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선의 산책] 아버지는 먹어치우고 엄마는 거미로…

[김효선의 산책] 호암 루이즈 부르주아 전시회 ‘덧없고 영원한’ 아버지의 해체와 거미 모성의 형상화, 그리고 용기를 전하다 백 살까지 뜨겁게 살았던 페미니즘 미술 거목 감정의 덩어리를 작품으로 빚어 상처 치유

2025-11-20     김효선 칼럼니스트
루이즈 부르주아, ‘웅크린 거미’, 2003, 청동에 갈색, 광택 처리된 파티나, 스테인리스 스틸, 270.5 x 835.7 x 627.4cm, 이스턴재단 소장. ⓒ김효선 칼럼니스트

볼만한 전시가 넘쳐나는 요즘, 가을의 미술관 풍경은 유난히 풍성하다. 그중에서도 놓치기 어려운 전시가 있다. 바로 호암미술관의 ‘루이즈 부르주아 — 덧없고 영원한’이다.

전시관에 들어서면 천장에 매달린 〈커플〉 조각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한 몸처럼 엉켜 부둥켜안은 두 인물이 천장에 매달려 있는 모습은 뜨겁고 불안하다. ‘덧없고 영원한’이라는 제목처럼, 그들의 덧없기에 더욱 합일을 갈구하는 것일까. 

이후 마주하게 되는 대표작 〈Maman〉, 〈아버지의 파괴〉, 〈셀〉, 〈토르소: 자화상〉, 〈여자와 집〉은 관람자의 감정선을 긴장시킨다. 거대한 거미로 표현된 엄마의 모성은 무엇이며, 왜 아버지는 그렇게 흉측하게 해체되어 식탁 위에 올랐을까? 몸통과 얼굴이 한데 뭉뚱그려진 〈토르소: 자화상〉은 어떻게 ‘자화상’일 수 있는가? 여자의 몸이 건물로 변한 〈여자와 집〉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부르주아는 “감정을 해부하고 구조적으로 재조직하는 것”이 자신의 예술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의 작품은 원초적이고 뜨거운 감정의 덩어리를 능숙하게 다듬어낸 조형물처럼 보인다. 

루이즈 부르주아, 커플(The Couple), 2003, 알루미늄, 365.1 x 200 x 109.9 cm, 개인 소장, 뉴욕. ⓒ김효선 칼럼니스트
뉴욕 자택에서 루이즈 부르주아, 2003. ⓒ사진: 낸다 랜프랭코, ⓒ The Easton Foundation/Licensed by SACK, Korea

그는 1911년 프랑스 파리 근교에서 태어났다. 태피스트리 수선업을 하던 집안은 경제적으로는 여유로웠지만 정서적으로는 불안했다. 외도하는 아버지, 병약한 어머니, 그리고 그 곁을 지키던 딸 부르주아. 고급 직물과 실로 만든 벽화를 수선하던 일상 속에서, 그는 손끝으로 천을 꿰매며 자라났다.

그는 어린 시절의 가정을 상처와 배신, 버려짐으로 기억했다. 그리고 그 기억을 ‘손으로 만지는’ 작업을 통해 재구성하며 자신을 치유했다. 어머니와 아버지, 남편의 죽음을 겪은 후에는 거의 30년 동안 정신분석 치료를 받으며 수많은 기록을 남겼다. 그 기록은 그가 자신의 상처를 어떻게 직시하고, 해석하며, 예술로 승화시켰는지를 보여준다.

호암미술관 2층에는 대표작 〈Maman〉이 전시돼 있다. 9미터 높이의 검은 청동 거미 조각이다. 여덟 개의 긴 다리는 긴장감 있게 뻗어 있으며, 몸통에는 대리석으로 만든 알 17개가 들어 있다. 영상 속 부르주아는 “나는 버림받았다. 나를 버렸다.”라고 절규한다.

거미줄을 자아내 집을 짓고, 끊어지면 다시 잇고, 새끼를 먹이고 해충을 막는 거미의 부지런한 일상은 어머니의 생애와 닮아 있다. 그는 “거미는 어머니이자, 나 자신이다.”라고 말했다. 병약한 몸으로 분노를 삭이며 버텼던 어머니를 이해하고,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거대한 거미는 52세에 생을 마감한 어머니에 대한 오마주이자 자화상이었다.

부르주아는 공부도 뛰어났다. 소르본 대학 수학과를 졸업했고, 어머니의 죽음 이후 본격적으로 미술 공부를 시작했다. 작은 갤러리를 운영하던 중 미술사학자 로버트 골드워터와 결혼해 뉴욕으로 이주했다. 낯선 맨해튼에서 세 아들의 어머니로 살아가는 일은 녹록지 않았다. 주부로서의 삶과 예술가로서의 욕망 사이의 긴장은 〈여자와 집〉 시리즈로 드러났다. 

집-여자(Femme Maison), 1946-47, 리넨에 유채, 잉크, 91.4 x 35.6 cm, 개인 소장, 뉴욕. 사진: 크리스토퍼 버크 ⓒThe Easton Foundation / Licensed by SACK, Korea

당시 뉴욕 미술계는 남성 대가들이 주도하는 추상미술의 전성기였다. 감정은 배제되고 이성의 형식미가 예술의 본질로 여겨졌다. 감정과 여성적 감수성은 하찮고 병리적인 것으로 폄하됐다. 그 안에서 여성 예술가가 인정받기란 쉽지 않았다.

남편 골드워터는 “예술의 원동력은 원초적 감정에 있다”는 ‘원시주의’ 이론으로 주목받았다. 그의 저서 『현대미술의 원시주의(Primitivism in Modern Painting)』는 부르주아에게 이론적 힘이 됐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녀는 ‘독박 육아’를 짊어진 젊은 예술가였다. 낮에는 주부로, 밤이 되어서야 다락방이나 식탁 한켠에서 비로소 자신을 만날 수 있었다.

그때 태어난 작품이 바로 〈여자와 집〉 시리즈다. 여자의 몸이 집으로 물화된 이미지에는 모성의 고통과 자아의 분열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녀는 “아이들은 사랑스럽지만, 나를 불안하게 한다”고 고백했다. 아이들 또한 “엄마는 예술을 가르쳐줬지만 늘 불안한 사람이었다”고 회상했다. 

아버지의 파괴(The Destruction of the Father), 1974-2017, 보존용 폴리우레탄 수지, 목재, 천, 붉은 조명, 237.8 x 362.3 x 248.6 cm, 글렌스톤 미술관 소장, 포토맥, 메릴랜드, 미국. 사진: 크리스토퍼 버크 ⓒThe Easton Foundation / Licensed by SACK, Korea

남편과 사별한 뒤, 그는 63세에 〈아버지의 파괴(Destruction of the Father)〉를 제작했다. 아버지를 난도질해 식탁 위에 올려놓은 이 작품은 섬뜩하고 강렬하다. 여기서 ‘아버지’는 생물학적 존재만이 아니다. 가부장의 규칙, 여성의 개성을 억누르던 질서, 독박육아로 상실된 자아까지 포함한다. 부르주아는 그것을 파괴함으로써 “새로운 나의 탄생”을 선언했다.

80세 전후에는 〈Cells〉 연작을, 88세에는 〈Maman〉, 85세에는 〈커플〉을 발표했다. 죽기 1년 전인 2009년(98세)에도 자화상을 그렸다. 24시간 시계 위에 매 시간마다 그림을 그리고, 마지막 24시에는 거미를 그려 넣었다.

부르주아는 71세에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개인전을 연 첫 번째 여성 예술가였다. 82세에는 베니스 비엔날레 미국 대표로 참가했고, 88세에는 〈Maman〉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98세까지 자화상을 그리고, 99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다.

그의 뜨거운 노년은 우리에게 또 한 번의 용기를 건넨다. 부르주아는 이제 ‘거미 엄마’로 우리 곁에 영원히 남았다.

내년 1월 4일까지 이어지는 전시, 그 거미 엄마를 만나러 산책길에 나서보자.

호암미술관 전시장 바깥에서도 루이즈 부르주아의 작품들을 찾아볼 수 있다. 사진은 화강암을 조각해 만든 ‘눈 모양 의자(Eye Benches)’. ⓒ이세아 기자

루이즈 부르주아의 생애와 주요 작품들

1911년 프랑스 파리 근교 쇼아지르루아 출생. 태피스트리 수선 가정에서 성장
1932년–36년 소르본느 대학서 수학 기하학 전공.  미술로 전환, 페르낭 레제(Fermand Leger) 등에게 수학
1938년 미술 평론가 로버트 골드워터와 결혼해 뉴욕으로 이주
1939년-41년 첫째 아들 입양, 두 아들 출산
1945년 뉴욕 버사 셰이퍼 갤러리서 첫 개인전
1946-47년 회화/ 판화 중심기. ‘Femme Maison’(집과 여자)에서 자의식과 모성의 충돌 표현
1950년대 미국 추상미술가협회(American Abstract Artists) 참여. 브론즈 석고로 재료 확장
1973년 남편 로버트 골드워터 사망
1974년 설치조각으로 전환 / ‘Destruction of the Father’(아버지의 파괴)로 가부장적 권력구조 해체 표현
1982년 뉴욕 MoMA 회고전. MoMA 첫 여성 조각가 개인전
1989년 설치연작 ‘Cells’ 착수. 개인의 기억과 공포를 공간으로 시각화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 미국관 대표로 참가
1996년 작품 ‘Couple1’에서 서로 얽혀 매달린 두 인체로 의존과 긴장 표현
1999년 세계적 예술가로 명성 확립. ‘Maman’(거미 엄마) 제작
2000년 ‘Maman’ Tate Modern에 설치
2000년대 섬유, 봉제, 판화 결합한 자전적 작업에 집중. ‘Cells 4(Portrait)’ 제작, 2009년 ‘Self Portrait’에서 24시간 시계를 표현, 24시 시작이자 종점에 거미를 그려 넣음.
2010년 뉴욕에서 사망

김효선 칼럼니스트 ⓒ여성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