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이슈 키워드] 스텔스 페미니즘

드러내지 않고도 실천하는 여성들의 전략적 연대 낙인과 불이익 피해 침묵을 택한 행동주의 생활·정치·온라인 전방위로 확산되는 성평등 실천

2025-05-12     서정순 기자

‘스텔스 페미니즘(Stealth Feminism)’은 자신의 페미니스트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고, 일상과 사회 곳곳에서 성평등 실현을 위해 조용히 실천하는 전략적 태도를 말한다. 스텔스(stealth)는 군사 기술에서 적의 탐지 수단에 의해 발견되지 않도록 설계된 기술을 의미한다.

최근 여성신문이 2030 여성 유권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9.8%가 페미니즘을 지지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절반 가까이는 ‘페미니스트’라는 명칭을 공개적으로 밝히길 꺼린다고 응답했다. 이는 사회적 낙인, 온라인 공격, 직장 내 불이익 등 현실적 위협이 여전히 크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2030 여성 10명 중 6명(59.8%)은 페미니즘에 동의하고 있었다. ‘젠더(성)평등 지지하나 표현이 부담스럽다’는 응답이 46.8%로 가장 높았고, ‘페미니즘 무관심’(20.6%), ‘적극적 페미니스트’(13.0%), ‘페미니즘 부정적’(9.9%) 순으로 나타났다 ⓒ이은정 디자이너

‘스텔스 페미니즘’이라는 용어는 2000년대 초 미국의 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데브라 미컬스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003년 에세이 「Stealth Feminists: The Thirtysomething Revolution(스텔스 페미니스트: 30대의 혁명)」에서, 1960년대생 여성들이 페미니스트임을 명시하지 않으면서도 일상에서 성평등을 실현하는 모습을 조명했다. 이후 이 개념은 공식 운동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사회 구조 안에서 조용히 변화를 추구하는 실천 전략으로 확장됐다.

이러한 흐름은 일상과 온라인 공간에서도 이어진다. 실명을 드러내지 않고 콘텐츠를 공유하거나, 직장 내 부당한 관행을 익명 게시판을 통해 고발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여성 중심 서사를 담은 콘텐츠 소비, 여성 창작자 지지 활동도 조용한 실천의 일환이다. ‘폭싹 속았수다’ 같은 드라마, 여성서사 웹툰, 여성 작가들의 SNS 활동은 연대의 매개가 되고 있다. 문화 소비와 디지털 액티비즘은 위험은 적고, 영향력은 누적된다.

여성단체들은 ‘사상검증’ 근절, 직장 내 성차별 인식 개선, 성평등 정책의 실효성 강화를 촉구하고 있다. 한국여성노동자회는 채용 과정에서 페미니스트 여부를 문제 삼는 기업 관행의 개선을 요구 중이다. 여성가족부 기능 축소, 성평등 예산 삭감 논란도 여전하다.

스텔스 페미니즘은 단순한 자기 검열이나 회피가 아니라, 변화의 또 다른 이름이 되고 있다. 이름을 숨긴 채 이어지는 조용한 실천과 연대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성평등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여성들은 일상과 정치, 온라인 공간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평등을 만들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