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여성들] 비너스의 ‘서울’ - 여성들이 만든 도시의 얼굴

[달리는 여성들] Chapter 2. 비너스의 ‘서울’ 여성들이 만든 도시의 얼굴

2025-07-24     글 김선민

서울은 누구에게나 같은 배경이 아니다. 누군가에겐 동경이었고, 누군가에겐 도전이었으며, 또 누군가에겐 익숙함 속 잊고 살던 풍경 이었다. 서울비너스의 세 멤버, 혜린·진주·은영은 각기 다른 결로 이 도시에 닿았고, 지금은 함께 이도시를 달린다. 그들에게 서울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기억과 감정이 포개진 장소다. 멈추지 않는 그 걸음 위에서, 여전히 살아 있는 도시다.

서울비너스(Seoul Venus), (앞쪽부터) 최진주, 이혜린, 김은영 ⓒ이솔네

혜린의 서울 - “도시를 꿈꾸던 소녀, 서울에서 달리다.” 

논산에서 자란 혜린에게 서울은 언제나 ‘큰물’이었다. 전시를 보러, 미술 재료를 사러 오던 이도시는 기회와 가능성, 그리고 노력 끝에 도달할 수 있는 무대였다. ‘하고 싶으면 바로 하는’ 엄마의 기억과 혼자 노는 데 익숙했던 둘째 딸 시절을 지나, UX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서울에 정착했을 때, 혜린은 어린 시절 꿈꾸던 그 중심에 서 있었다.

그러다 캐나다 밴쿠버에서 처음 만난 러닝은 혜린의 삶과 마음을 조금씩 바꾸기 시작했다. 건강해졌고, 생각이 또렷해졌고, 인생이 선명해졌다. 다시 돌아온 서울에서도 반포 한강, 잠수교 같은 자신만의 루트를 만들며 서울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서울 최고! 이 좋은 도시에서 내가 뛰고 있다니.” 한강을 달리는 자신의 모습에서, 서울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생생한 감각이 밀려왔다.  “한강을 뛰는 나를 보면서, 진짜 ‘나 서울 잘 살고 있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진주의 서울 - “도시와 연결된 나, 서울에서 길을 내다.” 

부산 출신인 진주에게 서울은 처음엔 낯설고 복잡한 도시였다. 직장 때문에 올라온 도시에서 의지할 수 있는 친언니가 곁에 있었고, 서울을 걷고 누리며 점차 이 도시에 익숙해졌다. “서울은 바쁘고 복잡하지만, 이상하게도 다양한 도전을 해보게끔 부추기는 도시예요.” 서울의 문화와 풍경, 매번 다른 동네의 공기. 진주는 그 무대를 가장 깊이 체감하는 방식으로 ‘달리기’를 선택했다.

진주가 가장 사랑하는 루트는 동작대교. 한강의 바람을 가르며 달릴 때면, 도시에 안겨 달리고 있는 기분이 든다. 삶이 흔들릴 때마다 다시 중심을 찾게 해주는 장소이다. “서울의 상징들을 바라보며 동작대교를 달리면, 마치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아요.” 진주는 서울에서 자신만의 루트를 만들고, 그 위를 선택하며 달린다. 도시와 연결되는 선명한 감각이, 러닝을 계속하게 만드는 힘이 된다. 

은영의 서울 - “살아 있는 걸 느끼게 하는 서울? 도시와 나의 결” 

어릴 적부터 서울에서 자라온 은영에게 이 도시는 너무나 익숙한 배경이었다. 하지만 러닝을 시작한 뒤, 그 배경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똑같은 길인데 계절에 따라 다르게 보여요. 서울은 살아 있는 걸 느끼게 해주는 도시예요.” 중랑천, 서울숲, 한강을 잇는 자신만의 루트 위에서, 하늘을 보고 노을을 바라보며, 매번 다른 서울과, 그리고 매번 다른 자신을 마주한다.

은영에게 러닝은 단순한 운동을 넘어 ‘나를 표현하는 감각’이기도 하다.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안에 어우러지는 나답게 보이기 위해서죠.” 장소와 목적, 팀의 무드에 따라 그날의 ‘나’를 고르는 일은 은영에겐 감각적 응답이자, 일상에 대한 예의다.

지속가능한 속도, 누구나 숨을 나눌 수 있는 거리---그것이 그가 꿈꾸는 서울, 그리고 러닝이다. 

세 여성의 시간, 감각, 리듬이 깃든 서울은, 지금의 그들을 만들어낸 배경이자, 앞으로를 이끄는 동력이다. 누군가는 그곳에서 꿈을 꾸고, 누군가는 삶을 다잡고, 또 누군가는 일상의 감각을 회복해냈다.

서울을 달리는 일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 닿기 위한 여정’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발걸음은 오늘도, 한강을 따라, 다리 위를 지나,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길 위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