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논단]돌봄노동자들은 왜 쉬지 못하나
12시간 노동에도 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요양보호사들이다. 2017년, 요양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던 시절을 떠올린다. 요양보호사들에게 휴게실은 존재하지 않았다. 야간근무 시 복도의 소파에서 잠시 눈을 붙이거나, 병실의 좁은 간이침대에 몸을 눕히는 것이 고작이었다. 관행상 네 시간의 휴식 시간이 주어졌지만, 그것은 결코 진짜 쉼이 될 수 없었다. 몸은 누워 있어도 마음은 늘 환자 곁을 떠나지 못했고, 불시에 오는 호출로 쉬는 동안에도 매번 뛰어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탈의실에서 눈을 붙인다. 탈의를 하는 사람과 물품을 가지러 드나드는 발걸음 속에서 그곳은 결코 쉴 수 있는 공간이 되지 못했다.
이 경험은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보건사회연구원 조사(2021)에 따르면 요양보호사의 72%는 휴게시간에 제대로 쉬지 못한다고 답했다. 한국노총 여성연구소 자료(2022)에서는 요양보호사의 67%가 근골격계 질환을 겪고 있으며, 그 주요 원인으로 과중한 노동과 휴게시설의 부재가 지목되었다. 휴식의 부재는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가사·돌봄 부담과 연결되며 여성에게 더 큰 부담이 되고 있다. 결국 휴게실이 없는 현실은 여성 노동자의 건강권과 생명권, 더 나아가 인간다운 노동의 권리를 위협하는 구조적 문제이다.
돌봄노동의 구조적 문제는 노동자에게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쉼’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인간의 삶을 지탱하는 필수 노동임에도 불구하고 돌봄은 오랫동안 여성의 일로 간주되어 무급과 유급에 상관없이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 특히 요양보호사는 중·고령 여성의 일자리라는 인식과 함께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잘못된 의식 속에서 하찮게 여겨지고, 직업적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한 채 열악한 환경에 머무르게 되었다. 이는 곧 돌봄노동을 사회적 책임이 아닌 개인의 희생으로 전가하는 구조적 모순으로 이어지며, 돌봄노동자의 휴식권 부재와 열악한 노동조건을 심화시키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한다.
법은 분명히 말하고 있다.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은 휴게시간의 명시와 휴게시설의 설치를 규정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형식적 제도가 아니라 노동자가 실제로 몸과 마음을 쉴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함께 보장받아야 하는 권리이다. 하지만 돌봄노동자의 현실은 여전히 법의 취지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2022년 휴게시설 설치율이 80.9%에 달한다고 발표했지만, 이는 평균치일 뿐이다. 어떤 노동자의 쉴 권리는 보장되는 반면, 청소·돌봄·요양·배달 등과 같이 여성과 비정규직 노동자가 집중된 취약 직종에서는 여전히 휴게시설 부재가 심각하다. 특히 돌봄 현장의 여성 노동자들은 구체적인 통계에서도 배제된 채 ‘그림자 노동’으로 대우받고 있다. 이는 곧 법적 권리와 현실 사이의 괴리를 보여주며, 돌봄노동자가 가장 기본적인 휴식권에서조차 소외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돌봄노동자들의 휴식권 보장은 선택이 아니라 최소한의 조건이다. 법과 제도가 선언에 머물지 않도록, 돌봄노동자를 위한 실질적 휴게시설 마련과 근로환경 개선, 그리고 돌봄의 가치를 재구성하는 정책적 전환이 시급하다. 쉼 없는 돌봄은 불가능하다. 이들의 쉼은 곧 우리 사회가 돌봄노동을 어떻게 대우하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돌봄노동자의 권리를 지키는 일이 곧 우리 모두의 삶을 지키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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