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광주광역시의회 신수정 의장, “정치는 삶을 바꾸는 힘”
광주광역시의회 34년만의 최초 여성 의장 광역의회 여성비율 최고...43.5% 지방의회 우수사례 경진대회 6년 연속 수상
전국의 여성 지방의회 의장은 총 40명, 16.4%에 불과하다. 여전히 적은 수치지만, 이들이 보여주는 정치의 결은 분명히 다르다. 여성 리더가 이끄는 지방의회는 무엇이, 어떻게 다를까. 유리천장을 넘어선 여성 정치인들이 현장에서 써내려가는 생활정치의 실험을 조명한다. <편집자 주>
전국 광역 단위에서 여성의원 비율이 가장 높은 곳, 바로 광주광역시의회다. 제9대 시의회는 전체 23명 중 16명이 초선으로, 젊은 정치세대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이 가운데 여성의원은 총 10명으로 전체의 43.5%를 차지한다. 주목할 만한 점은 전체 여성 의원 10명 중 절반인 5명이 의장, 부의장, 상임위원장 등 핵심 보직을 맡고 있다는 사실이다.
신수정 의장은 광주시의회 34년 역사상 처음으로 의장직에 오른 인물이다. 그와 함께 채은지 부의장, 정다은 의회운영위원장, 최지현 환경복지위원장, 명진 교육문화위원장이 시의회 주요 보직을 맡으며 여성 정치인이 리더십을 발휘할 수 구조를 만들어냈다.
부의장 1석, 상임위원장 3석 여성...여성의원 10명 중 5명 핵심 보직
이 의원들은 각기 다른 분야의 전문성을 갖춘 인재들이다. 신수정 의장(52)은 사회복지사 출신으로, 기초와 광역의회를 합쳐 19년 경력의 정치인이다. 다양한 입법 경험과 현장 활동을 바탕으로 광주시의회를 안정감 있게 이끌고 있다.
채은지 부의장(39·초선)은 노동법 분야 노무사 출신으로 노동 현안에 밝고 현장 경험이 풍부하다. 정다은 의회운영위원장(39·초선)은 인권과 아동·청소년 사건을 주로 맡아온 공익변론 경력의 변호사로, 법률 전문성을 바탕으로 의정에 참여하고 있다.
최지현 환경복지위원장(52·초선)은 환경과 사회정의 관련 시민운동 현장에서 다양한 기획을 총괄했고, 지역 사회 의제를 정책으로 풀어내는 데 강점이 있다. 명진 교육문화위원장(57·초선)은 심리학과 국제학을 전공하고 청년정책 연구 활동을 해온 정책 전문가로, 의회 내에서 교육과 문화 이슈에 대한 분석력이 돋보인다.
청소년·은둔형외톨이 정책 전국 모델로
신 의장은 기초의회 3선, 광역의회 재선을 거치는 동안 특히 청소년 정책과 은둔형외톨이 지원 정책에서 큰 성과를 거뒀다. 그는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청소년의 안전과 권리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후 관련 입법에 힘썼다.
광주북구 의원 시절 청소년들과 직접 조례안을 기획해 ‘북구 어린이·청소년 친화도시 조성 조례’를 주민청구 방식으로 제정했다. 이는 지방자치 역사상 청소년이 주체가 된 조례 제정의 대표 사례로 남아 있다.
또한 광주시 ‘청소년 기본 조례’, ‘청소년활동 진흥 조례’, ‘청소년복지 지원 조례’, ‘청소년지도자 처우개선 조례’ 4개 조례를 전국 최초로 일괄 제정했다. 이 조례들은 청소년 정책을 유기적으로 연계·지원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광주시 은둔형외톨이 지원조례’는 전국 최초로 은둔형외톨이 지원센터를 설립할 수 있는 근거가 됐다. 이후 전국 213개 지자체로 유사 조례가 확산됐다. 보건복지부는 이를 바탕으로 2024년부터 전국 4개 권역에 ‘청년미래센터’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공공기관 여성 이사 의무화 조례 개정
광주시의회는 성인지 감수성을 반영한 조례와 정책을 다수 추진해왔다. 2023년 양성평등주간을 맞아 시 산하 주요 공공기관에 여성이사를 의무적으로 선임하도록 하는 조례 5건을 개정했다.
명진·정다은·박미정·김용임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이 조례안들은 광주시 산하 공공기관 운영 등에 최소 1명 이상의 여성이사를 포함하도록 규정했다. 이는 당연직을 제외한 이사진 구성에서 특정 성으로만 채우는 것을 금지하는 강제 조항으로, 공공기관 운영의 여성 대표성을 제도화한 사례다.
이외에도 광주시의회는 성희롱·성폭력 예방 교육을 제도화해 공공기관 내 성인지 감수성을 높였다. 또 돌봄 노동자 지원 조례, 통합돌봄 조례 제정 등 다양한 생활 밀착형 조례를 마련했다.
광주시의회는 올해 광주 ‘시민의 날’ 본행사에서 처음으로 시민참여형 홍보부스를 설치해 의정활동을 소개하고 시민 의견을 들었다. 의정컨퍼런스도 개최해 시민과 전문가, 관계자가 함께 정책을 논의했다. 신 의장은 이를 정례화해 시민 의견을 반영하는 창구로 삼겠다는 계획이다.
또 시의회는 다양한 정책 토론회와 헌법 특강 등을 열었다. 초선·재선 의원들이 주도하는 연구모임을 통해 AI·반도체, 도시계획 등 지역 전략과제에 대한 정책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전국 지방의회 우수사례 경진대회 ‘대상’ 수상
신 의장은 “여성의 감수성과 공감, 섬세함은 시민과 소통하는 데 큰 자산”이라고 말한다. 그는 의회 운영 방향으로 ‘시민의 눈으로, 시민과 함께’라는 철학을 제시하며 제도적 실천으로 이어가고 있다.
광주시의회는 2024년 행정안전부 주관 제34회 전국 지방의회 우수사례 경진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6년 연속 수상이라는 성과도 이어가며 제도 혁신과 시민참여 확대 분야에서 전국 지방의회 우수 사례로 주목받았다.
또한 입법기능 강화를 위해 기존에는 광주시가 수행하던 조례 사후영향평가 권한을 시의회로 이관했다. 이를 통해 시의회는 입법의 실효성을 점검하고 조례가 실제로 시민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평가할 수 있게 됐다. 입법평가위원회를 신설해 전문가 중심의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평가 체계를 마련했다.
엄마이자 정치인… 유리천장 넘어선 삶의 균형
신 의장은 가사와 육아, 돌봄의 책임까지 함께 짊어지다 보니, “정치인이라는 사회적 역할과 엄마라는 가정 내 역할 사이에서 늘 치열하게 고민했다”고 털어놨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자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할 때라고 말했다. 어린 자녀를 두고 정치 활동을 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다. 늦은 저녁이나 주말에도 주민의 봉사자라는 마음으로 집을 나설 때마다 ‘나는 좋은 엄마인가, 좋은 정치인인가’를 스스로에게 물었다고 한다.
그런 고민을 극복하게 한 건 결국 가족의 이해와 지지였다. 신 의장은 자신의 정치 활동이 “내 가족만이 아니라 더 많은 가정의 삶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살아왔다. 가족과의 시간은 양보다 질로 채우기 위해 노력했다고 전했다. 또한 “내가 만드는 정책이 다른 엄마와 아이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를 늘 고민하며 정치를 해왔다고 덧붙였다.
그는 가족을 “나를 붙잡아준 버팀목이자, 흔들리지 않게 중심을 잡아준 존재”로 표현했다. “그 사랑과 지지를 다시 시민에게 돌려드리는 것이 정치를 계속 이어가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여성의 시선과 경험이 반영돼야 온전한 정책”
“정치는 시민의 삶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키는 힘”이라고 말하는 신 의장은 “현장을 이해하고 시민 목소리를 제도와 정책으로 연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작고 세심한 요구일수록 더 귀 기울여야 하며, 그 과정에서 정치가 삶 가까이에 있다는 신뢰가 만들어진다”고 강조했다.
그는 “배제와 차별 없는 포용의 정치를 지향한다”며 “여전히 여성, 청년, 돌봄 노동자, 사회적 약자들이 정치에서 소외돼 있다”고 말했다. “선입견과 유리천장을 넘어서며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공감력 있는 통솔력으로 의회를 이끌겠다”고 밝혔다.
후배 여성 정치인들에게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과 정치 안에서의 고립감을 마주할 수 있지만, 자신의 전문성을 키워간다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전했다. “여성의 시선과 경험이 반영될 때 비로소 시민의 삶을 담은 정책이 가능해진다”며 “여성 정치인들 간의 네트워크를 통해 서로 배우고 현장을 누비며 준비된 정치인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 의장은 “정치는 시민 삶에서 멀지 않아야 한다”며, 앞으로도 생활 속에서 체감할 수 있는 의회를 만들기 위한 실천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광주시의회의 실험과 실천이 지역을 넘어 전국 지방의회에 새로운 표준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