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위안부’ 박유하, 명예훼손 무죄 확정 이어 출판금지 가처분 취소

일본군‘위안부’ 생존자들 분노케 한 논쟁적 저서 10여 년 만에 온전한 출간 가능해져 법원 “학문적 의견, 명예훼손 판단 어려워” 박 교수, 손배 책임 벗고 국가 보상도 받아

2025-07-17     이세아 기자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던 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가 2024년 4월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파기환송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소감을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명예훼손 논란으로 일부 내용이 삭제됐던 박유하(68) 세종대 명예교수의 저서 『제국의 위안부』가 온전한 형태로 출간될 수 있게 됐다. 명예훼손 무죄가 확정되고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에서 벗어난 박 교수는 국가 보상도 받는다.

서울동부지법 민사합의21부는 2015년 2월 내려진 도서출판 등 금지 가처분 결정을 지난 15일 취소했다. 재판부는 가처분 취소 결정문에서 “(책의 내용은) 학문적 주장 내지 의견으로 평가함이 타당하다”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점이 충분히 소명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박유하 『제국의 위안부』(2013, 뿌리와이파리) ⓒ뿌리와이파리

박 교수는 2013년 출간된 『제국의 위안부』 관련 주요 법적 분쟁들에서 최근 연이어 승소했다. 지난 1월22일 서울고등법원 민사12-1부는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 12명이 박 교수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1심은 박 교수에게 9000만원 배상을 명했는데, 이를 뒤집고 배상 책임이 없다고 봤다.

2심 재판부는 “피고가 학문 분야에서 통상적으로 용인되는 범위를 심각하게 벗어난 부정행위를 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도서 저술 목적이 ‘한일 양국의 상호 신뢰 구축을 통한 화해’라고 밝혀져, 피고가 원고들의 인격권을 침해할 의도가 있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또 “피고의 견해가 다수의 지지를 받지 못할 수는 있지만, 이는 학계와 사회의 평가 및 토론 과정을 통해 검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

박 교수는 명예훼손 혐의 무죄 확정에 따른 국가 보상도 받는다. 지난 3일 서울고법은 박 교수에게 형사보상금 875만원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박 교수는 지난 16일 페이스북을 통해 “10년 넘는 시간을 한결같이 지지·응원해 주시고 지켜봐 주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며 “이제야 군데군데 찢겼던 제 책도 온전한 모습을 되찾을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2014년 7월4일 오후 서울 세종대 정문 앞에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제국의 위안부』저자 박유하 세종대 교수의 파면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연합뉴스
저서 『제국의 위안부』에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등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던 박유하 세종대 교수가 2017년 1월25일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날 ‘위안부’ 피해생존자인 이용수 할머니와 이옥선 할머니가 법정 앞에서 침통해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국의 위안부』는 2013년 출간 당시부터 격렬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박 교수는 책에서 일본군‘위안부’가 “일본군과 동지적 관계”였으며 “근본적으로 매춘의 틀 안에 있던 여성들”이라고 서술했고, 조선인 ‘위안부’에 대한 일본의 강제연행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는 일본의 법적 책임을 부인하고, 전시성노예제를 성매매 혹은 성노동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매우 문제적인 인식을 보여줬다는 비판을 받았다. 2014년 6월 ‘위안부’ 피해자 9명이 박 교수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고, 2015년 2월 법원은 책의 34곳 삭제를 명하는 가처분 결정을 내렸다.

그해 11월 검찰이 박 교수를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해 2017년 1심 무죄, 2심 벌금 1000만원의 유죄 판결이 나왔으나, 대법원이 2023년 10월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해 2024년 4월 파기환송심에서 최종 무죄가 확정됐다.

민사소송에서도 1심은 박 교수에게 9000만원 배상을 명했으나, 항소심은 이를 뒤집고 “피고의 견해는 학계와 사회의 평가 및 토론 과정을 통해 검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박 교수의 배상 책임이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박유하 세종대 교수가 2022년 8월31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제국의 위안부』소송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 교수는 “이번 소송이 ‘위안부’ 할머니가 아니라 (‘위안부’ 피해자 지원단체 등) 주변인들이 일으킨 소송”이라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제국의 위안부』에 대해 ‘위안부’ 문제 연구자들과 활동가들은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2015년 12월2일 윤정옥 전 이화여대 교수, 정진성 서울대 교수, 양현아 서울대 교수, 박노자 오슬로대 교수 등 60명은 성명을 통해 “원칙적으로 연구자 저작에 대해 법정에서 형사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단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면서도 “『제국의 위안부』는 사실관계, 논점의 이해, 논거의 제시, 서술의 균형, 논리의 일관성 등 여러 측면에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책”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핵심은 일본이라는 국가의 책임인데도 『제국의 위안부』는 책임의 주체가 ‘업자’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고 지적했다. 또 “충분한 논거의 제시 없이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이 ‘자발적으로 간 매춘부’였고 ‘일본제국에 대한 애국’을 위해 ‘군인과 동지적인 관계’에 있었다고 규정하는 것은 피해자들에게 또 하나의 커다란 아픔을 주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학문과 표현의 자유’를 앞세워 박 교수를 지지한 지식인들도 있었다. 김철 연세대 교수, 김규항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장정일 작가 등 194명은 위 성명이 발표된 날 별도 성명을 통해 “한 학자가 내놓은 주장의 옳고 그름을 사법적 판단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발상은 너무나 시대착오적”이라며 “사법부가 나서서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여론을 국가의 통제 하에 두는 것은 반민주적 관례를 낳을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