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을 넘어, 치매와 함께 살아가기
『치매에 걸린 뇌과학자(A Tattoo on My Brain)』 대니얼 깁스 박사 지음, 더퀘스트 펴냄
치매는 더 이상 타인의 이야기가 아닌 누구에게나 다가올 수 있는 현실이 됐다. 내가 치매에 대한 두려움을 가장 크게 경험한 것은 지인을 통해서다. 지인의 어머니는 집에 잘 계시다가도 어느새 밖으로 나가 사라지곤 하셨다. 어느 날 집 앞에서 운전을 하며 지나가는 그를 만났다. 위치추적으로 찾은 어머니는 새벽에 나가 꽤 거리가 있는 산 어귀를 걸어 다니고 계셨고, 그는 아내와 함께 그곳으로 가는 중이었다.
저자 대니얼 깁스는 25년 넘게 알츠하이머 환자를 돌본 신경과학자이자, 자신이 알츠하이머 초기 진단을 받은 환자다. 『치매에 걸린 뇌과학자(A Tattoo on My Brain)』는 그가 환자와 의사의 경계에서 치매라는 병을 관찰하고 기록한 책으로 뇌과학적 지식과 환자로서의 체험이 잘 드러난 기록이다. 과학적 사실을 다루고 있지만 개인의 일상과 함께 생활 언어로 잘 녹여내고 있어서 단숨에 읽을 수 있었다.
그는 50대 중반에 장미향을 맡지 못했던 순간과 있지도 않은 빵 냄새를 맡았던 후각 이상 증세를 시작으로 알츠하이머 초기 진단을 받는다. 자신의 뇌 MRI에 ‘문신(tattoo)’처럼 새겨진 알츠하이머의 흔적을 발견하고, 의사로서 환자를 진단하던 손이, 이제 환자로서 진단지를 받아 드는 순간이 된 것을 깨닫게 된다. 그는 자신의 치매 초기 증상을 가감 없이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작은 실수들이다. 예를 들어 이름이 금세 떠오르지 않는다거나, 낯선 길에서 당황하고, 대화를 이어가다 갑자기 공백이 생기는 경험들 말이다. 그러나 저자는 유전적 영향을 고려하였고 이것을 알츠하이머의 시작으로 받아들였다.
환자로서의 충격과 두려움이 긴장감을 주면서도 의사로서 객관성을 유지하며 과학적 진실을 전하고 있다. 저자의 이러한 이중적 위치가 이 책을 특별하게 만든다. 단순한 의학 정보가 아니라 살아 있는 증언을 접하며, 치매가 어떻게 한 사람의 기억과 일상을 흔드는지, 또 아내 로이스를 포함하여 가족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를 깊이 이해하게 된다.
나와 같은 상태의 환자들에게 의사로서 제안했을 법한 방법을 나에게 자가 처방했다. 첫째, 운동량을 늘리고 특히 유산소 운동의 비중을 더 높였다. 둘째, 뇌 건강에 방점을 둔 마인드(신경퇴행 지연을 위한 지중해식-대시 개입법 mediterranean-DASH intervention for neurodegenerative delay, MIND) 식단을 실천했다. 또한 사회적 활동성과 정신적 자극을 유지해 줄 일상 활동, 예를 들어 매일 십자말풀이 1~2회, 한 달에 책 6~7권 읽기 등으로 이루어진 관리전략을 세웠다. 읽은 것을 며칠만 지나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지만 로이스와 책에 관해 이야기를 하면 기억을 다지는 데 도움이 되었다. (108쪽)
저자는 치매를 개인사가 아닌 가족과 사회의 공동의 의제로 끌어내고 있다. 삶의 반경이 10여 년 동안 서서히 좁아졌지만 치매와 함께하는 다른 삶의 지평을 오히려 넓혀 나간 것이다. 치매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겠지만, 식습관이나 운동, 사회적 교류를 통해 진행을 늦출 수 있다는 점을 자신의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알려주고 있다. 치매를 피할 수 없는 두려움이 아닌 충분히 준비할 수 있는 여정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책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 ‘저속노화’가 화두다. 이를 식단이나 운동으로만 이해하지 말고 건강하게 나이 들기 위한 삶의 선순환으로 보았으면 좋겠다. 치매를 늦추고 내 몸과 삶의 주도권을 회복할 수 있는 생활 속 작은 실천들을 만들고 바로 시작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