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영이 만난 사람들] 장애와 비장애 사이를 통역하는 ‘장판의 외교부’
최한별 한국장애포럼 사무국장
제21대 국회의원이자 작가, 감독으로 활동해온 장혜영 전 의원이 여성신문에 월간 연재를 시작합니다. 그가 직접 만나고 대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며, 한국 사회의 풍경을 다시 비춥니다. [편집자주]
곧바로 답장받을 것을 별로 기대하지 않으면서 메시지를 보내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그의 일상이 너무나 예측불허이기 때문이다. 그가 지금 어느 현장, 어느 나라에서 어떤 언어로 누구의 말을 어떻게 통역하고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장애인권 문제라면 지구의 동서남북을 종횡무진 누비며 활약하는 ‘장판(장애인 운동 판)의 외교부’ 최한별 한국장애포럼 사무국장이 내겐 그런 사람이다.
우리의 인연은 8년 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나는 막 탈시설한 발달장애인 동생 혜정과의 첫 6개월을 담은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의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 중이었고 그는 장애 전문 매체 ‘비마이너’의 3년차 기자였다. 최한별 기자는 그때까지 내가 만난 언론인들과 달랐다. 그는 나를 통해서가 아니라 내 동생과 직접 의사소통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었다.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다는 이유로 발달장애인들의 의사표현은 일상생활의 아주 많은 곳에서 그를 돌보는 비장애인들의 언어로 대체된다. 가족이든 활동지원사든 그런 비장애인들의 언어가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의사와 다를 수 있다는 가능성은 고려되지 않는다. 최한별 기자는 그 점을 이미 잘 알고 있는 듯 자신의 질문이 몇 번이나 미끄러져내려도 끝까지 내가 아닌 동생과 인터뷰하기 위해 주어진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해 최선을 다했다. 그런 그가 마음에 들었다.
나와의 인터뷰는 동생과의 긴 인터뷰가 끝난 후 보충적으로 이루어졌다. 그가 내게 물었다. 우리의 탈시설은 분명 긍정적인 사례다. 그러나 모두에게 탈시설에 우호적이고 적극적으로 조력을 제공하는 가족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 자매의 사례는 하나의 미담이자 예외에 그치는 것은 아닌가. 예리한 질문이었지만 실망스러웠다. 나와 동생의 도전을 보편의 씨앗을 품은 하나의 가능성이 아니라 손쉬운 예외로 치부하는 사람들을 이미 많이 만나왔기 때문이었다. 미리 생각해 둔 대답을 한 뒤 인터뷰는 마무리되었다. 기자와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에 생각에 잠겼다. 나는 왜 실망감을 느꼈을까. 동생에게 긴 인터뷰를 하는 이 기자라면 우리의 특수성이 아니라 보편의 가능성을 주목해 줄 것이라고 나도 모르게 기대했던 것이다.
용기를 내어 그에게 긴 문자를 보냈다. 처음 만난 사람이 보낸 질척이는 문자 따위 그냥 무시해버릴 수도 있지만, 이 사람이라면 어쩌면 나의 진심을 헤아리고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내 기대는 헛되지 않았다. 그가 보낸 장문의 답장에는 깨끗한 사과의 말과 함께 그가 미처 알아채지 못한 내 마음에 대한 헤아림이 가득했다. 그날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진보적 장애인권운동의 가장 치열한 현장에 가면 늘 그가 있었다. 그가 없으면 기록되지 않는 수많은 현장들을 보며 그가 느낄 책임감과 중압감을 감히 가늠할 수 없었다.
내가 유튜버 ‘생각많은 둘째언니’,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 감독에서 정의당 국회의원 장혜영이 되어가던 무렵, 비마이너의 최한별 기자는 한국장애포럼(Korea Disability Forum, KDF)의 활동가가 되었다. 장애인권운동의 투쟁 현장을 기록하는 언론인에서 그 현장을 글로벌하게 확장시키는 활동가로 변신한 것이다. 이미 기자 생활을 하며 틈틈이 해외 소식을 기사로 쓰고 해외 연수를 나서는 장애인권단체들의 통역을 맡던 최한별을 평소 눈여겨보고 있었던 KDF의 이리나 사무국장이 격무에 지쳐 잠시 비마이너 활동을 쉬던 그를 타이밍 좋게 스카웃했다.
스카웃 제안에 “KDF에서 재밌게 활동할 수 있을지 좀 더 생각해볼게요.”라고 발랄하게 답한 그에게 이리나 사무국장은 일갈했다고 한다. “재미 같은 한가한 소리 할 때가 아니야. 네가 안 오면 진보적 장애운동의 국제연대는 맥이 끊기는 거야.” 그 말에 최한별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한국의 ‘장판’ 투쟁에 애정을 가지면서 정책에 대한 이해와 영어 실력을 갖춘 사람을 찾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그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래, 까불지 말고 내 역량이 이 운동에 최대한 기여할 수 있는 방식으로 나의 투쟁을 하자.’ 그의 원래 꿈은 외무고시를 봐서 외교관으로 활동하다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것이었는데, 어찌 보면 한 바퀴를 크게 돌아 꿈을 이룬 셈이 되었다. KDF는 18개 국내 장애단체들의 연합조직으로 출범한 외교부 산하의 비영리 법인으로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와 한국 정부, 국내외의 장애 관련 시민사회단체들과 긴밀히 협력하며 ‘장판(장애 인권 운동판)의 외교부’ 역할을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수년의 장애 전문 매체 기자로 활동하며 한국 장애계의 지형과 현안을 고루 알고, 영어와 스페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주요 국제기구와 협약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는 30대 여성 활동가의 존재감은 대단했다. 그가 활동을 시작한 시기는 2020년, 전세계가 초유의 코로나19 판데믹으로 우왕좌왕하던 시기다. 한국 정부는 일찌감치 강도 높은 방역 조치를 시행하며 세계적인 방역 모범 국가로 평가받았지만, 애초에 거리두기가 가능하지 않은 집단생활 환경에 살아가는 시설 거주 장애인들은 그 정책의 예외였다. 장애인거주시설에 한국정부는 거리두기 대신 ‘코호트 격리’를 실시했다. 이는 사회와 시설을 격리하는 것이었다.
최한별과 KDF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2020년 5월 6일에는 ‘코로나19가 드러낸 시설 수용의 민낯’이라는 국영문 성명을 내어 한국 정부를 포함한 모든 정부에 탈시설 정책 이행을 촉구했다. 그해 말에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 당사국회의에 사이드이벤트를 개최해 134개국의 코로나19 피해상황과 장애 인권에 관한 조사 내용을 공유하는 한편, 참가자 일동과 함께 모든 국가에 코로나19에 대응하는 긴급 탈시설 정책을 수립할 것을 요구하는 공동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듬해에는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에서 대한민국의 2, 3차 최종견해와 함께 ’긴급상황을 포함한 탈시설 가이드라인’이 발표되자 신속하게 번역해 화제를 만들어냈다. 안타깝게도 열정적이고 유능한 활동가의 등장은 곧 그만큼의 격무를 의미한다. 그는 일하며 자주 아팠다. 문제는 쉰다는 핑계로 대학원 석사과정을 시작하고 마는 그의 못말리는 삶의 방식이다.
늦깎이 대학원생 최한별이 일하며 공부하며 어렵사리 지난 8월 완성한 석사 논문의 제목은 <발달장애인의 정치효능감 영향 요인 탐색 - 유의미한 공동체 참여 경험과 조력자 역할의 중요성>이다. ‘한국피플퍼스트’라는 발달장애인자조모임에서 활동하는 발달장애인 당사자 9명과 조력자 5명을 각각 만나 인터뷰하고 분석해 완성된 이 귀중한 논문의 백미는 국문 초록이다. “발달장애인이 자신의 정치적 힘을 믿게 되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여기에서 조력자들은 어떤 역할을 했을까? 연구는 이러한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시작됐습니다.” 최대한 쉬운 단어를 사용해 경어체로 작성된 이 낯선 논문의 국문 초록은 연구에 참여한 당사자들이 연구의 결과를 읽을 수 없다면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최한별의 선택이다.
그의 연구 지도교수인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최태현 교수는 최한별이 “발달장애인을 연구참여자로 선정해 동의를 받는 과정에서 ‘보호자’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가의 문제에 중요한 선례를 남겼다”고 평했다. 서울대생명윤리위원회(IRB)는 발달장애인 연구참여자를 보호한다는 취지로 ‘보호자’의 동의를 받아올 것을 전제했다. 그러나 ‘보호자’가 실제로 당사자를 보호하지 않거나, 당사자 스스로 법률적 결정이나 경제활동을 충분히 영위할 수 있는 장애인들의 경우 ‘보호자 동의’를 제공하는 것은 발달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아닌가? 연구자 최한별은 이 쟁점을 지나치지 않고 지도교수와 함께 심사위원들을 설득해 중간접점을 찾아냈다. 투쟁에 지쳐 쉬러 가서도 연구의 현장에서 투쟁을 해내는 못말리는 최한별. 그의 석사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최한별은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한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투쟁의 현장을 사랑하며 그 자리를 지킨다. 그 자리에서 비장애인과 장애인, 장애인과 장애인, 지구의 서로 다른 위도와 경도에서 살아가는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의 생각과 삶을 통역한다. 각국 정부를 상대로 단호히 탈시설을 비롯한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의 이행을 요구하는 그의 표정은 당당하고 말투에는 자신감이 흐른다. 그러나 그의 마음 한켠에는 끝없는 망설임과 고민이 있다. 지금 내가 잘 하고 있는 것인지,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지, 더 나은 방식은 없는지, 왜 이렇게밖에 하지 못하는지, 아니 이렇게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그가 번민하는 이유는 언어에 담기지 않는 세계의 가능성을 느끼기 때문이다. 자신의 말 한 마디로 포함되기도 하고 잘려나가기도 하는 존재의 가능성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망설임 속에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옮겨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최한별은 망설임을 품고 용감하게 단어를 고르고 옮긴다. 틀릴 가능성, 부족할 가능성을 전부 끌어안고 주어진 시간 속에 용감하게 말한다. 그렇게 사람들의 삶과 경험을 연결한다. 한번도 질문 받지 않은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통역되지 않은 삶을 통역한다. 그렇게 최한별을 통해 깊어진 세계를 오늘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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