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채시라 보러와요...40년 만에 무용수 데뷔

국립정동극장 전통연희극 ‘단심’서 ‘용궁 여왕’ 맡아 춤과 연기 선보여 “오랜 무용수의 꿈 이뤄... 하고 싶은 일 포기 말고 도전하시길”

2025-05-08     김나연 기자
8일 오후 서울 중구 국립정동극장에서 열린 개관 30주년 기념 전통연희극 ‘단심’(單沈) 프레스콜에서 정식 무용수로 데뷔한 배우 채시라가 주요 장면을 시연하고 있다. ⓒ손상민 사진기자

진분홍빛 치마를 두른 용궁 신녀·궁녀 10인의 뒤로 연꽃 모양 부채를 손에 든 용궁 여왕이 양팔을 휘저으며 등장한다. 여유로운 미소를 띠며 심청의 몸을 일으키고 그의 주변을 돌며 춤을 춘다. 절제된 몸짓 하나로 용궁 여왕의 인자함과 동시에 카리스마를 느끼게 한다.

데뷔 40년 차를 맞은 배우 채시라(56)가 무용수로 인생 2막을 열었다. 국립정동극장의 30주년 기념 전통연희극 ‘단심’을 통해 정식 무용수로 데뷔했다.

8일 오후 서울 중구 국립정동극장에서 ‘단심’ 프레스콜이 열렸다. 장성숙 국립정동극장 대표이사, 정혜진 안무가, 정구호 연출가, 배우 채시라, 조하늘 무용수, 박지연 무용수, 이수현 국립정동극장 문화사업팀장 등이 참석했다.

이번 작품은 국립정동극장 개관 30주년 기념작이다. 고전 설화 ‘심청’이 모티브다. 한국무용과 전통연희에 현대적인 감각을 더해 심청의 내면을 재해석했다. 채시라가 ‘용궁 여왕’ 역을 맡아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와 화려한 춤사위를 선보인다.

8일 오후 서울 중구 국립정동극장에서 열린 개관 30주년 기념 전통연희극 ‘단심’(單沈) 프레스콜에서 정식 무용수로 데뷔한 배우 채시라가 주요 장면을 시연하고 있다. ⓒ손상민 사진기자

1985년 데뷔한 채시라는 2019년 MBC 드라마 ‘더 뱅커' 이후 연기 활동을 잠시 멈췄다. 이번에 무용수로 새로운 도전을 알리며 이목이 집중됐다. 1995년 전설적 무용수 최승희의 삶을 다룬 MBC 2부작 드라마 ‘최승희’에서 무용수로 변신하고 MBC 드라마 ‘아들의 여자(1994)’, ‘여명의 눈동자(1991)’ 등에서 춤을 추고 지난해 제45회 서울무용제 홍보대사로 활동하며 짧은 무용을 선보인 적 있지만, 공식적으로 무용 작품에 출연한 건 처음이다. 

“꿈에 그리던 ‘무용수’라는 단어가 제 앞에 붙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어요. 배우 이전에 무용수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 몇몇 작품에서 춤을 잠깐씩 췄었지만 꽤 오래 전 일이었죠. 15분 가까이 퇴장하지 않고 춤과 연기를 아우르게 됐는데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훈련에 투자해야 했어요. 앞으로도 무용수라는 단어가 제 이름 앞에 붙을 기회가 있을지 기대해보게 되고, 이 작품을 통해 무용수로 인사드리게 돼서 기뻐요.”

오랜 꿈이었던 무용을 할 수 있어 기쁘다. 지치는 순간도 있었지만 도전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라고 했다.

“무용이 꿈이었고, 하고 싶어서 선뜻 한다고 했어요. 누구나 그런 시기가 있겠지만, 저도 스케줄하며 연습하려니 지칠 때가 있더라고요. 저는 도전하는 걸 즐기는 사람이에요. 도전한다는 것 자체가 다른 사람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다고 평가해주시니 저도 다시 생각해보게 되더라고요. 

근육이랑 몸이 점점 단련돼서 지금은 더 단단하고 몸이 다듬어지는 느낌이에요. 안 되는 동작들은 극복하고 나날이 발전 중이라는 말에 용기를 얻었어요.”

‘단심’에 용궁 여왕 역으로 출연하는 배우 채시라. ⓒ손상민 사진기자

새로운 도전 앞에서 망설이는 여성 후배들을 위해서도 따뜻한 조언을 건넸다.

“누구나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건 의미있는 일이에요. 설령 실패하고 주저앉는다 하더라도 그 모습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다시 시도할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후배 분들에게) 제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감사하고 너무 응원하고 도전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8일 오후 서울 중구 국립정동극장에서 열린 개관 30주년 기념 전통연희극 ‘단심’(單沈) 프레스콜에서 발언 중인 정구호 연출. ⓒ손상민 사진기자

이날 정구호 연출은 용왕을 여왕으로 설정한 것에 대해 “채시라 때문에 용왕을 여왕으로 만든건 아니다”라며 “심청이 어린시절 어머니를 잃고 어머니의 따뜻함을 느껴보지 못했는데 용궁으로 들어가서 용왕을 용궁여왕으로 바꿔서 어머니의 따뜻함을 느꼈으면 해서 정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채시라를 캐스팅한 이유에 대해 “어떤 분이 맡으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채시라에게 제안했다. 심청 어머니 역할로 최고”라며 칭찬했다.

8일 오후 서울 중구 국립정동극장에서 열린 개관 30주년 기념 전통연희극 ‘단심’(單沈) 프레스콜에서 발언 중인 정혜진 안무가. ⓒ손상민 사진기자
8일 오후 서울 중구 국립정동극장에서 열린 개관 30주년 기념 전통연희극 ‘단심’(單沈) 프레스콜에서 발언 중인 국립정동극장 정성숙 대표이사. ⓒ손상민 사진기자

정혜진 안무가는 “채시라는 정말 긍정적인 사람이다. 다 받아들이고 어려운 건 도전하려고 한다. 아침부터 밤까지 너무 열심히 해서 ‘몸 상하면 어쩌지?’ ‘다치면 어쩌지?’라는 걱정을 많이 했는데, 될 때까지 하는 근성이 멋지다. 함께하면서 ‘대배우는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고 첨언했다.

정성숙 대표이사도 “예산이 많지 않은 가운데 좋은 작품을 만들고자 연출가님과 안무가님이 많이 노력하셨다. 출연자분들께도 감사하다. 채시라 무용수는 처음에 ‘할 수 있을까?’ 하며 걱정했는데, 단원들과 똑같이 땀을 흘리고 하나라도 더 배우려는 자세로 임해줘서 이 작품이 완성되는 데 많은 역할을 해줬다”고 칭찬했다.

한편, ‘단심’은 8일부터 6월 28일까지 국립정동극장에서 펼쳐진다. 서울시무용단 ‘일무’로 함께 작업한 정구호 연출과 정혜진 안무가가 힘을 모았다. 전통 공연으로는 이례적으로 50회 장기 공연을 추진한다. 오는 10월엔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와 연계해 특별 공연도 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