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엄마 성’은 언제까지 예외여야 하나... 헌재는 응답해야
헌법재판소는 법률의 이름으로 반복되는 불평등과 배제를 바로잡는 최후의 수문장이어야 한다. 소수자, 약자, 비주류가 제도권에 기대어 자신의 권리를 구제받을 수 있는 마지막 통로가 바로 헌법소원이다.
그러나 최근 한덕수 권한대행이 대통령 몫으로 지명한 헌법재판관 후보자들의 이력을 보면, 그 보루가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윤석열 정권 하에 처참하게 기능이 일그러진 국가인권위원회의 모습이 겹쳐진다.
헌법재판관으로 지명된 이완규 법제처장은 비상계엄이 해제된 지난 4일 저녁, 서울 삼청동 대통령 안가에서의 회동에 참여한 3인 중 한 명이다. 또 다른 후보자인 함상훈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친딸에 대한 아동 성범죄를 ‘애정’ 때문일 수 있다는 등,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판결을 다수 내려온 인물이다.
이들이 헌재에 입성할 경우, 헌법소원이 단지 형식적 절차로 전락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나 역시 헌법소원의 당사자로서, 헌재의 붕괴를 우려하고 있다. 나는 지난 2021년 민법 제781조 제1항에 명시된 이른바 '부성우선주의'에 대한 헌법소원을 청구한 상태다. 해당 조항은 “자는 부의 성과 본을 따른다. 다만, 부모가 혼인신고 당시 모의 성과 본을 따르기로 합의한 경우에는 모의 성과 본을 따른다.”는 단 한 줄에 불과하지만, 이 한 줄은 미혼모와 아이에게 감당하기 힘든 제도적 벽이 된다.
자녀가 태어났을 때 혼인 외 출산이라면, 어머니 단독으로 출생신고는 가능하다. 그러나 아이에게 어머니의 성을 물려주면서 아버지를 올리려면 이는 불가능하다. 출생신고 이후 아버지를 인지시키려 한다 해도, 아버지의 ‘협조’가 없다면 아이는 부의 성을 강제로 부여받는다.
아이가 부에 인지되지 않으면 양육비 청구도 힘든 상황에서, 아이의 성을 정하는 결정권조차 혼인 여부나 남성의 협조 여부에 따라 좌우되는 구조가 한국 민법에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아이의 정체성은 아버지를 통해 성립된다’는 성차별적 사고가 법의 이름으로 유지되고 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 조항이 여성과 아동의 인격권·양육권·평등권 모두에 걸쳐 헌법과 충돌하는 체계를 고착화시킨다는 점이다. 헌법 제36조 제1항은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현실의 민법은 여전히 ‘가족은 남성 중심으로 구성된다’는 과거의 규범을 따르고 있다.
그래서 이 문제는 단순히 출생신고 절차의 편의 문제가 아니라, 법제도의 해석과 설계가 어떻게 여성을 주변화하고 있는가를 드러내는 구조적 불평등의 문제다.
헌법소원 제기 이후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헌재는 해당 소원의 결과를 밝히지 않고 있다. 그 사이 부성우선주의에 대한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던 법무부는, 한동훈 장관 시절 “안정된 혼인·가족관계 등을 고려해야 한다”며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반대 입장으로 선회했다.
모든 헌법소원이 각각의 절박함을 안고 제기된 것이라 생각하지만, 부성우선주의 헌법소원 사례에만 한정하더라도 이 제도적 한계에 가로막힌 사람들이, 정치적 목적으로 내란에 가담했다는 의혹을 받는 이완규, 납득할 수 없는 성 관념으로 재판을 진행해온 함상훈 재판관 체제에서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헌재가 빠른 시일 내에 이완규·함상훈 지명 건에 대한 헌법소원과 가처분을, 헌재를 정상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결정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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