운동사가 가장 잘 드러나는 사건으로, 강주룡을 민중의 생존권 투쟁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인물로  꼽았다. 그러나 여성 사회주의운동, 농민운동, 노동운동 등에 대한 연구는 1990년대 중반 진행되다가 중단된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한국광복군으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 지복영
한국광복군으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 지복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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