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소영이 준비한 세계 최대 미디어아트 축제 개막...“동양 지혜로 새 기술·예술 담론 열어”

‘세계 최대 미디어아트 축제’ ISEA2025 23일~29일 서울서 개최 전 세계 70개국 1천여 명 참가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 진두지휘 서구 중심 담론 깬 ‘동동’ 정신으로 A기술과 예술의 새 만남 제시

2025-05-23     이세아 기자
‘제30회 국제전자예술심포지엄(ISEA 2025)’가 23일부터 29일까지 예술의전당과 서울대학교 등 서울 일대에서 열린다. ⓒ아트센터 나비 제공

전 세계 70여 개국 1천여 명의 미디어아트 전문가들이 한국에 모인다. 세계 최대 미디어아트 축제 ‘제30회 국제전자예술심포지엄(ISEA2025)’이 23일부터 29일까지 한강과 예술의전당, 서울대학교 등 서울 곳곳에서 펼쳐진다. 단순 학술 중심 행사를 넘어 다양성과 포용성을 강조하는 여러 프로그램도 눈에 띈다.

아트센터 나비, 서울대학교 문화예술원, 예술의전당이 공동 주최하며, 국내외 주요 아트&테크 기관들이 대거 참여한다. 2019년 광주 이후 6년 만에 다시 한국이 개최국이 됐다. 대륙별 순환 개최라는 전통을 깼다.

행사 주제는 ‘동동(憧憧): 크리에이터스 유니버스(Creators’ Universe)’. 『주역(易經)』 함괘에 나오는 ‘동동왕래 붕종이사(憧憧往來 朋從爾思)’에서 따온 말이다. “순수한 마음으로 서로를 좋아하고 그리워하면 친구가 내 생각을 따른다”는 뜻이다. 점점 단절돼 가는 현대 사회, 이어지는 대립과 긴장 속에서도 함께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ISEA 2025 의장을 맡은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 나비미래연구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행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세아 기자

“문화예술 분야의 지적 패러다임은 수백 년간 서양 중심이었습니다. 동양이 전통, 문화, 예술에서 결코 내세울 게 없지 않은데도 논의가 부족했죠. 그게 오랫동안 불만이고 의문이었어요.”

ISEA 2025 의장을 맡은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설명이다. 앞서 지난 2019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일원에서 열린 ISEA 2019 총감독을 맡은 데 이어 다시 행사를 진두지휘한다.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 나비미래연구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남보다 더 잘나가면 남이 나를 따를 것이라고만 배워 왔는데, 그와는 반대인 ‘마음이 먼저 가면 생각이 따른다’는 동양의 지혜가 제게는 큰 발견이었다”라며 “서구 중심의 미디어아트 담론에 아시아의 사상과 내러티브를 접목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행사의 핵심은 학술 프로그램이다. 아트&테크놀로지 분야 세계적 학자 400여 명이 참가한다. 인공지능(AI), 인공생명, 디지털 사운드, 문화유산, 인간 너머(More than Human) 등 주제를 아우르는 논문 발표, 패널 토론, 아티스트 토크 등이 마련됐다. 김윤철 작가가 ‘트랜스매터링(Transmattering)’, 심상용 서울대미술관 관장이 ‘인공지능 시대의 예술: 르브넝, 다시 돌아온 자’, 뉴미디어 이론가 레브 마노비치가 ‘인공 미학(Artificial Aesthetics)’을 주제로 기조연설을 펼친다.

하이라이트는 오는 24일 국내 최초로 한강에서 펼쳐지는 개막식이다. 관객들이 손을 맞잡으면 한강이 빛으로 물드는 사일로랩의 미디어아트 작품 ‘윤슬’을 감상할 수 있다. 관객들이 함께 손을 잡아 만들어 낸 온기가 빛의 반짝임으로 변하고, 남북의 단절로 끊어진 한강을 잇는다는 상징적 의미를 담았다. 

한국을 대표하는 사운드 아티스트 가재발의 ‘수제천’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전통 궁중음악을 전자음악으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듣는 모든 이에게 하늘처럼 맑고 영원한 생명이 머물기를 바란다’는 염원을 전한다.

마나미 사카모토 & 유리 우라노, ‘메타랙트_ 돔’, 2024, 풀돔 영화, 19분. ⓒ아트센터나비 제공
말리친 코르테스(CNDSD), 이반 아브레우, ‘프레(ㄴ)ㅏ투라/포노신’, 2024. ⓒ아트센터 나비 제공

행사에 앞서 학술·아트 공모 결과, 논문 332건과 작품 39점이 선정됐다. 학술논문은 서울대학교와 서강대학교에서 발표된다. 작품은 초청작 79점과 함께 총 118점을 예술의전당과 서울대미술관, 관허 코스모스홀에서 공개한다.

전시 프로그램 ‘동동: 또 하나의 시작’에서는 EJTECH의 ‘둥드카르 망토’, 말리친 코르테스와 이반 아브레우의 ‘프레(ㄴ)ㅏ투라/포노신’, 조슈아 로덴버그와 아르시아 소반의 ‘되살아나는 요소들’ 등 인간과 기술,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작품들이 전시된다. 

서울대미술관에서는 ‘Good Morning Mr. Orwell Ver.2’ 전시가 열린다. ‘포스트 휴먼’, ‘인공지능(AI)’, ‘미래 도시’ 등 주제로, 기술이 인간을 연결하고 통합하는 긍정적 가능성을 제시한 백남준의 사상을 이어받아 기술과 함께하는 따뜻한 미래를 모색한다. 

지아바오 리(Jiabao Li)·알라나 니브(Alanah Knibb), 안티 안타티카_북극곰 이주 계획(AntiAntarctica_ Polar Bear Relocation Initiative), 2024. ⓒ아트센터 나비 제공
김준하, 포스트휴먼 병동, 2023. ⓒ아트센터 나비 제공

다양성·포용성에 주목한 프로그램도 눈에 띈다. 아트센터 나비 교육팀이 기획한 스페셜 트랙(Barriers and Alienation in Art X Tech Education) 프로그램이다. 디지털 기술이 예술교육을 혁신하는 동시에 새로운 격차를 만드는 현실을 성찰하고, 보다 포용적인 미래 예술교육의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다. 오는 27일 서울대학교미술관 렉처홀에서 기관 발표와 연구 발표, 워크숍이 열리며 관심 있는 누구나 참석할 수 있다.

관악문화재단과 서초문화재단과의 협력을 통해 지역 어린이와 청년 예술가들의 작품을 해외 참가자들에게 소개하는 연계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글로벌 네트워크도 구축하고, 지역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국제 무대에 전하려는 시도다.

또한 WeSA와 함께하는 ‘Sound Seoul 2025’가 오는 26일 상수동에서 열린다. 한국의 젊은 AV(오디오 비주얼) 씬을 전 세계 연구자·예술가들에게 소개하고, 다양한 스크리닝과 퍼포먼스 프로그램을 통해 실험적이고 창의적인 작품들을 선보일 예정이다.

아트센터 나비 교육팀이 기획한 스페셜 트랙(Barriers and Alienation in Art X Tech Education) 프로그램 포스터. ⓒ아트센터 나비 제공
ISEA 2025 의장을 맡은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공동의장을 맡은 이중식 서울대 문화예술원 원장, 명예의장인 심상용 서울대미술관 관장이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 나비미래연구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행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세아 기자

이번 행사 공동의장을 맡은 이중식 서울대 문화예술원 원장은 “오늘날 예술가들은 예술가이자 동시에 기술자, 연구자다. 그 모두를 고민하는 분들이 이번 행사에 모인다”라며 “아르스 일렉트로니카나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 같은 해외 페스티벌과는 차별화된, 더욱 응축된 에너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노 관장은 “ISEA2025는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며 “함께 질문을 던지는 ‘또 하나의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에 가니까 친절하고 따스하게 맞이해 주더라는 기억을 해외에서 온 참가자들에게 전해주는 것 또한 행사의 목표”라고 덧붙였다.

심 관장은 현 시대의 기술적 딜레마를 지적하며 비판적 접근을 강조했다. “AI 개발에 투자가 몰리는데 AI가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꿀지에 대한 연구는 너무나 초보적인 수준이다. 이 불균형이 심각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며 “우리가 기술을 어떻게 전유해야 하는지, 예술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이번 ISEA에서 깊이 있게 논의되길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