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용혜인 “생활동반자법, 결혼 바깥 여성 삶 지탱할 제도적 기반”

21대 이어 22대 국회에서도 생활동반자법 발의 성립·유지·해소 모든 단계에서 ‘합의’ 우선

2025-09-16     신다인 기자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지난 9월 3일 제22대 국회에서 처음으로 '생활동반자법'을 발의했다. ⓒ용혜인 의원실

대통령실이 ‘비혼 출산’ 제도 개선을 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가족제도 전환 논의가 본격화할지 주목된다. 지난 3일 생활동반자법을 대표 발의한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비혼 출산에 대한 일부 지원책을 넘어, 다양한 가족을 포용할 제도적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생활동반자법은 혼인이나 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성년의 두 사람의 상호 합의에 따라 가족에 준하는 권리와 의무를 인정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생활동반자 관계가 되면 일상가사대리권, 친양자 입양 및 공동 입양 등 권리가 부여되고 사회보험·공공부조·인적공제 등에서도 기존 가족관계와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

“비혼·비혈연 가구, 더 이상 제도 밖에 둘 수 없어”

용 의원은 지난 15일 여성신문과의 서면인터뷰에서 “법적 가족이 아닌 친구, 연인, 동료 등의 동반자와 함께 사는 시민이 120만 명을 돌파했다. 전통적인 가족 개념을 확장하는 것은 이제 가족정책에 있어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설명했다.

실제 통계청에 따르면 비혼·비혈연가구(비친족가구)는 2015년 21만4421가구(47만1859명)에서 지난해 58만413가구(123만2483명)로, 10년 새 3배 가까이 늘었다.

그는 “비친족가구는 서로 돌보며 함께 살아가지만, 혼인·혈연에 국한된 가족제도에 가로막혀 법적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함께 살 집을 구하거나 공동으로 대출을 받을 수 없고, 노후를 준비할 수도 장례의 상주가 되어줄 수도 없다”며 생활동반자법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했다.

지난 8일 '생활동반자법'이 국회 입법예고에 올라간지 9일만에 4만건이 넘는 의견이 달렸다. ⓒ국회 입법예고 홈페이지

법안 통과 가능성은 불투명…“왜곡과 편견 넘어야”

다만 22대 국회에서 법안 통과 가능성은 미지수다. 용 의원은 “아직 논의에 힘이 실리지 못한 상황”이라고 했다. 지난 21대 국회에서는 용 의원의 생활동반자법 발의 이후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각각 연대관계등록제, 등록동거혼제 등의 추진 의사를 밝히며 동반자 관계 제도화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하지만 22대 국회에서는 생활동반자법 발의 이후 별다른 움직임이 없는 상태다.

용 의원은 “21대 국회에서는 ‘가족 해체’ ‘출산율 저하’ 등 근거 없는 왜곡과 폄하가 이어졌다”고 회고하며 “22대 국회에서만큼은 왜곡과 폄하에서 벗어나, 한계에 봉착한 가족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진중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지금 가족제도를 전환하지 않으면 초저출생 인구위기, 돌봄 공백, 사회적 고립 심화 등 급변하는 사회현실에 대응할 수 없다는 절박함으로 논의에 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원민경 여성가족부 장관이 생활동반자법 논의를 진전시키겠다고 밝혔다”며 ”생활동반자법 제정을 통한 가족다양성 보장이 새로운 정부의 핵심적인 가족정책으로 제기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지난달 18일 원 장관은 생활동반자법과 관련해 "실재하는 가족의 현황과 외국 사례, 국민의 기본권 보호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관련 논의가 진전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채무·입양 우려는 ‘오해’

온라인상에서 제기되는 생활동반자법 관련 우려에 대해 용 의원은 “가사로 인한 채무라는 점이 입증돼야만 연대책임이 발생한다”며 “가사 외의 용도로 발생한 채무를 상대방에게 전가할 수는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일각에서는 마치 생활동반자관계만 맺어도 상호 간의 모든 재산을 분할해야 한다는 식의 마타도어가 있다”며 “생활동반자법은 재산 관련 분쟁이 발생하는 것을 사전에 예방하고자 각자에게 속한 재산을 정하고, 최소한의 조치로서 함께 만든 재산만을 분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했다.

민법 829조와 다르게, 생활동반자법 제18조는 생활동반자관계 신고 시나 지속되는 동안에 양자 간 합의에 따라 재산에 대해 따로 규정하도록 하고 있다. 생활동반자법은 성립과 유지, 해소의 전 단계에서 쌍방의 합의를 우선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용 의원은 “이제까지 결혼제도에 문제없이 적용됐던 권리와 의무인 만큼, 생활동반자 관계라고 해서 특수하게 악용될 우려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입양 문제와 관련해 그는 “비혼 가구의 입양 절차가 혼인 가구보다 허술하다는 주장은 편견에 불과하다”고 잘라 말했다. “입양은 법에 따라 동일하고 체계적인 심사 과정을 거친다. 중요한 것은 입양 승인의 기준이 가족 형태가 아닌, 아동에게 책임 있고 안정적인 양육환경을 제공할 수 있느냐는 점”이라고 했다.

비혼 노년 여성 공동체 ‘노루목향기’ 할머니들의 모습. 왼쪽부터 이혜옥, 심재식, 이경옥 씨. ⓒ유튜브 ‘경기도여성비전센터’ 채널 캡쳐

실제, 입양은 민법과 국내입양특별법의 적용을 받아 법령에 따른 체계적인 절차를 거친다. 이미 2006년 12월 30일, 국내입양특별법 시행규칙 개정으로 1인가구의 입양이 허용되고 있다.

생활동반자법이 제정되면 특히 여성들의 삶에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내다봤다. 용 의원은 “비혼을 선택한 여성들이 친구와 함께 살거나 비혼 출산을 결심하는 등 대안적인 가족을 꾸리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며 “생활동반자법은 결혼이 아닌 방식으로 서로 돌보며 살아가려고 하는 여성들이 법과 제도의 보호를 받는 기반이 될 것”이라고 했다.

또 “전통적인 성역할과 고정관념에 치중하지 않는 다양한 가족을 제도적으로 보장해, 평등한 가족문화를 만드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