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논단] 어떤 피해자에게 너그러운가

2025-11-25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
14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한국여성의전화 회원들과 활동가들이 여성 살해를 규탄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참여자들이 등에 있는 로고로 2024년 한 해 동안 신고하거나 보호조치를 받았음에도 살해되거나 살해 위협에 놓였던 피해자 '114명'을 상징했다. ⓒ손상민 사진기자

사무실에서 이야기하던 중 누군가 물었다. “왜 정부는 데이트(교제)폭력은 얘기하면서 가정폭력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나요?” 대번에 피해자가 혼인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라는 답이 나왔다. 피해자의 혼인상태가 왜?

법률혼 혹은 법률혼에 준하는 혼인 형태를 하고 있을 때, 다시 말해 이성애 법률혼을 하고 국가에 ‘아내’라는 이름으로 등록되었을 때 그녀의 폭력 피해는 가부장적 결혼제도에서 이미 어느 정도 용인된 것이나 다름없다. 본인이 남편(가해자)을 선택했다는 점, 본인이 원하면 해소할 수 있는 관계인데 떠나지 않고 있다는 점, 폭력과 갈등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회에서는 폭력이 종종 부부싸움으로 둔갑한다는 점, 원치 않은 성관계라 하더라도 이 또한 부부의 ‘의무’라고 생각한다/된다는 점, 그리고 집안일은 집안에서 끝나야 한다는 점 등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 그리하여 매번 가정폭력실태조사에서 주변에 도움을 청한 적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1%만이 그렇다고 한다. 

현장에서 보면 여성폭력 피해자는 다음과 같은 조건에 있을 때 사법적 대응이든 공동체적 대응이든 대개 더 나은 대우(?)를 받는다. 누가 봐도 심하게 다쳤음이 확연하게 표가 날 것, 가해자보다 키가 작고 덩치도 작을 것(차이가 크게 날수록 좋음), 가해자보다 학력이 낮을 것, 가용 사회적 자원이 적을 것, 가해자와 성관계한 적이 없을 것, (가해자에 따라 다르지만) 혼인한 적이 없을 것, 나이는 사춘기에 진입하기 이전일 것. 글을 쓰면서도 모욕감을 느끼는 피해자의 조건. 언제 적 이야기냐고 하겠지만, 안타깝게도 이는 2025년 현재 우리 상담실에서 끊이지 않고 들려오는 얘기다. 여성폭력에 대해 진지하게 알려고 하지 않는 수사/재판기관은 그나마 피해자가 이런 모습이어야 피해자에게 너그러워진다. 

일전에 ‘교제’폭력 대응 관련 토론회에서 한 청중은 “‘교제’폭력에 대한 해법을 찾지 못하면 결혼을 하지 않을 것이니 저출생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는 취지의 의견을 제시했다. 좌장 또한 청중의 말을 반복하며 ‘교제’폭력 문제 해결을 위한 설득에 새로운 해법이 생겼다는 듯 고개를 주억였다. 소중한 ‘출산의 도구’라도 되어야 ‘보호’받을 수 있다는 절박한 마음이었겠지만, 이런 식은 이제 좀 그만뒀으면 좋겠다. 

24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에서 기본소득당 여성위원회와 친밀관계폭력 피해자 가족, 피해지원 단체들이 주최한 지난 9월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가정폭력처벌법 전부개정법률안(친밀관계폭력처벌법)’의 심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참여자가 '반복되는 교제폭력의 고리를 끊자'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손상민 사진기자

“여성폭력 하면 저출생 문제도 해결 못 해요”, “취약한 피해자를 도와줍시다”, “가해자가 불만이 많아서 그래요, 스트레스를 풀어줍시다” 이런 것 말고, “다른 사람을 자기 마음대로 하려는 것은 불가능할뿐더러 잘못된 일입니다”, “눈빛으로도, 말로도, 손으로도, 발로도 하지 마세요, 국가가 처벌합니다”, “이건 형벌권을 가져간 근대국가가 약속한 일입니다. 이의 달지 마세요”,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을 통제하는 것부터 배웁시다”가 더 크게 들려야 한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는 잘 전달되지 않는다. 누구나 아는 이야기, 또 같은 이야기라며 귀 기울이지 않는다. 그래서 나도 소위 ‘어그로’ 끌릴 것 같은 제목을 달아보았다. 사람이 아무리 죽어 나가도 몹시도 평온한 이 사회가 진절머리 난다. 점잖게 웃으며 갈등이나 풀라는 이 사회가 진절머리 난다. 

오늘부터 12월 10일까지는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이다. 피해자 탓 그만하자. 어떤 위치와 조건에 있는 피해자든 우리 사회가 정한 원칙에 따라 잘 보호받을 수 있게 하자. 신고하고도 목숨을 잃거나 위협받았던 최소 114명을 기억하자. 국가의 방임과 미흡한 대응에 절망했을 이들에게 공감하자. 지난 16년간 여성폭력으로 목숨을 잃거나 잃을 뻔했던 최소 4,423명을 기억하자. 국가의 실패를 새기자. 체감할 수 있는 변화를 국가에 요구하자.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 ⓒ본인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