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유희로 다가온‘화무’
화가 김인순
김인순은 꽃을 즐겨 그린다. 이를 두고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여성과의 생물적 연관성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작가 자신은 이러한 연관에 대해 크게 관여하지 않고 있으며 성에 대한 강조로도 보려 하지 않는다. 다만 남성 위주의 가부장적 사고로부터 모든 여성에 대한 성적 편견이 사라지길 바랄 뿐이다.
그래서 그는 화가이자 여성운동가인 미국의 조지아 오키프의 말 “사람들은 왜 풍경화에서 사물들을 실제보다 작게 그리느냐고 묻지는 않으면서, 나에게는 꽃을 실제보다 크게 그리는 것에 대하여 질문을 하는가?”를 자주 인용한다.
최근 김인순의 ‘화무’는 인체의 율동처럼 나타난다. 이전의 그림들이 인체의 관능미를 담았다면, 최근에 보여주고 있는 ‘화무’는 꽃 속에 인체를 감추고 있다. 인체에 화사한 옷(꽃)을 입혔다고 할 수 있다. 그녀의 ‘화무’는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일반적인 꽃이지만, 큰 율동으로 표현됨으로써 추상미를 선사한다. ‘화무’의 아름다운 곡선은 여성을 상징하며, 힘찬 필력은 현대 여성의 당당함과 정열을 보여준다.
그녀의 작업 과정은 액자부터 그 위에 캔버스 천을 씌우기까지 자신의 수(手)작업을 통해 완성한다. 이 또한 그녀의 즐거움이다. 잘 짜인 캔버스는 그녀의 놀이터로, 뿌리고 칠하고 손으로 문지르고 다시 뿌리고 캔버스를 자유로이 움직여 뿌려진 색상을 적당한 모양으로 유도한다.
서서, 앉아서, 눕듯 누워서 온몸을 휘감아 돌리는 붓놀림은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위에서 아래로, 또는 이에 역방향으로 단 한 번에 이루어진다. 그만큼 짧은 시간에 모든 것을 담아내려 하는 것이다. 마치 신들린 사람처럼 붓을 가지고 화면 위에서 춤을 춘다. 이렇듯 그녀의 작업은 생기 넘칠 뿐 아니라 살아 숨쉬는 생동감을 준다.
때문에 그녀의 ‘화무’는 인체가 춤을 추는 것인지 꽃이 춤을 추는 것인지 언뜻 구분하기가 어렵다. 전신으로 다 보여주는 ‘화무’는 흥에 겨운 듯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요동친다.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이 인체 내면에 용솟음치는 에너지는 폭발 직전의 용암처럼 강렬한 생명력으로 다가온다.
김인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