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여성박물관, 연대·협력으로 여성 현안 해결 모색하는 핵심기관
-국제여성박물관협회(IAWM) 제7차 세계여성박물관대회 방문기
지난 8월 24일부터 29일까지 이탈리아 북부도시 메라노(Merano/Meran)에서 국제여성박물관협회가 주관하는 제7차 세계여성박물관대회가 개최됐다. 세계 각 대륙의 참가자들이 모여 여성박물관의 현안과 미래를 논의하는 이 축제는 2008년에 처음으로 메라노에서 시작되어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메라노는 현재 ‘유로지역(Euroregion)’으로 국경 간 협력지역이 되어 이탈리아어와 독일어가 공용어로 통용되는 평화로운 휴양도시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의 접경지역에 위치하여 강력한 제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냈던 사람들의 예사롭지 않은 경험이 점철된 곳이다. 즉, 20세기의 양차 세계대전과 간전기 파시즘의 영향, 민족주의와 분리주의의 갈등, 그리하여 유럽연합(EU)의 탄생 직전까지 정치적, 이념적 소용돌이 속에서 엄청난 변화를 겪었으며, 마침내 초국적 봉합이 이루어진 곳이다. 그리고 2025년 여름, 메라노는 다시 여성박물관의 연대와 협력의 가치를 재확인하는 현장이 되었다.
1980년대 초부터 유럽과 북미에서 여성의 역사, 문화, 예술, 그리고 그 역할과 활동에 집중하는 여성박물관들이 설립되기 시작했다. 개별적으로 활동한 여성박물관들은 2008년 메라노에 모여 비로소 국제적 연대 속에서 결속하자는 기치를 내걸고 국제적 네트워크로서 국제여성박물관협회를 결성하였다. 그 후 2차(2009년 독일 본), 3차(2010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4차(2012년 호주 엘링스 스프링스), 5차(2016년 멕시코 멕시코시티), 6차(2021년 오스트리아 히티사우), 그리고 7차 대회에 이른다. 그동안 여성박물관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2012년부터 4년마다 개최하는 세계대회, 그리고 사안의 중요성에 따라 열리는 대륙별 회의, EU프로젝트 참여, 여성박물관 실천연대 활동, 국제박물관위원회(ICOM)와의 협력 등 공식 활동이 구축되었다.
제7차 세계대회는 3박 4일의 워크숍, 2박 3일의 총회, 도시 투어, 여성박물관 포스터전, 특별강연, 리셉션. 신임이사회 회의로 구성되었다. 총회에서는 예산과 재정 보고, 협회의 정관수정, 여성박물관의 공동협력 사업 논의 등 주로 여성박물관의 현안을 다루며, 2029년까지 활동할 새로운 임원진을 선출했다.
2025년 메라노대회는 ‘페미니스트 상상연구 네트워크(Feminist Imaginary Research Network, FIRN)’와 결합해 여성박물관의 이론과 실재에서 발전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대회였다고 평가할 만하다. 이 조직은 2010년경부터 캐나다 빅토리아대학의 달린 클로버(Darlene Clover) 교수가 주도하여, 창의적이고 예술적인 접근을 통해 성인교육, 연구, 그리고 박물관·도서관·문화유산공간·대학·지역사회에서의 큐레이션을 실천하며, 성평등 정의를 새롭게 구축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제7차 세계대회와 결합하여 진행한 이번 워크숍의 주제는 ‘저항과 영향력의 지형도: 젠더 폭력에 대응하는 박물관의 페미니스트 교육 및 제도적 전략’이다. 사회제도, 법, 정책에 뿌리 깊게 박혀있는 구조적인 문제로서 젠더 기반의 폭력이 전 세계적으로 여전히 심각하다는 점에 주목해, 3박 4일의 워크숍에서는 박물관이 이에 대처할 수 있는 지식을 공유하고 공동으로 구축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특히 젊은 세대 연구자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발표가 돋보였는데, 각 대륙 참가자들의 다양한 경험은 현장에서 직접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이 포함되었다는 점에서 생산적이다. 한편, 필자는 총회에 앞서 ‘한국 역사 속 여성의 저항과 해방’을 주제로 진행한 조각보 공동제작프로젝트를 주제로 발표하였으며, 이 조각보는 메라노여성박물관에 전시되어 일반 시민에게 개방됐다.
요컨대, 글로벌 차원에서 보자면 여성박물관은 각 지역사회의 다양한 여성 현안을 제시하고 연대와 협력을 통해 해결을 모색하는 핵심기관이 되고 있다. 필자는 이번에 엘케 크라스니(Elke Krasny)의 입장, 즉 인류세(Anthropocene) 기관으로서 현대박물관에 메스를 가하고, 탈식민주의를 성찰하며, 지구적 문화적 상상력을 돌볼 수 있는 장소로서의 여성박물관 그리고 각 대륙에서 연대하며 서로 다른 페미니즘의 생태를 만들어가는 여성박물관의 고유한 역할을 강조했던 점이 인상적이었다. 한국의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여성박물관의 이론화도 가능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5년 현재 한국에서는 국립여성사전시관을 확대이전하는 방식의 국립여성사박물관 건립이 진행 중이다. 앞으로 세계여성박물관들과의 연대와 협력을 확대하는 가운데 여성박물관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 수 있다는 꿈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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