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여성이 사라진 대선, 이대로 괜찮은가

2025-04-23     이설아 세계시민선언 대표
지난 2022년 4월14일 '여성가족부 폐지 저지 공동행동' 소속 활동가들이 서울 종로구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앞에서 여성가족부 폐지 반대와 성평등 추진 체계 강화 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5년 6월 3일, 우리는 다시 한번 대통령을 선택하는 날을 맞는다. 그러나 이번 대선의 풍경은 기묘할 만큼 일방적이다. 주요 정당 유력 후보들의 공약 어디에도 여성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여성 유권자는 존재하지만 호명되지 않는다. 이번 대선에서 각 정당은 여성이라는 ‘정치적 주체’를 회피하거나 지워버리는 데 주력 중이다.

당 경선에서 90% 넘는 지지를 받으며 차기 대통령에 누구보다 가까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최근 ‘광장을 주도한 2030 여성들에 대한 비전’을 묻는 질문에 “모든 국민이 함께한 성과”라는 모호한 답으로 일관했다. 실수라기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도 색색의 응원봉을 언급하면서도 여성은 언급하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민주당 내에서 성평등이라는 근본 의제가 철저히 지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민주당은 22대 총선과 이번 대선 공약에서 여성 공약을 출산·육아 중심 또는 범죄 예방 정책으로만 재편하며, 성평등을 언급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꺼려왔다. 유명 민주당 지지 유튜버들이 “페미 편들면 2030 남성 표심 잃는다”는 말을 설파하고 다니는 것과 무관한 행보로 보이진 않는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행보는 더욱 노골적이다. 그는 군 가산점 부활을 공약으로 내세우며 남성 표심에만 집착했고, 여성 안심귀갓길을 없앤 것을 성과로 홍보한 최인호 의원을 청년본부장에 앉혔다. 이는 여성의 안전을 정쟁의 수단으로 삼는 퇴행적 태도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는 반여성 정치의 원조격이다. 그는 지속해서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하며, 과거 ‘펜스룰’ 발언으로 논란이 된 문성호 전 국민의힘 대변인을 선대위 대변인으로 기용했다. 문성호 대변인은 국민의힘 대변인 시절 “여성의 무고가 두렵다”며 여성 기자들과의 식사를 꺼린다고 발언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지만, 이준석 후보의 ‘정체성’이자 ‘입’으로서 활발히 활약 중이다. 

이 모든 흐름은 단순한 선거 전략의 문제가 아니다. 여성의 목소리를 의도적으로 배제하며 우리는 ‘보통선거’라는 민주주의의 전제를 허무는 것이다. 선거란 다양한 이해와 삶이 충돌하는 자리여야 한다. 그러나 지금 정치권은 ‘여성 인권 후퇴를 지지하는 남성’을 전략적 유권자로 삼는다. 광장의 여성은 기억되기를 거부당하고, 정책의 여성은 ‘출산 도우미’로 축소된다. 이는 정치적 폭력이다. 성평등 없는 민주주의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이번 대선에서 보다 성평등을 내세우는 후보를 선택하고 싶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성평등은 소수의 이익을 위한 의제가 아니라,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를 끌어올리는 정의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성평등을 말하는 후보는 여성을 위한 정치를 넘어서 사회 전체를 위한 균형과 존중의 정치를 약속한다. 여성 정책에 무관심한 후보는 결국 청년, 장애인, 이주민, 비정규직 등 사회의 모든 취약자를 무시할 가능성이 높다. 

2025년 대선은 단순한 권력 교체의 시간이 아니다. 12·3 내란으로 야기된 민주주의의 후퇴를 저지하고 사회의 전환을 촉진하기 위한 시간이다. ‘정권교체’ 또는 ‘연장’은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이를 위해 여성들에게 성평등 언급을 자제하라고 윽박지르는 것이 아닌,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기꺼이 약속하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 

이설아 세계시민선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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