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소년의 시간, 함께 지켜야 할 성장의 시간

2025-04-30     김소은 한국오가논 대표
사진은 넷플릭스 시리즈 ‘소년의 시간’ 스틸. 평범한 가정에서 사랑을 받으며 자란 13세 소년이 같은 학교 소녀를 잔인하게 살해하고 살인범이 되는 사건을 서로 다른 시선과 입장에서 지켜보게 하는 이 드라마는 또래 집단 내 왜곡된 성인식과 성문화를 주요 원인으로 지목한다. ⓒ넷플릭스 제공

지난 3월, 영국 드라마 ‘소년의 시간’을 보고 우리 직원들은 물론, 청소년 자녀를 둔 부모들과 여러 지인들에게 꼭 한번 보라고 추천했다. 평범한 가정에서 사랑을 받으며 자란 13세 소년이 같은 학교 소녀를 잔인하게 살해하고 살인범이 되는 사건을 서로 다른 시선과 입장에서 지켜보게 하는 드라마는 또래 집단 내 왜곡된 성인식과 성문화를 주요 원인으로 지목한다. 또한, 소셜미디어 속 여성혐오, 사이버 성범죄, 학교폭력 등 사회적 이슈에 노출된 청소년들의 복잡하고 위험한 성장기의 감정을 조명하며, 학교와 부모 등 어른들의 무지에 심각한 경고를 준다. 드라마 내용에 충격을 받은 필자는, 주인공 소년이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지 정신건강의학과 지인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소년의 시간’에 등장하는 청소년의 성인지 부족과 폭력, 사이버 성범죄는 결코 다른 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10월까지 검거된 딥페이크 범죄 가해자 10명 중 8명이 10대 청소년이었고 피해자의 대부분은 또래 여학생들이나 지인들이었다(경찰청, 2024년 11월 딥페이크 성범죄 특별단속 추진 현황). 학교 안에서 여교사에게 폭력을 일삼거나 불법 촬영을 한 경우도 있다. 성관계, 피임에 대한 인식과 실천에도 여러 문제점이 존재한다. 한국모자보건학회지에 따르면, 성관계 경험이 있는 여학생 중 ‘항상 피임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39.2%에 불과했고, ‘피임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응답도 32%에 달했다(하범안 외. ‘성관계 경험이 있는 여자 청소년의 피임 실천 추이와 영향 요인: 2013~2022년’). 미국 15~19세 여자 청소년의 피임 실천율이 86~91%인 것과 비교하면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문제들의 근본적인 원인과 해결안은 무엇일까. 문득, 지난해 계획되지 않은 임신으로 어려움을 겪는 위기임신 가족을 지원하는 사단법인 대표와 나눴던 대화가 떠오른다. 필자가 속한 한국오가논은 여성건강 증진이라는 비전의 연장선에서, 도움이 절실한 가족들을 위해 계획되지 않은 임신의 원인을 이해하고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논의하고 있던 터였다. 지원 현장에서는 임신 사실조차 알지 못했거나, 임신중절을 겪고도 다시 임신한 뒤 도움을 청한 미혼모들의 사례가 있었고, 이들의 상당수가 어린 시절 가정폭력과 학교·지역사회의 방임 속에서 성장해왔다고 한다. 실무자들은 문제들의 주요 원인으로, 청소년기에 제대로 된 성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꼽는데, 여기서 성교육은 단순히 피임법만이 아닌, 서로의 성에 대한 존중, 자신의 신체에 대한 결정권 인식, 성형평성 등을 포괄하는 넓은 가치를 말한다.

우리 청소년들의 현실을 떠올리며,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성교육 기회를 넓히는 것뿐 아니라, 스스로 필요와 문제를 인식하고 성 건강에 대해 당당히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오가논은 지난 3년 동안 한국청소년성문화센터협의회와 함께 ‘세이플루언서’라는 지원사업을 운영해왔다. 청소년들이 성 건강에 대한 아젠다를 기획하고, 주체적으로 동아리 활동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작년부터는 사각지대에 놓인 청소년들을 위한 찾아가는 맞춤형 성교육도 시작했다. 청소년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활동은 실제 성과로 이어졌다. 사업 연구에 따르면, 참가 청소년들의 성적 의사결정 능력, 성 역할 유연성 측면 뿐만 아니라, 자아존중감과 사회적 지지와 같은 포괄적인 영역에서도 유의미한 향상이 있었다. 2년간 프로그램에 참여한 경우 자신감 향상, 교우 관계 확대 등 정서적 안정과 사회성 발달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변화를 경험했다.

우리 사회의 건강한 미래를 고민할수록 생애 초기 단계에서의 시작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교육과 지원, 모두의 관심이 얼마나 필요한지 더욱 분명히 느끼게 된다. 부모와 학교를 넘어, 정부와 기업, 지역사회 모두가 함께 한다면 더 큰 변화를 만들어 갈 수 있다. 우리 청소년들이 자신의 신체 변화를 긍정적으로 인식하며 올바른 성 지식과 가치관을 갖고 성장할 수 있도록, 이제는 온 사회가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 방황하는 소년의 시간이, 모두의 손으로 지켜낸 성장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더 많은 청소년이 상처를 딛고 단단하고 따뜻한 어른으로 피어날 것이다. 

김소은 한국오가논 대표. ⓒ한국오가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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