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영이 만난 사람들] 녹색당 김혜미는 왜 “1.5도 목표를 사랑하자”고 했을까

[장혜영이 만난 사람들] 당위를 넘어 근거를 만드는 기후정책활동가 겸 정당인 김혜미

2025-11-20     장혜영 전 국회의원·정의당 마포구위원회 지역위원장
김혜미 녹색당 당원이 이재명 정부가 지난 11일 발표한 ‘2035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2035 NDC)를 하한 50% 또는 53%, 상한 60%라는 두 가지 안에 대해 반대 피켓을 들고 있다. ⓒ장혜영 제공

"1.5도 목표를 사랑하자. 우리 다 함께." 김혜미는 인터뷰 말미에 이렇게 말했다. ‘김혜미’는 기후위기 문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이름이다. 그는 94년생으로 벌써 두 번이나 총선에 출마한 이력을 가진 녹색당의 간판 정치인이자 기후활동가다. 그런 그가 지난 9월, 기후위기문제 해결에 앞장서는 ‘플랜1.5’라는 비영리단체의 정책활동가로 일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에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축하를 전하면서도 의아했다. 혹시 정치를 그만둔 것일까?

"저는 아직 녹색당 당원이고 마포녹색당 운영위원장이에요.” 걱정은 기우였다. 그는 여전히 한 달에 한 번 마포녹색당 운영위원회를 연다. 국정감시도 꾸준히 하고 있다. 새로 일하게 된 단체는 그간의 활동을 존중하며 그를 동료로 맞이했다. 다만 내년 지방선거를 이유로 갑자기 자리를 비우거나 정당 의사결정의 중심에 있는 당직은 맡지 않겠다는 뜻은 분명히 전했다.

"혼자 뭘 하는 게 안 되더라고요. 재미가 없는 거예요.” 낙선 후 지난 1년은 치열한 고민의 시간이었다. 프리랜서로 강의와 연구를 하며 돈을 벌었지만 결국 자신에게 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엇보다 더 이상 당위만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지금까지 기후위기가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상황을 정치가 해결하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정당 가입부터 출마까지 활동을 이어왔다면, 이제는 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진짜로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근거를 만들고 싶어요.” 플랜1.5 지원서에 그는 수송 부문 온실가스 감축에 관한 정책 제안서를 냈다. 주거지역의 차량 통행을 제한하는 런던과 유럽 등의 법제화 시민운동 사례를 정리한 것이었다. 그렇게 플랜1.5의 정책활동가가 된 지 3개월, 그는 정부의 ‘2035 NDC(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라는 거대한 파도에 휩쓸렸다.

지난해 4월 총선에서 김혜미 녹색당 후보가 유세를 하고 있다.  ⓒ녹색당

이재명 정부는 지난 11일 2035년 NDC를 2018년 대비 53~61%라는 범위로 확정했다. 1.5도 목표 달성을 위한 국제사회의 최소 기준인 61%가 ‘상한’이라는 형태로 반영된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사실상 “낮은 감축 목표를 가리기 위한 눈속임”이며 “상한은 아무 의미가 없고 착시만 일으킨다”는 것이 시민사회와 법조계, 학계의 중론이다. 국회 기후특위에 발의된 다수의 NDC 관련 법안들의 하한선은 각각 60, 61, 65%로 정부의 상한에 가깝거나 그보다 더 높다. 이러한 정부의 결정은 작년 헌법재판소가 내린 탄소중립기본법의 중장기 NDC 미설정 헌법불합치 판결의 권고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헌재는 2031년부터 2049년까지의 온실가스 감축목표에 관해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계획을 세울 때 미래에 과중한 부담이 이전되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명시했다. 정부의 53% 하한은 미래세대의 가중된 부담을 고려하지 않고 2018년부터 2050년까지 매년 똑같은 비율로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선형감축경로’를 의미한다.

"국회 안이든 대통령실이든, 기후 문제를 자신의 1순위로 갖고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진짜 극소수라는 한계를 또 한 번 크게 느꼈어요.” 김혜미의 관점에서 이재명 정부의 무책임한 2035 NDC 결정의 배경에는 서로에게 끝없이 책임을 전가할 수 있는 양당정치의 구조적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여당이자 거대정당인 더불어민주당은 1.5도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감축목표 설정을 윤석열 정부와 현실가능성이라는 이유에 전가한다. 차기 정부는 윤석열 정부가 제대로 감축하지 않은 온실가스 몫까지 떠안아야 하므로 의욕적인 목표 설정이 어렵고, 산업계를 위해 다소 미온적인 목표 설정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김혜미의 생각은 다르다. “윤석열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에 아무 노력을 기울이지 않던 3년간 가장 큰 의석을 갖고 있던 것은 민주당이었어요. 그간 민주당은 뭘 했죠? 특검과 탄핵 외에 아젠다가 없었어요. 그리고 어떻게 이렇게까지 사법부 의견을 존중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정부는 헌법재판소의 판결문조차 ‘현실 가능성’이라는 말로 일축했다. "우리가 정치에 기대하는 것은 현실에서 가능한 일만 하는 게 아니라, 가능하지 않은 걸 현실에서 실현하는 거잖아요.” 그가 답답함을 토로했다.

김혜미 당원은 “좌절은 아직 이르다고 얘기하고 싶어요. 올해 1.5도를 넘겼다는 것이 곧바로 우리가 이 목표를 포기해야 할 이유가 될 수도 없어요”라고 했다.ⓒ장혜영 제공

대한민국 모든 시민들의 삶은 물론 전세계 인류와 생태계에 근본적인 위협을 미치는 기후위기라는 거대하고 장기적인 의제는 정쟁의 뒷전으로 밀려났다. 정치가 있어야 할 자리를 채운 것은 산업계의 과잉대표된 목소리다. 기후의제의 향방을 결정하는 공론장에 가장 큰 목소리를 갖는 주체가 온실가스 감축에 가장 퇴행적인 입장을 가진 이해관계자들이라는 역설적인 상황이 또 한 번 반복됐다. 6차례에 걸친 정부의 2035 NDC 종합토론회 겸 공청회 패널 대다수는 철강협회를 비롯한 산업계 협회 관계자였다. “시민들의 목소리를 너무 편파적으로 듣고 있어요.” 이재명 정부에서 기후에너지부가 출범해 일부 기능이 이관됐지만, 정부 전체로 보면 여전히 산업 관련 부처가 압도적으로 강한 권한을 행사한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목표 상향과 입법이다. 정부는 얼마든지 상향된 목표를 국제사회에 다시 제출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도 2020년에 2030 NDC를 2018년 대비 26.3%로 결정했다가 각계의 비판을 수용해 이듬해에 2018년 대비 40%로 상향한 선례가 있다. 이처럼 2035 NDC를 하한 없이 61% 이상, 가능한 65%까지 상향시키는 광범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한편 NDC는 법률에 명시된 조항이므로 신규 NDC에 따라 국회는 곧 탄소중립기본법 개정을 추진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53%~61%라는 부적절한 내용이 그대로 반영되는 것을 막고 조금이라도 진전된 내용이 입법될 수 있도록 열심히 싸워야 한다.

결코 낙관적이지 않은 한국의 기후정치 상황에 아랑곳없이 계속 변화를 위해 분투하는 김혜미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정치가 아무리 실망스러워도 정치의 가능성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요.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법과 제도를 만드는 정치의 영역이 무엇보다 중요해요. 누군가는 정확한 목표를 이야기를 해야 목표의 근처에라도 갈 수 있어요.” 그는 덧붙였다. “그리고 정치는 여전히 소수자와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키울 수 있는 가장 좋은 스피커예요.” 기후우울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많고, 1.5도 목표 달성은 이미 실패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등장하고 있지만 그는 단호하다. “좌절은 아직 이르다고 얘기하고 싶어요. 올해 1.5도를 넘겼다는 것이 곧바로 우리가 이 목표를 포기해야 할 이유가 될 수도 없어요.” 대통령의 불법 계엄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엄동설한에 광장을 지키며 막아낸 대한민국 시민들의 저력을 믿는다면 쉬운 비관은 오만이다.

기후정치가 마주한 난관의 하나는 내용의 복잡성과 어려움이다. 그에게 이 어려움을 넘어설 수 있는 조언을 부탁하니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고 싶듯이, 우리가 기후위기를 해결하려는 마음을 갖기 시작했다면 이것을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진짜 자세히 알려는 마음을 좀 가져보면 어떨까요. 1.5도 목표를 사랑해보는 거죠.”

과학은 자연과 지구에 대한 사랑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지구온도상승을 1.5도 이내로 제한하기 위해 전세계가 함께 노력하기로 약속한 파리협약은 과학의 성과 위에 인류가 성취한 또 하나의 사랑이다. 이 사랑의 성과 위에서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김혜미는 오늘도 해본 것보다 해보지 않은 것들과 씨름하며 하루를 보낸다. 이것을 이 세상과 동료 시민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면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기후위기 대응은 당위 가득한 구호가 아니라 머리를 싸매고 공부하는 사랑의 실천이라는 귀중한 사실을 김혜미에게 배운다. 자세히 보아야 아름답듯, 자세히 알아야 사랑할 수 있다. 그 사랑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힘이다.

장혜영 전 국회의원·정의당 마포구위원회 지역위원장 ⓒ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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