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여성리더] 사회적 통념에 맞서는 Z세대의 아이콘 ‘챤미나’
[세계의 여성리더] 챤미나 20대 한일 혼혈 아티스트 10대 때 랩 배틀프로그램으로 눈도장 차별·외모지상주의에 저항 여성 아이돌 ‘하나’ 프로듀서로도 활약
올해 일본에서 돌풍을 일으킨 신인 여성 아이돌 그룹이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한국인 멤버가 포함된 7인조 다국적 여성 아이돌 그룹 하나(HANA)다. 하나는 일본에서 화제를 모은 오디션 프로그램 ‘노 노 걸스(No No Girls)’를 통해 올해 초 결성됐다. 지난 4월 발매된 ‘로즈(Rose)’로 사랑받은 데 이어 7월 발표된 ‘블루진스(Blue Jeans)’가 돌풍을 일으키며 제이팝(J-pop) 산업을 이끌 차세대 주자로 자리 잡았다. 누적 재생수 1억을 돌파한 블루진스는 오리콘 ‘주간 스트리밍 랭킹’에서 9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일본에서 여성 아이돌 음악이 9주째 정상을 지킨 것은 사상 처음이다. 또한 지난달 포브스지 일본판이 선정한 세상을 바꾸는 ‘30세 이하의 30인’에도 선정되는 등 하나는 사회문화 현상으로까지 불리고 있다.
하나가 일궈낸 성과 뒤에는 하나의 프로듀서이자 가수인 챤미나(본명 오토모나이 미나·전미나)가 있었다. 한국인 어머니와 일본인 아버지를 둔 챤미나는 1998년 한국에서 태어났다. 3살까지 한국에서 살던 챤미나는 이후 일본과 미국을 오가며 유년기를 보냈다. 이후 일본에서 초중고를 다녔다. 챤미나는 어린 시절 좋아했던 케이팝(K-pop) 아이돌 빅뱅의 팬이 된 것을 계기로 힙합 음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고등학생 때인 2016년 일본의 랩 배틀 프로그램 ‘고교생RAP선수권’에 출연하며 눈도장을 찍었다.
챤미나는 랩과 노래, 작사, 작곡, 무대 연출에서 두루 실력을 발휘할 뿐만 아니라 힙합과 팝, 케이팝 등 음악적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한국어와 영어, 일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다국어 능력도 챤미나 만의 강점이다. 덕분에 챤미나는 언어의 벽을 뛰어넘어 3개 국어로 노래를 발매했으며 태연과 예나 등 케이팝 가수들과도 꾸준히 협업해왔다. 2022년 9월에는 한국어곡 ‘돈 고우(Don’t go)’를 발매하며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차별·외모지상주의 등 사회적 문제에 목소리
챤미나의 음악을 관통하는 주제는 ‘차별’이다. 챤미나는 자신의 정체성과 외모에 대한 고민과 불안을 솔직하게 풀어낸 음악으로 공감대를 자아내며 일본 Z세대(Gen Z)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자리 매김했다. 그는 곡 ‘레드(Red)’에서 ‘11살 때 만취한 회사원 두 명이 엄마에게 소리치며 재떨이를 던졌어/너희가 했던 말 기억해?/‘죽어’, ‘당장 너희 나라로 돌아가’’ 등의 가사로 혼혈로 겪었던 차별의 아픔을 음악으로 승화시켰다. 그는 아사히뉴스네트워크(ANN)와의 인터뷰에서 10대 때 “집단 따돌림을 당했다”며 “그럴 때 노래를 만들었다. 공책에 가사를 적을 때만큼은 나만 읽을 수 있으면 되니 한국어든 일본어든 영어든, 어떤 언어를 써도 상관없었다. 공책이 친구가 됐다”고 회고했다.
대표곡 ‘미인(美人)’에서는 외모지상주의와 정면으로 맞서 싸웠다. 챤미나는 데뷔 후 외모와 몸매를 비난하는 댓글에 시달렸다. 미인은 그가 스트레스를 받아 체중이 감소하자 사람들로부터 외모에 대한 칭찬이 이어진 데 모순을 느끼고 만든 곡이다. 챤미나는 “예뻐졌다는 말을 듣고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적으로 야위었는데 왜 예뻐졌다고 하는 것일까”라며 “비슷한 이유로 고통받는 사람을 많이 봤다. 너무 안타까웠다. 이 곡은 다른 사람을 구하고 싶어서 만든 곡”이라고 설명했다. ‘아름다움은 스스로가 정의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이 곡은 챤미나를 일본 음악계를 대표하는 가수 중 한 명으로 만들었다.
지난해 발표한 곡 ‘NG’에서도 ‘너무 가늘어, 너무 뚱뚱해, 너무 커, 너무 작아/죽어죽어죽어, 여자 다 죽는다’라는 가사를 통해 여성에 가해지는 외모적인 압박을 비판했다. 또한 당시 임신 중이었던 챤미나는 만삭의 상태에서 뮤직비디오 촬영을 마쳤을 뿐만 아니라 음악 페스티벌인 섬머소닉 무대에 오르며 화제를 모았다.
성소수자 권리에 대한 지지도 표명했다. 노래 ‘닥터(Doctor)’의 뮤직비디오에 여성 의상을 착용한 남성 댄서들을 등장시킨 이후 ‘힙합은 게이가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비난을 받자 챤미나는 “LGBT를 왜 부정하는가”라며 “‘차별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아 뮤직비디오에 그런 요소를 담아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2020년 흑인 인권 운동 ‘BLM(Black Lives Matter·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등 일본 연예인으로서는 드물게 사회적 문제에 대해 꾸준히 목소리를 내고 있다.
NHK 시사프로그램 ‘클로즈업현대’는 챤미나를 조명하며 “Z세대에게 사랑받는 챤미나의 음악 대부분은 경험에서 비롯됐다. 뿌리와 외모를 향한 차별적인 말들을 가사에 녹여내며 슬픔과 분노를 음악으로 승화했다”며 “고통을 딛고 사회 부조리에 맞서는 모습은 스스로를 부정하며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용기를 준다”고 설명했다.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서로도 변신
챤미나는 젊은 세대의 지지와 음악적 성취를 바탕으로 지난해에는 오디션 프로그램 ‘노 노 걸스’의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프로그램이 공개되기 전부터 “신장과 체중, 나이는 상관없다. 목소리에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이 담겨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강조한 챤미나는 ‘아이돌은 예쁘고 어려야 한다’는 아이돌 산업의 통념에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기존의 오디션 프로그램과 달리 참가자들에게 독설 대신 격려를 아끼지 않고, 탈락한 참가자들에게도 최종 무대에 설 기회를 마련해 주는 그의 모습은 특히 경쟁에 지친 젊은 세대에 위로와 희망을 선사했다.
향후 챤미나는 자신의 투어와 하나의 프로듀싱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그는 최근 빌보드 재팬과의 인터뷰에서 “하나의 경우 향후 5년 뒤의 로드맵까지 만들어 멤버들과 공유했다”며 “무엇보다 공연을 위한 곡이 필요하므로 많은 신곡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