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가 없다’는 체념의 폭력 [정덕현의 문화 헌터스]

[정덕현의 문화 헌터스] 영화 ‘어쩔 수가 없다’

2025-10-01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칼럼니스트

“다 죽여버려.” 흔히들 경쟁의 무대에 나가는 이들에게 그런 말로 응원을 하곤 한다. 경쟁자들을 이기고 주목받는 최후의 1인으로 살아남으라는 말이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어쩔 수가 없다>에서 만수(이병헌)의 아내 미리(손예진)는 취업 면접에 나가는 남편에게 그런 말로 응원한다. 그런데 남편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얼굴로 활짝 웃으며 하는 그 말은 기괴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박찬욱 감독은 아마도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누군가를 ‘죽이라’는 표현을 일상적으로 내놓는 사회가 이상하게 보였을 게다. 그래서 엉뚱하게도 이 말을 실제로 실행하는 블랙코미디의 세계를 상상한다.

영화 ‘어쩔수가없다’ 스틸컷 ⓒCJ ENM

아내와 아들, 딸 그리고 반려견들과 함께 아름다운 전원주택에서 살며 분재 같은 고급(?) 취미를 가진 만수는 25년째 제지회사에서 종이 전문가로 일하며 “다 이루었다”고 말할 정도로 성공했다 생각한다. 하지만 외국 자본이 들어오고 경영진이 바뀌면서 대대적인 정리해고가 이뤄지면서 ‘모가지가 잘렸다’. 다 이룬 걸 어떻게든 지켜내기 위해 재취업에 나서지만 자신의 전문분야인 제지회사는 경쟁이 더 치열하다. 인간이 하던 일을 기계가 대치하기 시작하면서 일자리가 대폭 사라졌기 때문이다. 만수는 면접을 본 제지회사 ‘문 제지’에서 자기보다 나은 이력을 가진 경쟁자들을 저 아내의 말대로 ‘죽여버리겠다’는 엉뚱한 결심을 하게 된다. 자신이 그 회사에 들어갈 수 있는 최후의 1인이 되기 위해서다. 그러면서 스스로 되뇌인다. “어쩔 수가 없다”고. 체념과 자조와 결심을 담아서.

영화 ‘어쩔수가없다’ 스틸컷 ⓒCJ ENM

취업을 위해 면접 경쟁자를 제거한다는 상상은 엉뚱하고 어찌 보면 황당하지만, 박찬욱 감독은 이 블랙코미디를 통해 세상에 가득한 ‘체념의 폭력’들을 꼬집는다. 로봇으로 인력이 대치되면서 일자리가 사라지고 해고된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이 길바닥에 나앉는 게 ‘어쩔 수가 없는’ 시대에 사람은 ‘식물’처럼 취급된다. 뽑고 심고 심지어 분재처럼 마구 비틀어 저들 좋을 대로 변형시키고, 나아가 모가지를 자르고 묻어버리는 식물처럼 마구 다뤄진다. 숲의 나무가 무지막지한 기계에 의해 댕강 잘려 종이로 재탄생하듯, 사람도 그렇게 상품화되어 시장에 가격표를 단 채 팔리기를 위해 안간힘을 쓰는 존재가 된다.

종이가 인간의 문명을 가능하게 해줬지만 그 보이지 않는 밑바닥에는 나무를 잘라 상품화한 폭력에 대한 체념이 숨겨져 있다. 그 종이로 계약서와 보고서를 쓰고 기획안을 짜는 등의 일들이 이뤄졌지만 그 계약이나 보고, 사업계획들은 누군가를 경쟁에서 밀어내고 잘라내는 행위일 수도 있었다. 예술은 다를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음표를 그려 곡을 썼지만, 그 우아한 행위도 인간의 손에 의해 잘리고 처리되어 나무가 종이로 만들어지는 그 폭력적인 행위를 전제한 것이 아니던가.

영화 ‘어쩔수가없다’ 포스터 ⓒCJ ENM

누군가 “다 이루었다”고 말할 정도로 성공한 삶이라는 건 그래서 누군가의 희생을 밑거름으로 하는 폭력적인 경쟁의 결과가 아닐 수 없다. 환경 문제나 전쟁처럼 그 경쟁적인 성공이 심지어 인류의 파국을 예고하고 있어도 우리는 체념하듯 습관처럼 말한다. “어쩔 수가 없다”고. 하지만 어느 한쪽의 착취적인 성공 이면에 착취당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걸 외면한 채 ‘어쩔 수가 없다’고 말하는 세상에 미래라는 게 있을까. 식물 같은 체념적인 삶은 스스로도 식물로 만든다는 걸 왜 모를까.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칼럼니스트 ⓒ본인제공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