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아동 범죄 분투 권일용 경찰청 경위
"범죄유형 시스템화가 예방 지름길" 서울 경찰서에 프로파일링 첫 도입
2008-04-11 이은경 / 여성신문 기자·20주년 기념사업본부장
“이제는 아이들에게 막연히 ‘낯선 사람 따라가지 마’ 식으로 안전교육을 시키던 때는 지났다. 이번 안양 사건에서도 그렇듯 아이들은 2~3명이 함께 있을 때, 또한 자신이 친숙한 지역에서 “조용히 하고 따라오지 않으면 죽일 거야”란 가해자의 말을 더 잘 듣는 경향이 있다. 체감하는 위험도가 분산돼 경계심을 늦춘다고나 할까. 어쨌든 상식적으로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인데, 공포의 정도는 환경과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이런 가해자와 피해자의 심리적 요소를 파악하고, 이들에 대한 자료를 축적해 전문적인 대책을 시급히 세울 때다.”
안양 초등생 유괴살해사건에 이어 일산 초등생 납치미수사건 등 우리 사회는 아동범죄의 후유증으로 인한 트라우마(외상후 스트레스장애)를 단단히 앓고 있다. 2000년대 이후 나날이 지능화돼가고 있는 범죄에 전문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프로파일러(profiler, 범죄행동분석가)를 대폭 확충하라는 본지 보도(973호)에 보여준 독자들의 관심에 힘입어 이 분야 개척자인 권일용 경위를 만났다.
현재 경찰청 과학수사센터 범죄정보지원계에서 일하고 있는 권 경위는 이번 안양 사건에서도 용의자 정씨를 이틀에 걸쳐 10여시간 동안 집중면담해 범행 일체를 자백받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경찰에 입문해 10여년간 현장감식 요원으로 일하면서 프로파일링의 필요성을 절감, 당시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실 윤외출 실장에게 바이캣팀(Violent Crime Analysis Team)을 만들자고 건의한 것을 계기로 2000년 2월부터 프로파일러로 활동해오고 있다. 2004년 터진 연쇄살인범 유영철 사건을 계기로 프로파일러 특채가 시작되면서 후배 양성에 전념하고 있다. 오는 5월이면 3기까지 배출하게 돼 40여명의 ‘경장’ 후배를 거느리게 된다. 이들은 사회심리학 전공자들로 구성됐는데, 5대 1의 경쟁을 뚫고 들어왔으며 여성이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프로파일러는 범죄 현장의 과학적 데이터를 통해 범죄 동기와 범죄행위 전개를 추론하면서 성폭행, 살인, 강도 등으로 ‘첫’ 수사방향을 설정해 수사를 지원하고, 범인 검거 후에는 범인과의 면담을 통해 범죄 관련 종합자료를 만드는 등 범죄 전후 과정에 다 밀접히 연결돼 있다. 권 경위는 ‘육감’으로 대변되는 민완형사의 경험적 추론에 의한 수사기법을 탈피, 범죄 특성을 항목화하고 범죄를 재구성하면서 이런 작업이 축적돼 전국 경찰이 수사에 활용할 수 있도록 자료를 ‘시스템화’(SCAS·Scientific Criminal Analysis System)한다는 데 큰 의미를 둔다.
“FBI(미 연방수사국)가 왜 검거율이 높은지 아는가? 바로 범인을 추적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잘 돼 있기 때문이다. 수사 장비와 요원들이 고도로 전문화돼 있어 과학수사 기반이 탄탄한 데다가, 과학수사를 통한 분석과 해석의 결과물이 수사팀에 곧바로 연결돼 성공적인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다.”
프로파일링을 시작하면서 권 경위는 FBI의 각종 자료들을 섭렵하고 심리학을 집중 공부하는 한편, 전국의 범죄 현장을 발로 뛰면서 자료를 축적해왔다. 현재 200여개의 범죄행동이 항목화되고, 범죄자가 유형화되는 작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그 중심에 서있는 그이지만 이상범죄자에 대한 효과적인 안전수칙을 밝히는 것에 대해선 소극적이다. 범죄 현장에서 치밀하고 전문적인 범행계획서가 발견되고, 언론과 인터넷을 통해 나날이 범죄가 업그레이드돼 가고 있는 상황에서는 이 안전수칙마저 범인에게 악용당하지나 않을까 걱정된다는 것이다.
“안양 사건의 범인 정씨는 끝내 범행 동기를 밝히지 않았다. 아니, 범행 동기 자체가 그에겐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이런 범인들에 맞서서 ‘소진’되지 않도록 자신을 잘 조절하는 것, 그것이 바로 프로파일러가 갖춰야 할 가장 큰 자격 조건이다.”
그의 바람처럼 대한민국이 잔혹한 범죄에 ‘소진’되지 않도록 내공을 가지고 범죄대응 시스템을 갖추도록 지원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제까지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는 첫 걸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