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는 여성가족부… 성평등 정책 주무부처로 기대감 높아진다

원민경 “성평등 사회 실현·여성 안전 위해 최선” “차별금지법 필요…강간죄 개정, 방안 찾겠다” 여성단체들, 원민경 후보자 일제히 환영

2025-08-21     김세원, 신다인 기자
18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에 마련된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 첫 출근 기자회견에서 원민경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손상민 사진기자

18개월간 장관 공석 상태였던 여성가족부를 이끌어갈 새 수장이 임명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여성인권 법률 전문가로 꼽히는 원민경 변호사를 여가부 장관 후보자로 내정했다. 이와 함께 대통령 직속 국정기획위원회는 국민보고대회를 통해 여가부를 성평등가족부로 확대·개편한다고 발표했다. 여가부 폐지를 천명했던 윤석열 정권 하에서 ‘식물부처’로 전락해버린 여가부가 새 장관 임명과 정부의 조직개편으로 부활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원 후보자는 지난 18일 서울 서대문구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며 “아동·청소년의 건강한 성장과 다양한 가족 지원, 동등한 기회와 권리가 보장되는 성평등 사회 실현, 여성의 안전과 건강권 보장이라는 국정 과제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소감을 밝혔다. 

앞서 국정기획위는 ‘기본이 튼튼한 사회’라는 국정목표의 전략 중 하나로 ‘내 삶에 기회를 여는 성평등’을 제시했다. 국정기획위는 123대 국정과제 중 여가부와 관련된 과제로 △아동·청소년의 건강한 성장 및 다양한 가족 지원 △기회와 권리가 보장되는 성평등 사회 △여성의 안전과 건강권 보장 등을 포함시켰다.

원 후보자는 “성평등가족부 확대·개편을 통해 성평등 정책 총괄 조정과 성평등 거버넌스 기능을 강화하고, 부처 위상과 정책을 확대하는 힘 있는 성평등가족부를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원 후보자를 두고 여가부 장관 적임자라는 평가가 이어진다. 20여 년간 현장에서 여성과 사회적 약자를 위해 헌신해온 그의 이력이 장관으로서의 전문성과 젠더 감수성을 입증한다는 평가다. 원 후보자는 여성인권단체와 연대하며 피해생존자 곁을 지켜온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한 언론 인터뷰에 따르면 그는 사법시험에 합격한 이후 여성의전화에서 가정폭력 피해여성들을 위해 법률상담을 하던 중 여성인권 문제에 눈을 뜨게 됐다. 2005년에는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미아리텍사스) 화재 참사 당시 성매매업소에 감금됐다 사망한 성매매 여성들의 손해배상 소송을 대리했다. 또한 ‘텔레그램 성착취 피해자 변호인단’으로도 활동했다.

이력에 더해 여성계 핵심 의제에 유보적인 태도를 취했던 강선우 전 후보자와 달리 원 후보자가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과 강간죄 개정(비동의 간강죄 도입)에 대해 진일보한 입장을 표명하면서 그를 환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원 후보자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 “필요성과 의미가 매우 크다”고 말했다. 강간죄 개정에 대해서는 “현장 전문가, 당사자, 법무부와 다양한 의견을 논의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을 만들어 최선의 방안을 찾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18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에 마련된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 첫 출근 기자회견을 마친 원민경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무릎을 굽히고 기자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손상민 사진기자

여성단체들은 일제히 원 후보자의 지명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장관에 원민경 후보자를 지명한 것은 정부의 새로운 의지로 여겨진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최란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원 후보자에 대해 “성폭력·가정폭력·성매매 등 여성폭력과 관련해 법률적 지원부터 현장 활동까지 적극적으로 참여하시던 분이었다. 토론회와 기자회견 외 급박하게 마련된 자리에도 가장 먼저 와 계시던 분으로, 현장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며 “원 후보자가 장관직을 마칠 즈음 우리 사회가 성평등한 방향으로 진일보해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도 “원민경 후보자가 현장 경험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성평등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실현해 나갈 것이라 믿는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하영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공동대표는 원 후보자에 대해 “평소 여성폭력 문제에 관심이 많고, 폭력 피해자들을 열정적으로 지원했을 뿐만 아니라 피해자들에 대해 큰 애정을 갖고 계셨던 분”이라며 “여가부 장관으로 업무를 잘 수행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여성폭력 중에서도 성매매는 여성폭력으로 인정되지 않는 기류가 강하고, 소외되는 경향이 있다”며 “현재 여성가족부 내에서 폭력예방교육과가 성매매 대응을 맡고 있다. 여가부가 성평등가족부로 확대돼 부처 내에서 성매매 대응과 관련해 별도의 팀이 구성되는 등 해당 사안이 중요하게 다뤄지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여성인권위원장을 지낸 박수진 법무법인 혜석 대표변호사는 “원민경 후보자의 현장 경험과 전문성은 성매매·성폭력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여성 노동과 여성 빈곤, 가족 문제, 재생산 건강권 등과 관련해서도 활동하며 전문성을 쌓아오신 분”이라며 “여성 이슈 전반을 아우르는 경험과 전문성을 갖춘 변호사”라고 말했다.

이 밖에 익명을 요구한 한 여성단체 대표는 “강선우 전 후보자를 비판했던 이유는 성평등 의제에 대해 명확한 의지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원 후보자의 경우 그의 삶을 통해 젠더기반 폭력 문제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갖고, 어떻게 대응해 왔는지 확인할 수 있다. 성평등 의제와 젠더기반 폭력에 대한 실천 의지가 느껴진다는 점에서 여성가족부 장관에 적합하다”고 평했다.

정치권에서도 진보진영을 중심으로 원 후보자를 향해 기대하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강 전 후보자의 사퇴를 촉구했던 권영국 정의당 대표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원 후보자가) 여성계 핵심의제를 정면으로 언급한 것은 고무적”이라고 적었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정춘생 조국혁신당 의원도 “원 후보자의 입장을 지지한다”며 “차별금지법과 비동의 강간죄를 ‘다음에’가 아니라 ‘지금’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밖에 손솔 진보당 의원은 “원 후보자의 입장이 22대 국회에서도, 이재명 정부에서도 ‘차별금지법 제정’ 논의를 앞당기는 하나의 불씨가 되길 기대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