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탄 납치·살인 사건이 드러낸 제도의 빈틈… 가정·교제폭력 대응체계 전면 재정비 시급
9차례 신고에도 피해자 보호 실패… 스마트워치 반납 요구 등 경찰 대응 한계 명확 가정폭력처벌법 개정·전자감시 도입·교제폭력 법 적용 확대 등 실질적 보호 필요
가정폭력과 교제폭력 피해자를 지키기 위한 한국 사회의 대응체계가 구조적 한계에 봉착했다. 지난 5월, 경기 동탄에서 발생한 납치·살인 사건은 피해자가 9차례 경찰에 신고했음에도 보호받지 못한 비극적 사례로 기록됐다. 국회입법조사처는 19일 발간한 「이슈와 논점」 보고서를 통해 사건의 문제점을 짚고, 제도 개선 방향을 제시했다.
해당 사건은 2025년 5월 12일, 경기 화성시 동탄신도시에서 발생했다. 피해자 김은진 씨(33세)는 전 연인 이 모 씨(34세)로부터 지속적인 폭행과 갈취, 협박에 시달렸다. 이에 대해 수차례 경찰에 신고하고, 600쪽이 넘는 고소자료까지 제출했으나 실질적 보호 조치를 받지 못했다. 범인은 김 씨를 렌터카로 납치한 뒤 아파트 통로에서 흉기로 살해했고, 이후 자택에서 목숨을 끊었다.
피해자의 호소와 고소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오히려 스마트워치 반납을 요구하는 등 부적절한 대응으로 일관했다. 이는 단순한 개인 범죄가 아닌 국가적 시스템의 총체적 실패로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보고서를 작성한 국회입법조사처 허민숙 입법조사관은 “이 사건은 교제폭력에 대한 법적 사각지대와 현행 제도의 미비함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라며 “실질적인 피해자 보호를 위해 입법적 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가정폭력 대응체계는 의무체포제가 없고, 피해자 의사에 따른 반의사불벌 규정이 여전히 적용되고 있다. 또한 법적 보호 범위가 혈연이나 혼인 관계에 한정돼 있어 교제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은 법망 밖에 머무르고 있다.
해외 주요국과의 비교에서도 한국의 제도적 취약성은 두드러진다. 미국·영국·호주 등은 의무체포제와 주공격자 식별, GPS 전자감시 등 피해자 보호를 위한 실질적 수단을 운영 중이다. 교제폭력도 가정폭력과 동일한 수준의 법적 보호를 제공한다. 미국은 전자감시 비용을 가해자에게 부담시키는 방식도 활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보고서는 △가정폭력처벌법 개정을 통한 교제관계 포함 △반의사불벌 규정 폐지 △현행범 체포 요건 완화 △접근금지 명령의 실효성 강화를 위한 GPS 감시제 도입 등 입법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쌍방폭행 판단 기준의 명확화와 피해자 중심 접근을 위한 제도 설계를 주문했다.
허민숙 조사관은 “해외 주요국처럼 접근금지 명령에 전자감시를 병행하고, 교제폭력도 동일한 법적 보호를 받도록 해야 한다”며 “피해자 생존권 보장을 위한 현실적이고 적극적인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