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인형이 아냐” 외친 아이들, ‘여자’ 떼고 새 출발

5인 완전체 재계약 후 미니 8집 ‘We are’로 컴백 그룹명 바꿔 젠더 고정관념 탈피 선언 멤버 전원 작사·작곡 참여 “히트하면서도 우리가 즐거운 음악 요즘 관심사·생각 이야기하고파 다양한 시도 이어갈 것”

2025-05-25     김나연 기자
걸그룹 아이들이 19일 오후 서울 역삼동 조선 팰리스 서울 강남에서 미니 8집 ‘We are’ 발매 기념 기자간담회를 진행했다. ⓒ손상민 사진기자

“이제야 드디어 저희 이름을 찾은 것 같다.”

지난 19일 오후 서울 역삼동 조선 팰리스 서울 강남에서 열린 아이들 미니 8집 ‘We are’ 발매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미연이 한 말이다. 2018년 데뷔 이후 쭉 사용해온 ‘(여자)아이들’에서 ‘여자’를 떼어내고 ‘아이들’로 새출발을 알린 소감이었다. “데뷔 당시 괄호 안에 ‘여자’가 붙었던 걸 의아해했었다. 나중에 저희 이름이 더 알려지면 꼭 이름을 떼자는 얘기를 했었다.”

이날 공개된 미니 8집 ‘We are’는 주목할 만한 전환점이다. ‘아이돌 마의 7년’을 넘어 5인 완전체 재계약 성공 후 첫 작품이자, 그룹의 정체성을 스스로 재정의한 선언문이다. ‘여자’ ‘GENDER’로 정의할 수 없는 그룹의 정체성을 재확립하며 앞으로 더욱 한계 없는 음악을 선보이겠다는 포부다. 

걸그룹 아이들이 19일 오후 서울 역삼동 조선 팰리스 서울 강남에서 미니 8집 ‘We are’ 발매 기념 기자간담회를 진행했다. ⓒ손상민 사진기자

아이들이 여타 걸그룹과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은 자체 제작 시스템이다. 노래, 춤은 물론 작사·작곡과 프로듀싱까지 가능한 다재다능한 리더 소연을 중심으로 데뷔 초부터 대부분의 타이틀곡을 직접 작사·작곡해 왔다. 대부분의 걸그룹이 외부 기획자에 의해 만들어진 ‘콘셉트’를 기획사가 시키는 대로 소화하는 아이돌 시장에서 눈에 띄는 행보다. 이번 앨범에선 데뷔 후 처음으로 멤버 전원이 작사·작곡에 참여했다.

2018년 데뷔곡 ‘LATATA’부터 최근작까지 일관되게 ‘여성의 시선’으로 음악을 만들어왔다. 여성의 주체성, 욕망, 자아, 자신감 등을 당당히 노래했다. 2022년 발표한 ‘TOMBOY’에서는 “I’m not a doll(난 인형이 아냐)”이라는 가사로 주체적 여성상을 강조했다. 이 곡은 전 세계 24개 지역 아이튠즈 톱 앨범 차트 1위, 11개 지역 K팝 앨범 차트 1위, 미국 빌보드 ‘글로벌 200’ 차트 34위를 차지했다. 뒤이어 발표된 ‘Nxde’도 대중이 소비하는 ‘여성성’의 의미를 꼬집으며 빌보드 월드 디지털 송 세일즈 차트 13위에 올랐다. 

아이들 미연. ⓒ손상민 사진기자
아이들 민니. ⓒ손상민 사진기자
아이들 슈화. ⓒ손상민 사진기자
아이들 우기. ⓒ손상민 사진기자

이번 앨범 ‘We are’는 데뷔 앨범 ‘I am’에서 시작된 ‘I’ 시리즈의 진화다. 개인의 정체성을 탐구했던 ‘I’에서 앞으로도 함께할 ‘우리’의 이야기를 그린다. 

소연은 “데뷔 앨범이 ‘I am’이었던 것 같이 이번 앨범은 ‘We’의 시작이다. ‘우리’를 소개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7주년을 맞았고, 이제 8년 차지만 새로 시작한다는 의미를 넣고 싶었다”고 밝혔다. 우기는 “수록곡을 들어보시면 저희 색깔이 굉장히 많이 들어간 앨범일 거다. ‘아이들’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니 재밌을 것 같다”고 했다.

타이틀곡 ‘Good Thing’은 2010년대에 유행한 오토튠 사운드를 바탕으로 바람핀 애인을 직접 찾아가는 여성의 이야기를 거침없이 그려냈다. 소연에 따르면 “‘아이돌 가사 중에 이런 가사가 있었나?’ ‘여성 아티스트가 이런 가사를 쓴 적 있었나?’ 하며 재밌게 접근한 곡”, “아이들이 새로움을 개척해나갈 것을 생각하고 쓴 곡”이다. 

이외에도 ‘Girlfriend’, ‘Love Tease’, ‘Chain’, ‘Unstoppable’, ‘그래도 돼요’ 총 6곡이 담겼다. 수록곡 ‘Girlfriend’는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시크한 감성이 묻어나는 뮤직비디오로 주목받았다. 

소연은 “친구가 애인이랑 헤어졌다고 했을 때 ‘괜찮다’ ‘네 남자친구보다 훨씬 좋은 여자친구들이 있어’라고 말하는 가사를 담았다”며 “약간 경험이 많은 언니들의 이야기랄까. 3년 전쯤 쓴 노래인데 최근 다시 들어보니 ‘이거 지금 우리가 부르면 재밌겠다’ 싶은 가사가 있어서 이제야 나오게 됐다”고 덧붙였다.

아이들 소연. ⓒ손상민 사진기자

보통 아이돌 그룹은 히트곡이 나온다 해도 매번 성공을 이어가긴 어려워, ‘퐁당퐁당 히트’라는 말이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예외였다. ‘톰보이’ ‘누드’ ‘퀸카’까지 3연속 히트곡을 냈다. 

소연은 “매일매일 압박이지만 중심을 잃지 않으려 한다. 새로운 음악을 만들면서도 어떻게 하면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을까, 히트하는 음악을 하면서도 우리가 재밌을 수 있는 것,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으려고 한다. 저희가 재밌는 곡들을 대체로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시더라. 우리가 즐겁게 활동하는 모습을 사랑해 주시는 것 같다”고 했다. 이번 활동에서 금발 숏컷으로 변신한 것도 “노래에 어울릴 것 같아서”라는 자연스러운 이유에서였다. 

아이들의 음악은 종종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주체성, 당당함과 자존감을 외치는 걸그룹이 여전히 무리한 다이어트나 과도한 메이크업 등 외모 중심의 기준에 갇혀 있다는 비판이다. 섹시한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깨기 위해 오히려 섹시함을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모순’이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이에 대해 소연은 “우리는 ‘이걸 알려줄 거야’ ‘가르쳐 줄 거야’라는 생각으로 음악을 하지 않는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할까?’ ‘우리가 요즘 뭐하지?’라는 당장의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라며 “많은 분들이 ‘저번에 이런 얘기를 했는데 지금 이 얘기를 한다’며 모순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하지만 저는 그때그때 상황과 캐릭터에 맞춰 이야기를 한다. 곡이 함축적 이야기를 담다 보니 오해가 생기는 것 같다”고 해명했다.

걸그룹 아이들이 19일 오후 서울 역삼동 조선 팰리스 서울 강남에서 미니 8집 ‘We are’ 발매 기념 기자간담회를 진행했다. ⓒ손상민 사진기자
아이들 소연. ⓒ손상민 사진기자

재계약 이후 방향성에 대해 소연은 “시기,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노래하고 싶다”고 말했다. “청순하게 했다가도 밴드가 유행이면 밴드 노래를, 봄이면 봄 노래를 가져오는 식으로 다양하게 하고 싶다”는 얘기다.

“저희 5명 모두 성향상 늘 자신감이 있어요. 말도 직설적으로 하는 성격이라 항상 강하게 나오는 것 같아요. 하지만 이번에도 강한 메시지를 넣어야겠다는 압박이나 부담감을 갖고 작업하진 않았어요. 내가 요즘 어떤 것에 관심이 있고 어떤 영화를 봤고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가 중요해요. 내부적으로도 많은 시도를 하고 있어요.”

소연의 말처럼, 아이들은 이번 앨범에서 또 다른 도약을 위한 과감한 시도를 보여줬다. 걸그룹이 계속해서 여성의 주체성에 대해 직접 발화하고 음악으로 풀어내는 시도기 K팝 안에서 더욱 확장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